[이수완의 월드비전] 울부짖는 '황금알 거위' 홍콩 ...잡아맬까 고민하는 시진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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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논설위원
입력 2019-09-15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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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자본시장의 심장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될 당시 경제규모는 본토의 18.4%였다. 지금은 2.7%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콩은 아직 국제금융시장의 허브로서 위상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막대한 글로벌 자금이 이곳을 통해 세계 2위 경제대국 중국으로 유입되고 있다. 상하이, 선전 등 중국 본토의 개방형 특급 도시들이 다수 있다고 하지만 당장 이들이 홍콩의 역할을 대체하긴 힘들다. 중국 당국이 걸핏하면 자본이동 통제에 나서고 자국의 금융 시장에 대한 개입을 제멋대로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만리방화벽(Great Firewall)을 통해 인터넷 사용을 제한, 비즈니스 의사결정에 필요한 외부 정보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반면 홍콩은 본토와 달리 세계에서 가장 개방된 경제의 하나이며 중국의 기업들에게 주식 발행과 자금조달의 주요 창구이다. 홍콩이 아시아 자본시장의 심장이자 중국에게 여전히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남아있는 이유는 홍콩반환 협정 시 중국의 일국양제(一國兩制)의 약속 때문이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의 특별행정구로 중국 주권이 미치긴 해도 고도의 자치권이 부여된  자본주의 체제가 50년간 유지된다는 형태이다. 홍콩은 기본법에 의해 표현의 자유와 사법권의 독립 등 중국 본토가 누리지 못하는 각종 특권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친비즈니스 환경을 구축했다.   

이러한 특수한 지위 덕분에 홍콩은 중국의 간섭 없이 독자적으로 투자와 무역 협상을 진행시킬 수 있다. 또한 현재 미·중 무역전쟁에서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미국의 고율 관세 폭탄에서 자유롭다. 불투명한 중국의 사법제도와 달리 홍콩의 사법제도와 거버넌스(지배양식)에 대한 해외 투자가들의 신뢰도는 높게 유지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홍콩의 외환·주식·채권 시장을 통해 외자를 유치한다. 다른 나라 기업들에게는 홍콩은 중국 본토 진출의 교두보이다. 지금도 중국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FDI) 대부분은 홍콩을 경유한다. 텐센트 또는 중국공상은행 등 다수의 중국 대기업들은 홍콩거래소에 상장되어 있다. 1997년 반환 뒤 홍콩은 중국 기업들에게 개혁·개방의 창구이자 해외 비즈니스 진출을 위한 디딤돌 역할을 해왔다. 작년 중국 기업들은 기업공개(IPO)를 통해 총 642억 달러의 자금을 조성했다. 전 세계 IPO 시장 규모의 1/3 정도이다. 이 중에서 절반이 넘는 350억 달러 규모의 IPO가 홍콩에서 이뤄졌다. 2014년 11월에는 상하이와 홍콩의 상장된 주식을 상호 매매하는 후강통이, 2016년 12월에는 선전 거래소와 연결된 선강통이 출범하며, 외국인 투자가들에게 홍콩은 중국 주식에 투자하는 주요 통로가 됐다. 작년도 중국 기업들이 해외 자금 조달을 위해 1660억 달러 규모의 달러화 채권을 발행했는데 이 중 1/3이 홍콩 채권시장을 통해 이뤄졌다.

아시아 주요국과 몇 시간 내 연결되는 유리한 지리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홍콩은 국제 무역의 허브이기도 하다. 홍콩 국제공항은 세계 1위 항공화물 중심지로 연간 500만t의 화물과 7000만명 이상의 여객이 모인다. 매일 100개 이상의 항공사 소속 1100여개 항공편이 운항한다. 세계 제5위의 컨테이너선 항구인 홍콩항에서는 매일 중국 수출품의 상당 부분이 선적된다. 홍콩은 중국 전체 서비스 무역의 20%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 비중은 미국(17%)을 능가하고 있다. 홍콩은 세계에서 최대 규모로 위안화가 거래되는 곳이다. 2004년 중국 정부에 의해 최초로 역외 위안화 거래지로 지정돼, 위안화 예금, 무역결제, 자금조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위안화의 국제화와 위상 제고를 통해 달러 패권에 도전을 표명한 중국에게 홍콩은 그야말로 전략적 요충지이다. 홍콩이 없었다면 지금의 중국 경제는 초라한 모습으로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홍콩 엑소더스 

지난 4일 캐리 람 홍콩행정장관이 홍콩 시위 사태의 발단이 됐던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을 공식 철회했다. 지난 6월 이후 계속된 송환법 반대 투쟁에서 홍콩 시민이 승리한 셈이다. 다만 홍콩 정부는 직선제 도입 등 시위대의 다른 요구는 거부하면서, 시위는 이젠 '홍콩의 민주화' '홍콩의 자유' 투쟁으로 발전하고 있다. 일부 시위대는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불태우며 노골적으로 반중성격을 드러내자 중국 본토의 무장병력 투입 여부를 두고 시진핑 국가 주석의 고민은 커지고 있다. 중국 본토의 무력사용은 중국이 약속한 일국양제를 스스로 깨는 것으로 자칫 '제2의 톈안먼 사태'로 확산될 우려가 있어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렇다고 다음달 1일 개최되는 신중국 70주년 행사 때까지 홍콩인들의 시위를 방치하는 것도 시 주석에게 큰 정치적인 부담이다.  홍콩뿐 아니라 위구르, 티벳, 몽골 등 자치구 지역에서도 독립의 도화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은 홍콩 사태가 중국의 안보와 주권을 위협한다면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또 홍콩 사태는 내부 문제이며 미국 등 외부의 개입을 강하게 비난해왔다. 지난 6월 미국 의회에 상정된 홍콩인권민주법안은 美 국무장관이 매년 홍콩의 자치수준을 점검해 미흡할 경우 미국이 1992년 홍콩에 부여한 무역,투자 등 경제특권을 박탈하도록 규정했다. 또 홍콩의 인권과 자유를 억압한 중국과 홍콩의 공직자에 대해 미국 비자 발급 금지, 자산동결, 미국과의 금융거래 차단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미국은 중국 당국이 시위 진압을 위해 무장병력을 투입해 유혈사태가 난다면 홍콩인권민주법안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있다. 이 특별대우가 취소된다면 글로벌 금융허브로서 홍콩의 지위는 치명적 타격을 입게 된다.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으로서도 그 타격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일부 홍콩 시위대들은 성조기를 흔들며 미국이 이 법안을 통과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 관영 환구신보는 지난 9일 "홍콩의 내정에 간섭하려는 미국의 망상은 베이징을 향한 압박카드에 불과하다"며 "홍콩을 지키고 책임지려는 베이징의 의지는 확고하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본토의 병력투입 소위 '핵 옵션'을 취하지 않더라도, 중국이 홍콩인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의 고삐를 더욱 조이면서 시민들의 거리 투쟁이 멈추지 않게 된다면 글로벌 기업과 투자가들의 홍콩 엑소더스는 가속화될 전망이다. 특히 선진화된 사법제도와 투명한 세정, 그리고 홍콩처럼 낮은 세율과 다양한 국적의 우수인력이 풍부한 싱가포르가 홍콩의 대체지로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다. 1978년 싱가포르를 방문한 중국 개혁.개방의 기수 덩샤오핑은 자신의 꿈이 중국에 싱가포르와 같은 도시를 1000개 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싱가포르 모델의 초현대 신형도시가 중국에 다수 건립되면서 상대적으로 홍콩의 위상은 과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홍콩 옆에 바로 붙어있는가난한 어촌마을에 불과했던 선전의 GDP 규모는 작년도 홍콩을 넘어섰다. 아시아에서 선전이 도쿄, 서울, 상하이, 베이징에 이어 경제규모 5대도시가 된 것이다.

홍콩사태의 내면에는 주택 부족과 소득불균형 등 고질적인 사회문제도 도사리고 있다. 또 중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 홍콩으로 이주하는 본토인이 매년 수만 명에 이른다. 홍콩의 젊은이들은 좋은 일자리를 놓고 이들과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중국 관영 영자매체 글로벌 타임스는 "홍콩은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전문직까지 좁은 주택에 아우성치는 등 직장과 주거 문제로 고통받고 있다"면서 "이런 문제를 정치적 시위로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되며 중국 본토와 협력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위사태 장기화로 홍콩의 경제 상황은 갈수록 암울하다. 2분기 GDP는 전년동기대비 0.4% 감소했다. 외국인 관광객도 '쇼핑 천국' 홍콩에서 대거 발길을 돌리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지난 10일 홍콩의 장기신용등급을 AA+에서 1계단 내리고 전망도 '부정적'으로 매겼다. 홍콩의 신용등급 강등은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되기 전인 1995년 이래 처음이다.  이유는 홍콩의 통치체제인 일국양제(一國兩制)가 느슨해져 중국과의 차별성이 약화됐다는 점이 지목됐다.

홍콩사태에 골머리를 앓고있는 최근 중국 당국은 선전을 '중국 특색사회주의 선행시범구'로 건설하겠다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글로벌 기업이 선전에 본사나 지사를 설립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국제기준에 맞는 법규와 투자 인수합병 정책을 시행하고 해외와 홍콩의 인재를 유치해 선전을 2035년 종합적인 경쟁력에서 세계 최고의 도시로 만들겠다는 안건이다. 이 계획으로 홍콩의 위상이 크게 흔들릴 것이라는 점을 중국언론 매체는 노골적으로 부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선전이 '국제금융 허브' 홍콩을 대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는 표면적 제도나 정책의 문제보다는 그 이면의 가치와 이념의 차이점이 크기 때문이다. 중국 경제 전문가 마크 윌리엄스는 "홍콩의 법규를 본떠서 중국 본토에 복제할 수는 있겠지만, 이 법규가 공정하고 예측할 수 있게 시행된다는 보장이 없다"고 지적했다. 법치주의와 자유뿐 아니라 투자 결정의 기본이 되는 투명한 정보의 흐름 수준에서도 근본적으로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홍콩이 없었다면 중국 경제는 지금처럼 발전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홍콩이 잘못된다는 것은 곧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고통에 신음하는 거위가 하루속히 안정을 되찾아 황금알을 계속 낳을 수 있도록 중국과 국제사회는 힘을 모아야 한다.  


 

홍콩 도심 센트럴의 시위대와 이를 취재하는 기자들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8일 홍콩 도심 센트럴을 시위대가 가득 메운 가운데 이를 취재하는 기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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