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미니칼럼-短] 최고의 도(道), 냅도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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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논설위원
입력 2019-05-17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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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인의 노이즈 마케팅을 대하는 길


 

‘우당탕탕’, ‘휘잉위잉’ 일부러 요란하게 화제를 만들어 물건을 더 파는 걸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한다. 정치에도 있다.

1987년 12월 첫 대통령 직접선거 당시 ‘광주학살의 원흉’으로 불린 전두환 대통령의 후계자이자 친구인 노태우 민정당 후보는 광주 유세에서 노이즈 마케팅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광주시민들의 거센 항의를 불러와 이를 이겨 내는 모습을 연출해, 비호남권 표심을 결집시키는 큰 그림을 그렸다. 치밀한 전략과 꼼꼼한 전술, 디테일을 선보였다. 유세 현장에 화염병과 돌이 날아올 줄 미리 알았다. 경호원들은 방송에 잘 나오는 투명방패까지 준비했다. 노 후보는 민주주의, 광주시민을 애타게 외치며 애국가를 부르자고 했다. 화합하자고 했다. 노태우의 이런 노이즈 마케팅에 김대중의 호남권은 고립됐다. 대구경북(TK)을 기반으로 한 노 후보 지지세는 더욱 똘똘 뭉쳤다. 다른 경쟁자인 김영삼의 부산경남(PK), 김종필의 충청권에 비해 유권자수가 가장 많은 TK지역에서 몰표를 받아 결국 당선됐다.
 

[1987년 11월 29일, 13대 대선 민정당 노태우 후보 광주 유세 모습. 사진=MBC뉴스 캡처]


1987년 대선 이후 10년이 지난 1997년 대선 당시 민정당의 뒤를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광주를 찾았다. ‘득표에 전혀 도움이 안된다’는 측근의 만류에도 이 후보 본인의 고집이 대단했다. 여당 대선 후보가 일부 지역을 빼고 유세를 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그의 원칙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심 87년 노태우의 노이즈 마케팅을 어느 정도 기대한 것도 사실이다. 투명방패도 준비했었다. 그러나 상황은 전혀 예상과 달랐다. 30분짜리 유세, 송정리역 광장에는 처음에 한나라당 당원 1백여명만 있어 ‘썰렁’했으나, 李후보가 연설을 시작하면서 시민 2백여 명이 모여들어 차분하게 李후보의 연설을 경청했다. 경찰 경비 병력은 2백여 명 정도가 동원됐다.

사실 이회창 후보가 갑자기 광주를 찾는다고 하자 당시 김대중 후보의 국민회의는 아연 긴장했다. 87년 노태우의 ‘노이즈 마케팅’의 악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지역감정을 촉발시키는 자작극을 준비하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李후보의 광주방문은 조용히 끝났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5·18 망언 관련자(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 징계 없이 5·18 기념식에 참가한다고 해 정치권에 ‘노이즈’가 인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눈 마주치기, 말, 악수 ‘3금(禁) 지침을 내렸고,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황 대표를 ’사이코패스‘라고 해 노이즈는 증폭 중이다.

도 중에 가장 최고의 도는 그냥 도(둬), 냅도다. 87년 노태우 당선, 97년 김대중 당선은 광주시민들이 냅도를 했느냐 안했느냐에서 갈린 측면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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