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만 칼럼] ​중국적 세계질서 구축에 대한 우리의 대응

이상만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입력 : 2019-05-14 14:14

[사진= 이상만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중국이 지난 4월말 베이징에서 개최한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국제협력 포럼에는 37개국의 국가원수와 정부 수뇌 등 약 5000명이 참가한 대형 국제회의였다. 이 포럼을 통해 126개 국가와 29개 국제기구 간 일대일로 협력 문건에 서명하였고 640억달러(한화 74조3천억원) 규모의 프로젝트 협정이 체결됐다고 중국측은 밝혔다. 그러나 어떤 내용의 협정이, 어떤 국가와 체결됐는지 등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 의구심을 자아내기도 했다. 

시진핑 주석은 포럼에서 중국 경제의 대폭적인 개방을 약속했다. 네거티브 시스템의 대폭적인 축소로 서비스, 제조, 농업분야에서 전방위 개방을 하고, 현재 보다 더 많은 분야에서 외상투자자의 독자경영을 허용하며, 지식재산권의 보호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또 이를 실천하기 위해 국제협의 이행시스템을 구축하고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의 해소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 했다. 

중국이 이러한 초대형 국제회의를 개최하는 것도 좋지만 과연 미래의 시혜적 패권국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있는 지에 대한 의구심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탈리아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는 패권을 ‘동의에 의한 지배’라고 정의한다. 강대국에 의한 하향식의 인위적이고 물리적인 지배가 아닌 스스로 상대를 존경하고 그에 대한 복종이 자연적으로 이루어질 때 주변국들은 왕도적인 패권에 동참할 것이다. 시혜적 패권의 지위는 경제와 안보 그리고 문화면에서 국제공공재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국가만이 누릴 수 있다. 중국은 지난달 일대일로 포럼에 이어 이달 중순 베이징에서 '아시아 문명 대화 대회' 행사를 열어 소프트파워 영향력 확대에 나선다. 이는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이 끝난 지 불과 보름여 만에 열리는 초대형 국제 행사로 미·중 무역전을 시작으로 패권경쟁이 본격화되는 과정에서 우군을 확보하려는 복안이 깔려 있다.

그렇다면 중국이 구상하는 세계질서는 어떠한 모습 인가. 한마디로 말하면 천하질서 속에서 일대일로를 통해 중국몽을 실현하는 것이다. 천하질서는 중국인들의 의식 속에 오랜 기간 동안 저장되었던 지울 수 없는 역사적 의식체계이고, 중국몽은 중화민족의 부흥을 이룩하겠다는 목적이고, 일대일로는 중국몽을 실현하기 위한 물질적 수단인 것이다. 즉 중국식 사회주의와 민족주의가 결합한 중화제국의 원형을 복원하는 것이다. 21세기 중국이 그리려는 새로운 세계질서는 서구 주도의 현 국제질서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을 것이고, 또한 은연중 중국 중심의 국제질서를 구축하려고 하겠지만 전통적 중화 세계질서처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제국과 종속국의 관계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전통적 중화 세계질서는 ‘조공체계’와 ‘화이사상(華夷思想)'을 주변국에 요구하는 것으로 이러한 국가 작용의 행태는 세계적인 저항을 초래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이미 존재하는 국제사회의 규범, 즉 현대 국제질서를 수용하면서 여기에 중국 특색을 정교하게 가미한 국제질서의 수립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또한 중국이 추구하는 신형국제질서는 각 국가 간의 경제적 차이는 인정하면서 정치적으로 평등한 주권국가를 기반으로 하는 국제질서를 구축해 갈 것으로 보인다. 각 국가가 주권국가로서 정치적인 평등은 유지하지만 강대국과 약소국의 영향력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등급 질서(差序制)’의 형태를 띨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국은 글로벌 차원의 질서가 미국 등 초강대국의 단일 패권에 의해 좌우돼서는 안 되며, 몇몇 강대국이 이끌어가는 다극질서가 되어야 하며, 이런 가운데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중국이 주도적인(dominant) 지위를 차지해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아마도 중국이 세계를 향해 제시하는 보편적 가치는 자유와 민주, 인권 등 보편화된 서구적 가치와 유교문화에 기반한 공평과 조화, 포용, 공생, 공동체 등 을 결합한 중국적 특색의 문화적 가치가 될 것이다. 중국은 미국이 즐겨 쓰는 동맹과 군사력 대신 경제적인 수단 및 유교담론 주도권과 같은 소프트파워 자원을 활용함과 동시에 경제적 혜택 제공 여부로 타국을 압박하는 것이다. 중국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범위는 주변국 동의를 얻기 위해 왕도정치를 펴는 것과 말을 듣지 않는 나라엔 정치적 문제를 빌미삼아 경제적 압박을 가하는 행위(china bullying)가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중국의 미래 구상은 함께 경쟁하는 강대국들의 상호 견제와 다수의 중견국과 약소국과의 관계 속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중국이 보다 덜 패권적이고 더 호의적인 대국으로 부상하는 길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우려스러운 점은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규칙제정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선 그 동안 유지해 왔던 ‘3불 정책(내정불간섭, 비동맹, 남들 앞에 나서지 않음)’에 대한 변화이다. 즉, 내정도 간섭하고, 동맹도 맺고, 남들 앞에 나서기도할 것이다. 우리는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대 중국정책에서 유용한 협상의 원칙을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주변강대국들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운명은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는 부초 같은 편승행위가 아니라 당당하게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우리만의 원칙이 필요한 것이다. 미국의 중국 때리기(china bashing)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와중에 우리가 중국을 극복하는 길은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어 소통할 수 있고, 인내심을 가지고 중국을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는 대중 로비스트를 다수 양성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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