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시론]기후비상과 기후파업

김신회 기자입력 : 2019-12-17 00:02
'기후비상(climate emergency)'. 영국 옥스퍼드사전이 꼽은 2019년 '올해의 단어'다. 정의는 이렇다. '기후변화를 줄이거나 멈추고, 기후변화로 인해 되돌릴 수 없는 환경파괴를 피하기 위해 시급한 행동이 필요한 상황'. 이 단어의 사용량이 2018년 말 이후 1년간 100배 넘게 늘었다고 한다. 옥스퍼드사전은 직접성과 긴급성이 담긴 이 단어의 사용빈도가 부쩍 높아진 건 우리가 기후를 거론할 때 위기의식이 크게 반영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변화라고 풀이했다.

올해 세계 곳곳에서 실제로 기후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지난 4월 영국 스코틀랜드에 이어 5월에는 영국 의회가 뒤따랐고 캐나다와 프랑스, 호주 시드니도 가세했다.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미국 환경단체 '기후동원(Climate Mobilization)'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지금까지 선포한 기후 비상사태는 1200건이 넘는다. 세계 인구의 10분의1인 8억명 가까이를 대표하는 1000여곳의 지방자치단체, 중앙정부 등이 동참했다. '기후비상'이라는 단어의 사용이 폭증하기 시작한 지난해 말부터 기후 비상사태 선포 사례도 급증했다.

기후변화를 둘러싼 위기의식은 언론에도 반영됐다. 진보 성향 영국 권위지인 가디언은 지난 5월 기사작성 가이드를 새로 내면서 '기후변화(climate change)' 대신 '기후비상',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 대신 '지구가열(global heating)'을 먼저 쓰라고 권고했다. 가치중립적인 '변화'나 긍정적인 어감의 '온난화'보다 '비상'과 '가열'처럼 위기의식 아래 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직접적인 표현이 '기후변화는 인류가 당면한 재앙'이라는 과학계의 일치된 의견을 더 잘 반영한다는 이유에서다. 

기후변화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인류는 이미 100년 넘게 기후변화를 체감했고, 과학자들은 1980년대부터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키웠다. 재앙을 막으려면 탄소배출량을 줄여야 한다는 게 골자였다. 기후변화를 둘러싼 공포가 요 몇 년 새 극대화한 건 짧은 기간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 탓이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최신 보고서에서 2010년대가 역대 가장 더운 10년으로 기록될 게 거의 확실하다고 진단했다. 2010년대를 마무리하는 올해는 역대 두세 번째 더운 해가 될 전망이다.

올여름에는 세계 곳곳의 수은주가 꼭짓점을 찍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등이 역대 최고 기온을 기록하면서 서유럽에서만 수백명이 폭염에 목숨을 잃었다. 그 사이 아이슬란드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녹아 사라진 빙하의 장례식이 열렸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산하 코페르니쿠스기후변화서비스(C3S)는 지난 7월이 지구 역사상 가장 더운 달이었다고 선언했다. 폭염은 물론 한파와 더불어 최근 빈발하고 있는 대규모 가뭄, 홍수, 산불 등의 자연재해도 기후변화에 따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현실적 우려가 반영된 보고서는 충격적이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최근 민간 싱크탱크 여시재를 통해 낸 글에서 미국 국방부 보고서를 소개했다. 미국 군사·안보 전문가인 마이클 클레어 햄프셔대 명예교수의 신간 '지옥문이 열리면: 미국 국방부의 기후변화에 대한 관점(All Hell Breaking Loose: The Pentagon's Perspective on Climate Change)'에 담긴 내용이다. 

미국 국방부는 2007년부터 기후 위기에 주목해 왔다고 한다. 군시설의 탄소 순배출량 제로(넷제로) 목표를 추진하고 복합 비상사태에 대비한 다양한 전시 시나리오와 군기지 이전 등을 준비해온 이유다. 미국 국방부는 '최악의 기후 재앙 시나리오(All Hell Breaking Loose)'에서 미국 내 국가비상사태와 해외 동시다발 재난, 국가붕괴 시나리오까지 상정하고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 국립기후복원센터도 최근 기후변화 관련 보고서에서 "전시 수준의 비상자원 동원체계를 수립해야 한다"고 짚었다.

안 교수는 미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조직인 국방부가 군통수권자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맞서 기후 위기를 과학적 현실로 받아들여 대비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6년 대선 때부터 "기후변화는 사기"라고 주장해왔지만, 미국 국방부의 '반역'은 안보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정당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트럼프의 반동은 세계적인 기후변화 대응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15일 폐막한 제25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5)도 마찬가지. 총회는 일정을 이틀 연장하고도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의무 이행을 위한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미국은 2021년부터 온실가스 감축 의무 이행·검증의 근거가 될 파리협정에서 곧 공식 탈퇴할 예정이다.

지난해 8월 스웨덴 의회 앞에서 '기후를 위한 학교 파업' 시위를 시작한 16세 소녀 그레타 툰베리는 지난 3월 독일 함부르크 시위에서 "우리는 숙제를 했기 때문에 파업하지만, 여러분은 하지 않았다"고 기성세대를 향해 일갈했다. 툰베리는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이 됐고, 그가 시작한 '기후파업(climate strike)'은 콜린스사전의 '올해의 단어'로 꼽혔다. 기후 문제에 대한 무책임한 파업을 끝낼 때다.
 

제11회 2020GGG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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