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민주투사'로 변신한 홍콩 재벌...라이치잉 지오다노 창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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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예지 기자
입력 2019-09-02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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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콩 부호 중 유일하게 송환법 반대 시위 적극 동참

  • 2014년 우산혁명 지원도...'홍콩사태 배후 4인방' 지목

라이치잉 넥스트미디어그룹 회장 [사진=인민일보]

중국 언론들은 그를 '반역자', '폭동의 주도자'라고 비난한다. 홍콩에서는 '민주투사'이자 '영웅'이다. 라이치잉(黎智英) 넥스트미디어그룹 회장의 얘기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2일 라이 회장이 지난 주말 홍콩 시위현장에서 시위를 주도했다며, “라이치잉이 홍콩을 폭력의 구렁텅이로 빠뜨리고 있다”며 “그의 ‘검은손’이 홍콩을 망치고 있다”고 비난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지난달 31일 ‘라이치잉은 반역자다’라는 제목의 사평을 통해 “홍콩 시위는 평화시위가 아니며, 폭력이 난무하는 폭동”이라며 “라이치잉으로 대표되는 ‘매국노’가 서양세력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국 언론들이 유독 그를 거세게 비난하고 있는 이유는 그가 홍콩 갑부 중 사실상 유일하게 시위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영향력이 크기도 하다.

중국식 이름보다 영어 이름인 ‘지미라이’로 더 잘 알려진 그는 의류브랜드 ‘지오다노’의 창업자로 1조원 이상의 재산을 가진 홍콩 거부다. 2015년 초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전세계 영향력 있는 100인’에 들었으며, 같은 해 블룸버그통신도 그를 ‘전세계가 주목할 50인’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다른 홍콩 부호들과 달리 민주화 시위에 적극 나섰다는 이유에서다.

1948년 중국 광둥성에서 태어난 라이 회장은 홍콩으로 밀항한 후 의류업계에 몸을 담았다. 의류사업으로 승승장구하던 그가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89년 톈안먼 사태 덕분이다. 미디어사업을 시작해야 겠다고 맘먹고 홍콩과 대만에서 ‘넥스트미디어’라는 이름의 회사를 세우고 1995년 빈과일보를 창간했다.

라이 회장이 본격적으로 민주화 운동에 뛰어든 건 2014년 홍콩 ‘우산혁명’부터다. 당시 시위는 행정장관(홍콩 행정수반) 직선제를 요구하며 79일간 이어졌다. 라이 회장은 학생들이 주도한 시위에 금전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비공식 국민투표 캠페인을 도왔다.

활발한 민주화 활동 탓에 고초를 겪은 적도 있다. 2015년 1월 빈과일보 건물에 누군가 화염병을 던지고 도망간 테러가 일어났고, 시위에 엮여 일시 구금되기도 했다.

라이 회장은 굴복하지 않고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반대로 시작된 이번 시위에서도 반중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고 있다. 지난 주말 시위에서 그는 “지금 홍콩의 정세가 긴박해지고 있지만 우린 계속해야 한다”며 시위를 주도했다.

지난 7월에는 미국을 방문해 마이크 펜스 부통령,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홍콩 문제를 두고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중국에서 홍콩 사태 배후 4인방으로 지목된 이유다.

인민일보는 그와 함께 홍콩 민주당 창당 주석을 지낸 마틴 리, 홍콩 대표 여성지도자인 안손 찬, 앨버트 호 민주당 의원 등을 4인방으로 지목했다. 신문은 “지미라이는 외세의 반중 도구로 이용됐으며, 극단적인 위법 행위를 선동했다”고 비난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가 홍콩 시위 사태의 배후로 지목한 '4인방'.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지미 라이, 마틴 리, 앨버트 호, 안손 찬. [사진=인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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