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 반이민 '트럼프 장벽'에 美근본을 잃고있다

이수완 논설위원입력 : 2019-08-15 06:00
자유의 여신상 vs 멕시코 국경장벽
 

이수완 논설위원[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자유로이 숨쉬기를 갈망하는 이들, 삶에 지친 가여운 무리들을 나에게 보내다오'

미국으로 이민 행렬이 대거 이어졌던 19세기말부터 20세기 중반, 몇 날 며칠을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건너온 절박한 영혼들을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평화의 횃불을 높이 치켜든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거대한 여신상이었다. 뉴욕 허드슨강 하구의 리버티섬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The Statute of LIberty)은 130년 넘게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으로 우뚝 자리잡고 있다.

이 여신상은 프랑스 천재 조각가 프레드릭 오귀스트 바르톨디의 작품으로, 프랑스가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1886년에 기증 했다. 바르톨디는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여성, 어머니의 얼굴을 보면서 자유의 여신상을 설계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어머니와 닮은 모델을 구해 작품을 완성했다.  또 모델이던 그 여인과 결혼까지 하게 된다.

자유의 여신상 본체 높이는 46미터로 미국이 제작한 받침대 포함하면 93미터에 이른다. 이곳 받침대 입구의 현판에 미국 뉴욕 태생의 여류 시인 에머 래저러스(Emma Lazarus)가 지은 시 '새로운 거상' (The New Colossus) ( 1883)이 새겨져 있다. 글귀를 보면 횃불을 든 강인한 여인의 이름은 방황하는 유랑민의 어머니(Mother of Exiles)이다. 그녀는 세계를 향해 환영의 불꽃을 비추며 온화한 눈길로 항구를 굽어보며 묵묵히 명한다. '자유로이 숨쉬기를 갈망하는 이들, 삶에 지친 가여운 무리들을 나에게 보내다오.'
 

{자유의 여신상, 연합뉴스] .


자유의 여신상의 지척에는 엘리스섬이 보인다. 1892년부터 1954년까지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꿈꾸었던 이민자 1200만여명이 입국 심사를 받은 장소이다. 이곳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이민자들의 수용 시설은 박물관으로 새롭게 단장, 조상들의 서글프고 치열했던 이민사를 돼새겨 보려는 미국인들과 각국에서 몰려온 관광객들로 항상 붐빈다.

인종, 피부색, 문화, 종교, 언어 등 모든 면에서 미국만큼 다양한 나라는 없다. '인종의 용광로' 또는 '멜팅 팟(melting pot)'은 미국을 상징하는 단어이다. 각각의 이민자 문화가 서로 혼합되어 동화, 결과적으로 단 하나 의 유일한 공통 문화를 형성해가는 사회를 의미한다. '기회의 땅' 아메리카에서 다양한 인종들이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를 같이하면서 오늘날의 세계 최대부국 미국이 건설된 것이다.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리버티섬의 자유의 여신상에 매료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거대한 모습 때문이 아니다. 그 속에 담긴 의미와 가치 때문이다. 전쟁으로 가족과 형제를 잃은 사람과 가난과 독재 정권에서 고통 받았던 사람, 그리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자유와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상징물이기 때문이다.

불법 이민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12일 저소득층 이민신청자의 합법적 이민을 사실 상 거부하는 새 규정을 발표했다. 이리하여 식료품 할인구매권이나 주택지원, 저소득층 의료비 지원프로그램인 메디케이드 등의 복지 지원을 받는 생활보호 대상자의 경우 영주권을 받기 힘들어 졌다. 오는 10월 15일 부터 적용되는 이번 규정은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 가운데 가장 과감한 조치로 평가 받고 있다. 소득이 적거나 교육을 적게 받은 영주권 신청자 수십만명이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새 규정이 세계 미국 영사관에서 비자를 신청하는 수백만명의 사람들에게 적용이 될 경우 그 여파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美이민당국 수장인 켄 쿠치넬리 국토부 시민권.이민서비스 국장 대행은 12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이민자들이 자급자족하고 사회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새 규정의 취지이며 "그것이 아메리칸 드림의 핵심의 원리"라고 강조 했다. 그는 13일 CNN에 출연해 자유의 여신상에 새겨진 이민자를 환영하는 시를 "제대로 된 계급이 아니라면 형편없는 계급주의 사회였던 유럽에서 온 사람들"을 가르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같은 날 공영방송 NPR과의 인터뷰에서 " '스스로 자립할 수 있고, 생활보호대상자가 되지 않을' 지치고 가난한 이들을 나에게 보내다오"라며 아예 시의 문장을 바꾸기도 했다. ,

야권과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 비판자들은 이번에 발표된 새로운 규정은 자유의 여신상에 새겨진 글귀에 내포된 고귀한 미국의 가치와 이상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정책이라고 주장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미-멕시코 국경장벽 건설과 함께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은 내년도 대선을 앞두고 최대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미.멕시코 국경장벽 

트럼프 대통령은 불법 이민을 '침략'에 비유한다. 남부 멕시코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넘어가는 중남미 출신 이주민들을 막기 위해 국경 단속을 강화하고, 민주당과 인권 단체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추가 장벽 건설을 밀어 부치고 있다. 

멕시코는 올해 들어 미국의 관세 폭탄 위협에 굴복, 자국을 경유해 미국으로 향하는 이주민들에 대한 단속을 대폭 강화 했다. 또 망명 신청자가 미국 법원의 결정을 기다리는 동안 멕시코에서 대기하도록 하는 이른바 ' 이민자보호규약 (MPP)' 정책을 확대하는 것에 동의했다. 망명 신청을 통해 합법적인 미국 입국이 극도로 어려워진 가운데 국경 순찰대까지 대폭 보강되자, 험준한 지역도 마다하지 않고 아이까지 데리고 밀입국을 시도하면서 이민자들의 사망 사고가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엘살바도르 출신 2살배기 여아가 미-멕시코 국경지대의 리오그란데강을 건너다 20대 아빠의 목을 끌어안은 채 주검으로 발견된 사건은 전 세계인을 충격과 슬픔에 빠뜨리게 했다. 이 사건으로, 초강경 이민정책에 대한 비난 여론이 고조되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뒤로 물러서지 않을 태세이다.

미국으로 몰려오는 중남미 3국 (온두라스.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주민들은 대부분 마약 거래와 관련된 갱단의 폭력과 살인을 피해 조국을 떠난 사람들이다. 현재 난민법에 따라 이들 3개국 출신 이주민들에게 '임시보호지위(TPS. Temporary Protected Staus)'를 줄 수 있다. 트럼프의 2020년 재선 '핵심 공약'은 '캐러밴(미국 망명 신청을 위해 대규모로 몰려오는 중남미 출신 이주민 행렬)을 막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지난 대선에서 공약한대로 추가로 국경 장벽이 필요하다. 트럼프는 미-멕시코 국경장벽 건설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 말부터 35일에 걸친 연방정부 셧다운(부분 업무정지)을 감수하며 민주당과 대립하기도 했다. 

미-멕시코 국경은 3140여km이다. 한반도 휴전선 길이의 12배가 넘고, 중국 만리장성 길이의 반이나 되는 광활한 지역에 9m의 장벽을 설치, 중남미의 불법이민자들이 절대 넘어오지 못하게 하자는 트럼프의 '황당무계'한 주장은 美 대선 공화당 경선 당시 선거용 구호 정도로 취급 받았다. 그 이유는 다들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을 지나치게 낮게 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공약 그 자체로도 많은 허점과 무리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미-멕시코 국경은 미국의 4개 주와 멕시코의 6개 주에 접하고 있다. 합법, 불법을 떠나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의 사람이 횡단을 하고 있다. 매년 3억 5000만명이 (합법적으로) 국경을 넘고 있다. 또 매년 100만명 이상의 불법 입국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국경의 상당 부분(약 1040km)에는 이미 장벽이 존재한다. 트럼프는 충분한 장벽 예산을 확보해, 나머지 빈 구간을 메우거나 기존의 펜스 장벽을 훨씬 견고하고 높게 만들고자 하지만, 민주당은 트럼프가 불필요한 안보위기를 조장한다면서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2월 비상사태를 선언하면서 "멕시코 국경에서 벌어지는 마약, 폭력조직, 인신매매 등은 미국에 대한 침략'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장벽 건설을 통해 범죄자나 불법 이민자들을 차단하는 효과는 매우 제한적일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현재 미국에 체류중인 불법 이민자는 1100만명 수준이다. 이들 중 65% 정도가 합법적으로 입국했다가 체류기한을 넘겨 불법 이민자가 된 사람들이라고 영국의 인디펜던트紙는 보도했다.

과거 미등록 이민자 출신으로 현재 텍사스대에서 남미 이민자 문제를 연구하고 있는 나디아 프로레스는 구조적으로 미국 사회는 이민자들에 대한 노동력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에 "장벽이 있든 없든 노동자들은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이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건너간다"고 분석했다. 일반 미국인들이 하기 싫어하는 밑바닥 일자리에 대한 수요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병종 숙명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200여년의 짧은 미국 역사는 기본적으로 유럽인들의 이민과 함께 시작되었다"며 "아시아와 남미의 이민자들을 억압하는 현재의 상황은 이율배반적이고 미국의 인종정책이 실패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멕시코 국경문제에 대한 강수를 고집하는 것은 2020년 대선을 앞두고 지난 대선에서 자신에게 표를 몰아준 백인 복음주의자 등 자신의 핵심 지지층 결집을 위한 승부수로 보인다. 그가 세울려는 거대한 장벽은 반이민정책의 대표적인 거대한 상징물이다. 그러나 전쟁, 독재, 가난을 뒤로하고 꿈과 희망을 가슴에 품고 대서양을 건너온 이민자들을 온화한 미소로 맞아 주었던 자유의 여신상이 인류에게 던지는 고귀한 메시지는
잊혀져선 안된다. 미국의 영혼도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다.

 

美국경 건너다 숨진 엘살바도르 부녀 묘소 조화 (산살바도르 로이터=연합뉴스) 미국과 멕시코 국경 리오그란데 강을 건너다 숨진 엘살바도르 출신 이주자 오스카르 알베르토 마르티네스 라미레스(25)와 23개월 된 딸 발레리아가 묻힌 모국의 수도 산살바도르의 라 베르메하 묘소 앞에 7월 1일(현지시간) 조화가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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