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에 아베까지...'자유무역 첨병' WTO 존립위기

김신회 기자입력 : 2019-07-23 15:45
트럼프·아베 반무역 공세에 '개혁'도 미지수 WTO 기능마비 조짐에 무역보복 도미노 우려
"우리 제품을 만들고, 우리 기업을 훔치고, 우리 일자리를 파괴하는 다른 나라들의 만행으로부터 우리 국경을 지켜야 한다. 보호(주의)가 위대한 번영과 힘으로 인도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1월 20일 취임연설에서 한 말이다. 대선 구호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실현하기 위해 보호주의를 꾀하겠다는 선언이었다. 트럼프의 2020년 재선 도전 구호는 '미국을 계속 위대하게'다. 보호주의를 계속 밀어붙이겠다는 다짐으로 읽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말만큼이나 보호주의를 위한 행동에도 거침이 없었다. 취임하자마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한 게 대표적이다. 그에게 자유무역협정(FTA)은 미국에 '재앙'이었다. 한국은 물론 캐나다·멕시코와 맺은 FTA를 뜯어고치고, 일본 등을 상대로 양자 무역협상을 강요하고 있는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은 급기야 중국을 상대로 무역전쟁을 벌이며 자국에 유리한 무역협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트럼프가 세계무역기구(WTO)를 가만둘 리 없다. WTO는 세계 최고 무역법원으로 다자간 자유무역질서의 첨병 역할을 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 불공정한 WTO에서 탈퇴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은 채 WTO 상소기구 위원(재판관) 지명에 제동을 걸었다.

상소기구는 WTO에 제소된 분쟁사건을 1차로 심리하고 판결하는 패널 사안에 대한 상소를 담당한다. 세계 무역의 '대법원' 격이다. 모두 7명으로 구성되고, 최소 3명이 있어야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현재 4명이 공석이고 2명은 오는 12월 10일 임기가 끝난다. 이때까지 트럼프가 고집을 꺾지 않으면 상소기구는 1인 체제로 기능을 잃게 된다. WTO의 분쟁해결절차가 모두 마비되는 셈이다. 호베르토 아제베도 WTO 사무총장은 연쇄적인 무역보복 사태가 뒤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근 WTO 한·일 수산물 분쟁도 상소기구 심리에서 한국이 승소했다. WTO 상소기구 문제는 23~24일(현지시간) WTO 일반이사회에 안건으로 상정되는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 사태와도 무관하지 않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블룸버그와 로이터 등 외신들은 WTO가 설립 이후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고 진단한다. 트럼프의 위협과 더불어 각국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단편적인 개혁 요구 등이 빗발치면서 WTO가 존립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WTO는 최근 다시 거세진 보호주의와 전자상거래를 비롯한 교역 형태 변화, 기술 발전 등에 따른 개혁을 요구받고 있다. 문제는 각국의 요구를 모두 충족시킬 개혁안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WTO 산파 역할을 한 미국이 등을 돌리면서 구심점도 잃은 상태다.

블룸버그는 WTO가 출범 이후 첫 합의문인 '발리 패키지'를 도출하는 데만 20년이 걸렸다며, 164개 회원국이 새 합의를 이룰 가능성은 적다고 관측했다. WTO의 첫 포괄 합의인 발리 패키지는 2013년 12월 가까스로 모든 회원국의 동의를 구할 수 있었다. WTO가 출범한 1995년 이후 18년 만의 일이다. 이마저도 무역 원활화 등 민감성이 덜한 현안에 대한 합의만 담은 '스몰딜'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무역은 세계 경제의 강력한 성장엔진 역할을 했다. 미국이 주도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체제와 이를 계승한 WTO 체제가 자유무역질서를 떠받쳤다. 미국은 자유무역을 추진할 강력한 동기가 있었다. 압도적인 경쟁력이다. 자유무역은 경쟁력이 강한 나라와 약한 나라의 격차를 확대했지만, 세계 경제 성장률을 높여 이익을 분배함으로써 격차 확대에 대한 불만을 누그러뜨렸다.

문제는 후발주자들의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미국의 자유무역 동기가 약해졌다는 점이다. 그 사이 미국은 막대한 무역적자를 떠안았고, WTO 내에서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의 목소리가 커진 데 대한 반감을 갖게 됐다. 이제는 중국이 오히려 자유무역의 수호자를 자처할 정도다.

같은 맥락에서 전문가들은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의 대한국 수출 규제 조치를 비판한다. 자유무역 틀 안에서 성장한 일본이 트럼프의 반무역 공세를 따라해서야 되겠느냐는 것이다. 안 그래도 아베 총리는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자유무역을 옹호하며, 자국에 대한 트럼프의 반무역 공세를 경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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