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日쇼크에 미중환율전쟁까지…한국 'R의 공포'

이수완 논설위원입력 : 2019-08-09 09:55
제2의 플라자 합의? 장기전 대비하라

이수완 논설위원[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닉슨 쇼크'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패권국가로 등장했다. 이때 美달러화는 기축통화로 인정받으며 유일하게 금 가치와 연동되었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전쟁 당시 막대한 전비를 충당하기 위해, 금을 충당하지 않고 대량으로 달러화를 찍어냈다. 또 베트남전 비용 마련을 위해 달러를 지속적으로 대량 발행했다. 이에 따라 각국의 달러기준 고정환율은 균형을 잃고 심각하게 왜곡된다. 미국은 수출 감소로 무역을 통해 들어오는 달러가 줄어들면서 보유한 금을 대량으로 매각해야만 했다. 패전 국가이던 독일과 일본은 한국과 베트남 전쟁의 특수에 힘입어 경제를 급속히 부흥 시킨 반면, 미국은 만성적인 무역 적자에 시달리며 쇠락의 길로 향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달러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도 크게 추락했다. 달러 가치의 하락으로 손실을 우려한 일부 유럽 국가들은 보유 달러를 금으로 교환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면서 미국을 바짝 긴장 시킨다. 미국은 이들 국가에게 금태환(달러를 금으로 교환) 요구를 자제할 것을 호소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전후 자유무역 질서를 주창했던 미국은 수입품에 과징금을 부과하는 보호무역 조치로 전환한다. 그러나 일본과 독일의 대미 수출은 결코 줄지 않았다. 1971년 8월 13일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금태환 중단 명령을 내리게 된 배경이다

이른바 '닉슨 쇼크'로 당시 세계 금융시장은 한동안 마비가 된다. 당시 닉슨의 금태환 중지 선언은 금이 미국에서 한꺼번에 유출되는 사태를 막았다. 그러나 이로 인해 1944년 7월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튼우즈에서 체결된 국제통화체제는 사실상 붕괴되고 만다. 이후 1976년 11월 자메이카 수도 킹스턴에서 개최된 IMF 총회에서 마침내 달러의 금 본위제(gold standard)가 폐기 된다. 달러가 기축 통화가 될 수 있었던 전제, 즉 일정한 가치를 유지하여 언제든 일정 무게의 금으로 교환된다는 조건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동안 달러에 고정된 환율을 유지했던 각국의 화폐 가치도 지금처럼 변동이 가능하게 됐다.

킹스턴 체제

금본위제 포기로 인해 미 달러화는 실질적 가치와는 관계없는 명목화폐, 즉 가짜 돈이 되었다. 킹스턴 체제 이후에도 미국의 달러는 기축통화 지위가 유지됐을 뿐 아니라 필요시 무제한 발행도 가능하게 되었다. 미국 정부에게는 화폐 발행권이 없고 채무 발행권을 가지고 있다. 국채가 달러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의 경찰 미국은 막대한 군사비 지출로 재정 적자는 눈덩이처럼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중국과 일본 독일 등의 수출 공세로 무역 적자 규모도 엄청나다. 만성적으로 재정과 무역의 '쌍둥이 적자'에 시달리는 미국은 부족한 달러 자금을 메꾸기 위해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구조적으로 달러화는 발행과 동시에 채무가 발생하고, 채무상환과 동시에 소실된다. 채무는 영원히 상환될 수 없는 구조이다. 채무가 상환되는 순간 달러는 소실되어 세계 기축통화로서 역할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중국 등 미국과의 무역에서 흑자를 낸 국가들은 보유하고 있는 달러 일부를 이자가 붙는 미 국채에 투자한다. 그리하여 달러나 미 국채가 하락하면 좋아할 나라는 없다. 어느 나라도 미국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설계된 현재의 통화체제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군사력으로 경제력으로 상대가 안되기 때문이다.

환율의 무기화 

많은 전문가들이 예측한 대로 중국과 관세폭탄을 주고받던 미·중 무역분쟁이 마침내 통화전쟁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5일 '포치(破七·위안화 가치가 달러당 7달러 아래로 내려가는 것'에 대응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1994년 이후 25년 만에 처음이다. 세계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미·중 무역 갈등이 폭발력이 엄청난 통화정책으로 번지면서 국제금융시장은 요동치고 있다. 이른바 'R(Recession. 경기침체)의 공포'가 확산되면서 금, 국채 등 대표적 안전 자산으로 자금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각국은 환율전쟁 확전과 장기화에 대비 서둘러 금리 인하에 나서는 모습이다. 지난달 3년 만에 금리를 내린 한국은행도 추가 인하를 저울질 하고 있다. 향후 관심사는 트럼프의 환율 압박이 엔화, 유로화, 파운드화 그리고 우리의 원화에 이르기까지 확대될 것인가 여부다. 또 중국이 위안화 가치 하락을 어느 정도까지 용인할 것인가? 또 트럼프의 전방위  무역공세에 대응해 중국이 보복 카드를 사용할 것인가 등이다. 
 
중국의 대미 보복 카드로 꼽히는 것은 미국에 대한 희토류 수출 중단 조치와 '미국 국채 매각'이다.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으로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 국채 규모는 1조1천억 달러 수준이다. 작년 6월에 비해 810억달러가 감소한 수치이지만 중국은 여전히 세계 제1위 미 국채 보유국이다. 환율전쟁 차원에서 세계 1위 미 국채 보유국인 중국이 대거 미 국채 매각에 나서면, 세계 금융시장의 충격은 그야말로 시계 제로이다. 하지만 중국이 보복 차원에서 마냥 미국 국채 매각을 진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중국의 자해 행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 국채를 대량 매각하면 중국이 미국 국채에 묻어둔 자산 가치도 함께 떨어진다. 또 달러대비 위안화 가치가 상승하며 미국의 고율 관세로 타격을 입은 수출 섹터가 더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제2의 플라자 합의?

앞으로 미·중 패권 경쟁이 어떤 식으로 전개가 되든 간에 양국의 무역 갈등은 너무 복잡하게 얽혀있고 제대로 하나씩 분리해 해결할 수도 없는 구조에 갇혀 있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공격은 보복의 부메랑을 피할 수 없 는 상황이다. 또한 무역이나 경제뿐 아니라 군사·안보·기술분야에서도 중국은 미국을 크게 위협할 정도로 몸집이 커졌다. 미국이 과거 '플라자 합의'를 통해 경제적으로 강력하게 부상하던 일본을 굴복시켰지만, 중국은 일본과 다르다. 중국은 14억 인구의 거대한 내수 시장이 있고 군사·안보적으로 미국에 의존하지도 않는다.

1980년대 초 미 달러화는 미국의 대규모 무역 적자에도 불구하고 고금리 정책과 미국의 정치적, 경제적 위상 때문에 강세를 지속하면서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았다. 미국은 국제 외환시장에서 선진국들의 공동 개입을 주도해 문제 해결에 나선다. 1985년 9월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영국(G5) 재무장관은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공동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해 미 달러를 일본 엔과 독일 마르크에 대해 절하시키기로 합의 한다. 이후 2년간 엔화와 마르크화는 달러화에 대해 각각 65.7%와 57% 절상됐다. 당시 미국 경제를 위협하던 일본은 수출 경쟁력을 잃고 '잃어버린 20년'의 어둠 속으로 향하게 된다.

'아메리카 퍼스트' 공약을 내세우며 당선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국제사회 '게임의 룰'을 바꿀 수 있다는 1980년대식 미국 정부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플라자 합의의 주역이었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를 미 무역대표부 (USTR) 대표로 임명해 중국과의 무역 협상에 나서게 했다. 과거처럼 미국은 환율 압박과 고율 관세 부과 등을 통해 중국의 항복을 받아낼  수 있을까?  과연 트럼프는 중국으로부터 '제 2의 플라자 합의'를 이끌어 낼 의도인가? 현재로선 어느 누구도 장담 못한다.

이번 중국에 대한 미국의 환율 조작국 지정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그 기준이 너무 자의적이고 모호하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통상 미국 재무부가 매년 4월과 10월 내는 환율보고서를 통해 환율조작국 여부를 판단하지만 이러한 통상적 절차가 생략됐다. 그는 미국 경제의 호황에도 불구하고 독립성이 보장된 연방중앙은행까지 마구 뒤흔들며 금리 인하를 이끌어 냈다. 이번 환율조작국 지정도 트럼프의 즉흥적이며 독단적인 결정일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미국의 결정을 '악랄한 행위'라며 맹비난하면서 정면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번 사태로 지난 6월 말 일본 오사카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이뤄진 미·중간 '휴전' 합의는 사실상 깨졌다. 미국이 9월부터 3000억 달러 중국 제품에 10% 관세 부과까지 예고되어 있어 미·중 갈등은 이젠 브레이크 없는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장기전 대비하라  

국제 외환시장에서 위안화 환율은 지난 5일부터 연속 심리적 마지노선인 달러당 7위안 이상을 나타냈다. 8일과 9일에는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도 기준환율 성격인 중간환율을 7위안 이상으로 고시했다. 기준환율은 중국 정부의 환율 기조를 반영하는 정책 시그널로 간주된다. 7위안 고시는 중국 정부가 미국을 겨냥한 반격 차원에서 위안화 약세를 용인하겠다는 뜻을 공식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에 맞서 환율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중국에게는 위안화 값이 떨어지면 관세 부과에 따른 충격을 상쇄할 수 있지만 여러가지 위험 요소도 따른다. 우선 외국 자본 이탈이 가속화 되어 금융시장이 크게 요동칠 수 있다. 또 달러 표시 부채를 짊어진 수많은 중국 기업들의 부담도 커지면서 경기 침체를 가속화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관리환율변동제를 도입하고 있는 중국은 위안화 약세를 계속 용인한다기보다는 적정수준에서 관리를 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미·중 무역전쟁 심화와 안전 자산 선호로 신흥국의 환율이 치솟아 국제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릴 전망이다. 특히 이번  환율전쟁은 장기화돨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그 심각성이 더하다. 대중국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는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  경기 경착륙과 자본 유출 등 최악의 사태에 대비하고 금융 시장 안정에  총력을 다할 때이다. 일본과의 무역 갈등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관리가 필요하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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