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 대출 늘려라” 주문에 은행권 ‘노마진’도 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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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선영 기자
입력 2019-07-1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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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 예대율 산정 기업대출 가중치 확대

  • 공격적 대출영업 나서…출혈경쟁 불가피

"정부가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옥죄고 중소기업 대출 확대를 주문하는데 저희한테 다른 방법이 있나요. 다른 은행들까지 두 팔 걷어붙이고 중기 대출 확대에 나서는데 저(低)마진이 아니라 노마진도 감수해야 하는 상황입니다."(A시중은행 부행장)

정부 지침에 따라 4대 시중은행이 공격적인 중기 대출 영업에 나서고 있다. 상반기 동안 다소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온 KB국민은행까지 하반기에는 본격적으로 움직일 전망이어서 더욱 치열한 '전쟁'이 예상된다. 은행들로서는 '제살깎기' 영업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KEB하나은행의 상반기 중소기업 대출 순증액은 5조1799억원으로 시중은행 중 가장 많이 늘었다. 대출잔액은 82조1703억원이었다.

하나은행보다 낮긴 하지만 다른 은행도 증가 추세는 뚜렷하다. 우리은행은 지난달에만 1조734억원 순증해 상반기 대출잔액이 4조2688억원 늘어났다. 신한은행도 4조8821억원 늘었다.

상반기 중기 대출 잔액이 증감을 반복하며 건전성에 초점을 맞춰온 국민은행까지 지난달 4000억원 넘게 대출 잔액이 늘면서 하반기에는 적극적인 중기 대출 확대를 예고했다.

문제는 은행의 중기 대출 영업이 '출혈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내년부터 예대율 산정 시 가계대출 가중치를 낮추고 기업대출 가중치를 높이는 자본규제 개편이 시행되기 때문에 은행 간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의 금융정책이 중기 대출 확대에 쏠려 있어 꽉 막혀 있는 주담대나 사정이 좋지 않은 대기업 쪽으로 대출을 늘리기도 쉽지 않다. 결국, 중기 대출 외에는 대안이 없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은행에서는 '저마진', '노마진'까지 감수하며 중기 대출 확대에 나서고 있다.

기업의 신용도와 담보물건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은행이 제시할 수 있는 중소기업 대출 금리는 최대 2.5% 수준인데, 이보다 낮은 수준의 금리를 제시해서라도 영업을 확대하려는 모습이다. 중기 대출 고객은 한정돼 있다 보니 현재 유지 중인 고객 이탈을 막고 다른 은행 고객을 유입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데도 정부는 중기 대출 확대를 꾸준히 주문하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은행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중소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중소기업들이 힘들어하니 담보가 부족해도 성장성과 기술력을 보고 대출해주길 바란다"고 협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꾸준히 증가해온 중기 대출은 이미 포화상태이기 때문에 앞으로 은행은 일반 중기보다 소호 대출에 초점이 맞춰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 정부의 대책 없는 정책이 중기 대출을 기형적인 구조로 만들고 은행의 리스크를 가중시키는 셈이다.

한 시중은행 중기대출 담당 부행장은 "정부에서 혁신금융을 강조하면서 중기 대출 확대에만 몰두하는 것은 구시대적 영업방식"이라면서도 "정부 방침을 무조건 무시하기는 힘든 데다가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여서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영업 중"이라고 말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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