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수교 '숨은 공로자' 장바이파 前 베이징 부시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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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이재호 특파원
입력 2019-07-07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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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견습공에서 부시장까지, 입지전적 '평민시장'

  • 한·중 가교 역할 수행하며 국교 수립에 기여

[사진=바이두 캡처]


중국 수도 베이징 건설에 큰 공헌을 했으며 한·중 수교에도 기여한 장바이파(張百發) 전 베이징 상무부시장이 별세했다.

7일 중국 신경보 등에 따르면 장 부시장은 지난 5일 향년 84세로 세상을 떠났다.

허베이성 샹허(香河) 출신인 장 부시장은 1948년 부친을 따라 베이징으로 이주했다. 철근을 가공하는 견습공으로 시작해 베이징 제3건축공사에서 청년돌파대 대장, 당 부서기 등으로 승진 가도를 달렸다.

1954년 공산당에 입당했으며 베이징시 건축공정국 부국장, 국가건축위원회 부국장 등을 거쳐 베이징 상무부시장까지 올랐다.

베이징 인민대회당 건설 작업을 주도하는 등 신중국 성립 이후 베이징이 수도로서 위상을 확립하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입지전적 인생 역정에 감동한 베이징 시민들은 '평민 시장'이라는 애칭을 붙이기도 했다.

특히 장 부시장은 1992년 한·중 수교가 이뤄지기까지 양국 간 가교 역할을 수행한 인물이기도 하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당시 중국 대표단 단장으로 방한하며 한국과 인연을 맺은 장 부시장은 1988년 서울 올림픽 때도 한국을 찾았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한국 측 인사들과 부단히 접촉하며 노하우를 전수받기도 했다.

그 인연을 바탕으로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한·중 간 메신저를 자처하며 국교 수립을 이끌어낸 핵심 라인으로 꼽힌다.

한·중 수교 이튿날인 1992년 8월 25일에는 베이징 시청에 태극기를 처음 게양하고 한국 측 인사들을 초청해 환대하기도 했다.

한 베이징 소식통은 "장 부시장은 중국 내 대표적인 지한파 정치인이었다"며 "퇴임 이후에도 한·중 양국의 우호 증진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해 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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