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시론] 경제·외교술 이끌 한국판 NEC는 부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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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회 기자
입력 2019-08-0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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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인류가 처음 달을 밟은 지 50주년 되는 해다. 1969년 7월 20일 미국 우주선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에 착륙한 닐 암스트롱 선장이 처음 발자국을 찍었다. 소련이 1957년 첫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리고, 4년 뒤 최초의 우주인(유리 가가린)을 배출하자 미국이 꺼내든 카드가 바로 '아폴로 계획'이었다. 얼마나 다급했는지, 미국 정부가 1960년대 중반 항공우주국(NASA·나사)에 쓴 예산이 전체의 4.5%나 됐다. 올해 나사 예산은 전체의 0.5%도 안 된다.

존 록스던 미국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최근 미국 항공우주 전문매체 스페이스닷컴에 "아폴로 시대에 달에 가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며 "미국은 소련과의 제로섬 냉전 경쟁에서 글로벌 리더십을 보여주려 했을 뿐"이라고 꼬집었다. 암스트롱의 쾌거는 냉전시대 우주개발 경쟁의 산물이라는 얘기다. 나사 출신 미국 역사학자인 로저 로니어스는 미국과 소련의 우주경쟁이 '다른 수단을 이용한 전쟁(war by another means)'의 시초라고 거들었다.

'다른 수단을 이용한 전쟁'은 무기를 쓰지 않는 전쟁을 말한다. 미국과 중국, 한국과 일본이 벌이고 있는 무역·경제전쟁처럼 총성 없는 무혈전쟁이다. 세계 곳곳에서 한창인 사이버전쟁, 스파이전쟁도 마찬가지. '경제적 외교술(economic statecraft)'도 같은 범주에 속한다. 외교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경제력을 지렛대 삼아 상대를 회유하거나 윽박지르는 기술이다. 미국이 이란과 북한을 제재로 압박하고, 중국을 폭탄관세로 몰아붙이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한국이 당한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 일본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보복도 같은 맥락이다.

눈여겨 볼 건 최근 횡행하는 '경제적 외교술'에 국가안보위협이 '전가의 보도'처럼 쓰인다는 점이다. 국가안보위협을 명분으로 내세우면 못할 게 없다는 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거의 모든 반무역 공세를 국가안보위협이라는 말로 정당화했다. 외교·안보·통상이 강력한 '삼위일체'를 이뤘기에 가능한 일이다.

미국의 경제적 외교술을 이끄는 건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라는 말로 유명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1993년 1월 취임 직후 행정명령을 통해 만든 조직이다. 클린턴은 대선 유세 때부터 국제 문제에서 자신이 집중하는 건 미국인들의 경제적 이익이라며 '국가경제안보위원회' 창설을 제안했다. 국내 문제를 외면할 수 없어 최종 명칭에서 '안보'가 빠졌지만, NEC는 국내 정책과 별도로 미국의 이익을 위한 국제적인 차원의 경제정책을 주로 다룬다.

현재 의장인 대통령 아래 위원장(래리 커들로)이 있고 마이크 펜스 부통령,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윌버 로스 상무장관을 비롯해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존 볼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정책국장 등 트럼프 행정부 내 외교·안보·통상 실세들이 두루 포진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틈만 나면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지원한 클린턴 행정부를 헐뜯지만, 트럼프의 대중 무역전쟁 사령탑인 NEC를 만든 게 클린턴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일본에서도 최근 '일본판 NEC'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가 일사불란하게 이뤄진 것 같지만, 추진 과정에서 파열음이 적지 않았다는 지적에서다. 총리실과 경제산업성이 이번 조치를 주도하는 과정에서 외무성은 배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경제산업성과 원래 사이가 좋지 않은 외무성이 판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될 정도다.

'한국판 NEC'라면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가 있다. 대통령을 의장으로 민간 부의장과 경제부총리, 고용노동부 장관, 경제보좌관 등이 참여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 위상 강화를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정작 전체회의는 지난해 말까지 두 차례에 그쳐 구설에 올랐다. 회의를 안 여는 것도 문제지만, 모여도 문제다. 외교·안보·통상 삼각공세에 대응하기엔 조직 구성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도발이 아니어도 경제를 볼모로 한 안보·통상 공세는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한 예로 미국은 지난해 수출규제로 기술유출을 차단할 근거를 마련했다. 수출관리개혁법(ECRA)이다. 웬만한 주요 첨단기술을 모두 대상으로 삼았다. ECRA의 표적은 사실상 중국이지만, 미국이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화살은 어디로든 돌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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