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성인지 감수성' 다시 확인...안희정 전 충남지사 징역 3년6월 확정(종합)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장용진·김태현 기자
입력 2019-09-09 12:57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피해자 진술 신빙성 인정돼... 안 전 지사를 무고할 이유없어"


지위를 이용해 수행비서를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희정(54) 전 충남지사에게 징역 3년 6개월이 확정됐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9일 피감독자 간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강제추행 등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의 상고심에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죄 심증 형성이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여야 하나, 모든 의심을 배제할 정도까지 요구되는 건 아니다”라며 진술의 일관성과 합리성, 거짓을 의심할 분명한 정황이 드러나지 않는 이상 신빙성을 의심해서는 안된다고 판단했다.

이날 대법원의 판결은 최초 폭로부터 지금까지 ‘안 지사의 위력 때문에 거부의사를 강력히 표시할 수 없었다’는 피해자 김지은씨의 주장을 전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안 전 지사는 2017년 7월부터 2018년 2월까지 수행비서 김지은씨를 상대로 업무상 위력을 이용해 4차례 성폭행을 저지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와 함께 5차례에 걸쳐 김씨를 강제추행하고 1회 업무상 위력으로 추행한 혐의도 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김씨의 진술이 대체적으로 사실로 보인다’면서도 김씨가 명시적으로 성관계를 거부했다고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거부의사를 안 전 지사가 위력으로 제압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1심 법원에서는 ‘성인지 감수성’을 감안, 김씨 진술의 대부분을 사실로 받아들이면서도 김씨가 명시적으로 거부의사를 표시한 적 없다는 점을 들어 무죄 판단을 내렸다.

김씨가 동료 비서관과 통화를 하며 고통을 호소했다고 주장한 부분에서 통화기록이 나오지 않는 등 신뢰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특히 피해자 김씨의 학력이나 연령으로 볼 때 명시적 거부의사를 표시하지 못할 사정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무죄판결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1심은 "김씨가 고학력에 성년을 훨씬 지나고 사회 경험도 상당한 사람"이라며 "김씨가 직장 내에서의 고용 안정 등의 면에서 취약했다고 봐도 안 전 지사가 김씨를 길들이거나 압박하는 행위를 했다고 볼 아무런 자료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안 전 지사의 부인인 민주원씨의 증언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민씨는 “김지은씨가 안 지사와 내가 잠을 자는 침실에 들어왔었다”면서 “진짜 피해자는 자신과 아이들이며, 안 전 지사와 김씨는 가정파괴범”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2심은 "(1심 판결은)정형화한 피해자 반응만 정상적인 태도로 보는 편협한 관점이다"라며 "김씨 진술에 일관성이 있고 비합리적이거나 모순이 없다"고 봤다.

피해자 김씨의 주장이 객관적 사실과 배치되거나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성인지 감수성’을 고려해 피해자의 입장이나 관점을 감안해 신빙성을 판단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2심 재판부는 "안 전 지사는 피해자가 자신의 지시에 순종해야 하고 그 둘 사이의 내부사정을 드러내지 못하는 취약한 처지를 이용해 범행을 저질러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현저히 침해했다"면서 "안 전 지사가 적극적으로 위력을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다르게 봤다.

특히 "법원은 성폭행 사건을 심리할 때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게 해야 한다"며 "개별 사건에서 피해자가 처한 특별한 사정은 고려하지 않고 피해자 진술 증명력을 배척하는 건 정의 형평에 입각한 논리적 판단이 아니다"고 말했다.

동료 비서관의 진술에 대해서도 "피해자 진술에 일관성이 있고 허위의 피해 사실을 지어내 진술했다거나 피고인을 무고할 만한 동기나 이유가 있다고 볼만한 자료가 없다"고 신빙성이 있다고 봤다.

대법원 역시 2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봤다.

대법원은 "성폭행 등의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편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며 성폭력 사건에서 법원의 성인지 감수성(gender sensitivity)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로서 이 사건은 지난 해 3월 김씨가 한 방송에 직접 출연해 피해사실을 폭로한지 1년 6개월만에 법적 판단이 마무리됐다.

안희정 징역형에 기뻐하며 법정 나서는 김지은씨 측 변호사 (서울=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 지위를 이용해 수행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징역 3년 6개월이 확정된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수행비서 김지은씨의 변호인단인 장윤정 변호사가 활짝 웃으며 법정을 나서고 있다. ·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