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노숙자에서 한국거래소-MBC-청와대까지! 새로지음발전소 한준호 이사장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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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이 기자
입력 2019-09-09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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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거래소-MBC-청와대‘ 새로지음발전소 한준호 이사장이 거쳐 온 이력들을 보며 입이 벌어질 정도이다. 여기에 아이큐 163의 멘사(Mensa) 회원까지! 완벽함을 가지고 있는 ‘엄친아’다.

그런데 그도 한때는 노숙자 생활을 했다. 제대 후 집안 사정으로 서울역을 떠돌아다니며 생활을 하며 주유소에서 숙식을 하며 등록금과 생활비를 직접 벌었고 2평짜리 아이스크림 가게를 운영하기도 했다.

지금 현재 그는 새로지음발전소를 통해 도시재생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노숙자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의 다이내믹한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사진= 김호이 기자/ 새로지음 발전소 한준호 이사장]


Q. 노숙자에서 아나운서 그리고 청와대 행정관까지 여러 도전을 하셨는데,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오신 건가요?

A. 계속해서 도전과 용기를 반복하면서 살아온 거 같아요. 우선 저는 대학시절에 데이콤이라는 회사에 합격을 해서 프로그래머로 1년 정도 생활을 했었어요.

그런데 데이콤이 LG로 들어가는 민영화 단계일 때 제가 결혼도 하고 아이도 생기면서 자연스레 불안감을 느껴서 코스닥(현 한국거래소)에 입사를 했고 거기서 4년 정도 일을 하다가 우연히 방송을 많이 나갔는데 주변에서 방송을 직접 해보는 게 어떻냐는 얘기를 듣게 됐어요. 그때 시험을 봤는데 MBC에 우연히 합격을 한 거죠.

그래서 2003년에 MBC로 이직한 뒤 MBC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그 이후에는 싱가폴 유학을 갔다가 다시 와서 기획부나 사업부, 예능 PD와 같은 곳으로 많이 쫓겨 다녔어요. 그러다가 작년 2월에 서울시장선거캠프에 홍보총괄 겸 대변인으로 가면서 MBC를 그만두고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실에서 수석보좌관(행정관)으로 일을 했습니다. 올해 2월부터는 새로지음 발전소를 만들면서 바깥으로 나오게 됐어요.

Q. 원래부터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었던 건가요?

A. 사실 제 꿈은 어렸을 때부터 민항기 조종사 였어요. 제 모든 아이디가 다 pilot tier을 쓰는 이유도 거기에 있고요. 그런데 대학생 내내 조종사 시험을 준비하다가 대학교 4학년 1학기 때 봤던 대한항공 조종사 시험에서 떨어졌어요. 이후에 어떻게든 직장에 들어가야 하니까 이곳저곳 시험을 보다가 데이콤에 들어가게 됐어요.

Q. 조종사에 대한 아쉬움이나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없으신가요?

A. 아쉬움은 많죠. 제 아이들 중에 아들이 2명이 있는데 이 둘 중 누군가는 조종사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아이들에게 제 꿈을 강요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이제 40대 중후반으로 가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제가 다시 조종사를 도전할 수는 없고요. 이후에 딱 한번 도전한 적이 있었는데 아내는 '남편의 조종사라는 삶'을 원하지 않았는지 아시아나항공 시험을 보던 때 아내가 만류를 해서 꿈을 접었습니다.

Q, 지금 현재 가지고 있는 꿈이 있으신가요?

A. 저는 세상에 활력이 되는 일을 만들어 보고 싶기 때문에 먼저 '청년 창업'이고요. 우리 기성세대들이 혜택 받은 삶들을 청년들에게 못 물려준 것에 대해서 미안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지역자치단체들과 함께 하는 도시재생'을 통해서 그런 부분에 대한 발판을 마련하고 싶어요.

Q. 원래부터 창업에 관심이 많으셨던 건가요?

A. 많았죠. 저도 개인적인 엔젤투자도 하고 있고, 스타트업들을 만나고 투자에 관여를 한 건 6년 정도 돼요. 그러면서 여러 기업과 스타트업들을 만나서 컨설팅도 진행해오고 있어요.

사실 직접 창업에 뛰어든 건 이번이 세 번째인데 대학교 4학년 1학기 때 개인적인 아이스크림가게를 창업을 했어요. 두 번째로는 제가 지금도 갖고 있는 축구용품 회사를 창업했어요. 이번은 창업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새로지음 발전소의 설립자로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Q. MBC 생활을 하면서 손석희 대표와 첫 대면을 했을 때 어떠한 말을 했었나요?

A. 손석희 라는 존재감은 아나운서의 직업을 거친 사람에게는 어마어마해요. 첫 대면에 수업을 하시는데 인터뷰 수업이었어요. 손석희 선배께서 제게 물으시더라고요. "인터뷰가 뭐야?”라고 했는데 저희가 뭘 알겠어요.

입사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런데 선배께서 “야, 인터뷰는 잘 듣는거야. 잘 듣기 위해서 상대방을 조사하고 상대방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풀어주는 거야", “잘 듣다가 궁금한 점이 생기면 결코 그냥 넘어가지 마, 네가 준비한 게 아무리 많아도 궁금한 게 있으면 그걸 다 풀 때까지는 집중해서 항상 물어 봐. 그 궁금증을 해결하는 것 자체가 인터뷰가 성공하는 방법이야”라고 설명하시더라고요.

저는 그래서 인터뷰 준비는 많이 해가되, 그 사람에게 제일 궁금한 것들을 위주로 추가질문을 계속해서 던지는 버릇이 생겼어요.

Q. 손석희 사장의 말씀이 아나운서의 생활 그리고 더 나아가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떠한 도움이 되었나요?

A. 상대의 이야기에 있어서 말문을 트게 만들어주고 상대의 이야기를 더욱 많이 듣게 됐어요.

상대들에게 말을 많이 하게 되면 내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떨어져 나가는데, 내가 상대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면 상대들이 내 주변에 많이 모이게 되더라고요.

제가 여러 가지 모임을 하고 사람들이 주변에 많은 이유 중 하나가 남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그러면서 같이 고민하면서 솔루션도 제공해주기 때문이에요. 저는 그 중에서도 남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을 잘 하는 것 같아요.

Q. 청와대 행정관을 지내면서 MBC 아나운서의 경험이 도움이 되었나요?

A. 저는 방송사에서 방송을 직접 하기도 했고 방송 정책을 다루기도 했는데 방송을 해봤던 경험에서는 '어떤 것들을 홍보를 해야 될까'에 대한 포인트를 잡을 수 있었어요. 방송정책을 했던 입장에서는 수석께서 이해를 못하시는 방송 정책들을 쉽게 이해를 시켜드리면서 정책을 풀어나가는 방식에 대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었어요.

Q. 현재 이사장으로 계신 ‘새로지음’은 어떤 곳인가요?

A. 도시재생 사업을 벌이는 곳인데,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사업이 아니라 '구도심들을 중심으로 도시가 가지고 있는 특색들을 그대로 生(생)을 불어넣는 작업들을 하는 것이 앞으로 도시재생의 방향이다'라는 캠페인성 운동을 벌이고, 활동가분들과 같이 만나서 도시재생이 재건축이나 재건으로 가지 않도록 하는 비영리 법인이에요.

Q. 한준호 이사장의 대학생활은 어땠나요?

A. 공부를 참 열심히 했지만 한편으로는 생활이 너무 어려워서 돈 버는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학생이어서 대학생활이 기억이 잘 안나요. 그래서 저에게 대학생활을 잊혀진 꿈같은 생활이었어요.

특히 수학을 전공하다 보니까 일주일에 사흘정도 밤을 새서 공부를 하지 않으면 학업성적을 따라갈 수 없었고 한달에 3개 이상의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생활이 어려웠고 방학기간이 되면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서 하숙집을 나와서 숙식이 제공되는 아르바이트 장소로 옮겨서 생활을 해야 됐기에 대학생활 자체가 많이 힘들었어요.

Q. 그렇다면 학창시절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A. 만만치 않았어요. 아버지께서 공무원이셨어서 자주 전근을 다니셨고 그래서 제가 초등학교 전학을 7번이나 다녔기 때문에 초등학교 때 친구가 없었어요.

중학교 때쯤 돼서는 전주라는 지역에 안착을 하긴 했는데 중학생 내내 전주생활에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하느라 힘들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고등학교 3년은 학업문제뿐만 아니라 그 당시에 집안이 부도가 나는 일도 있어서 굉장히 심리적으로 힘들었던 기간이었던 것 같아요.
 

[사진= 김호이 기자/ 인터뷰 장면]


Q. 한준호 이사장께서는 말하지 못한 비밀이나 말할 수 있는 비밀을 가지고 계신 것이 있으신가요?

A. 말할 수 있는 비밀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하나 둘씩 풀어나가는 거 같아요.

그리고 예전에는 저의 재능 자체가 바로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는데 이제는 제가 가지고 있는 고민을 사람들과 공유를 하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후배나 동료들 같은 경쟁을 하는 관계에서 말을 하지 못했던 저만의 노하우들 그리고 저의 다채로운 이력을 통해 할 수 있었던 여러 가지 사회활동들을 사람들에게 오픈하면서 같이 공유를 하고 있죠.

Q. 아나운서는 말을 잘해야 된다고 하는데, 말을 잘 하는 건 무엇이고 말을 잘 하기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인가요?

A. 전달이라는 개념에서 보면 텍스트로 전달을 하는 건 영어단어로 '스펜드(spend)'로 풀 수 있다면 전 언어의 전달은 일종의 배달인 '딜리버(deliver)'라고 생각해요. 제가 언어의 전달을 했는데 상대가 거기에 대한 피드백이 없으면 전달이 잘됐다고 할 수가 없겠죠.

그래서 언어에 있어서 전달은 상대와 호흡을 하는 거예요. 상대의 눈빛, 동작, 행동, 표정들까지가 다 피드백이거든요. 이걸 계속 들으면서 거기에 맞춰서 계속 전달을 해가는 것이기 때문에 '전달에 대한 개념'이 있어야 말을 잘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Q. 지금까지 많은 커리어들이 있으신데 그중에서 다시 하고 싶다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방송이요. 한참 방송을 열심히 하던 나이와 연차 그리고 사람들에게 관심을 많이 받던 시기에 타의에 의해 방송을 놓게 됐기 때문에 항상 방송을 다시 해보고 싶어요.

Q.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로 간 이유가 있나요?

A. 사실 저는 청와대로 들어갈 때 제 역할에 대한 필요 때문에 윤영찬 수석님께 연락을 받고 1시간 넘게 면접을 했는데 주로 '수그러드는 지상파의 해결방안은 무엇인가'와 'OTT 서비스'에 대한 질문들을 많이 하셨는데 제가 답변을 아주 잘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부분에서, 제가 당신을 보좌하기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저를 컨택하셨고 그것에 저는 응답을 한 거예요.

Q. 앞으로 가장 해보고 싶은 일들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제가 관심 갖고 있는 것 중에 도시재생이라는 것이 있어요. 이 도시재생을 사회적으로 더욱 이슈화시켜서 각 지역에 남아 있는 우리의 문화유산과 문화의 특성을 고스란히 살린 후 후세들에게 잘 넘어갈 수 있는 제대로 된 도시재생 운동을 하고 싶어요.

둘째로는 청년 창업에 대한 걸 계속 하고 싶어요. 제가 브랜드를 가진 많은 회사들을 거쳐 갔지만 이게 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청년들이 너무 브랜드에 급급해서 회사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브랜드를 버렸을 때 자기 자신이 무엇인가, 그리고 자기의 꿈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너무 브랜드에 급급해 하지 말자는 게 제 생각이에요.

Q. 마지막으로 밑바닥을 찍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A. 발돋움을 할 때는 '바닥'이 있어야 해요. 어느 정도 성장한 사람들이 거기서 퀀텀 점프를 하지 못하거나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는 건 바닥이 없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바닥이 있기 때문에 시작하기가 좋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요즘 용기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데 '용기를 내십시오'라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여러분의 생각도 옳을 수 있다'라는 생각을 가지십시오. 나도 옳을 수 있다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남들이 갔던 길. 그건 공식이 아니에요. 성공이라는 말에는 공식이 없어요.

그리고 도전을 하는데 있어서는 스펙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용기가 필요한 거죠. '내 방식이 틀렸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가지기보다도, 자신만의 방식도 옳을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진= 김호이 기자/ 한준호 이사장과]

-김호이의 사람들-
인터뷰: 김호이
기사 작성 및 수정: 김호이/ 김해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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