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익 칼럼] 김현미 국토부 장관의 ‘전략적 무지’ 시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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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익 사회부 부장
입력 2019-05-13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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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버스 파업이 52시간 근무제와 상관없다?

  • - 종이 방패로 여론의 칼날을 막을 수 있을까


판사의 판결은 미괄식인데, 정치인의 선언은 두괄식이다.

각각의 방식이 목적에 가장 잘 부합하기 때문이다.

판결은 이해당사자가 모두 납득하지 않으면 효력이 없다. “건빵 하나를 훔쳐 사형에 처한다”고 하면 2심에서 판결이 번복될 게 뻔하다. 피고인과 변호인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판사는 최종 판결에 합당한 이유를 먼저 설명한다.

정치인은 다르다. “저를 뽑아주신다면 재건축 관련 규제를 모두 풀겠다”고 선언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규제를 어떤 방법으로 풀 지에 대한 설명은 뒤에 나오거나 심지어 없는 경우가 많다. 유권자는 누구를 뽑는 게 집값 상승에 유리한 지를 먼저 따진다. 그 말의 진실 여부는 다음 문제다.

정치인은 때에 따라 두괄식 어법을 악용한다. 국민이 검사와 변호인이 판결의 합리성을 따지듯 선언의 타당성을 캐지 않는다고 오해한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12일 “버스 파업과 52시간 근무제는 관련이 없다”고 했다. 전국 245개 노조, 2만여 대 버스 파업이 사흘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열린 국토교통부·고용노동부 연석회의에서다. 52시간 근무제 주무부처 수장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다.

김 장관의 발언 취지는 이렇다. 버스 파업을 가결한 전국 245개 사업장은 대부분 52시간 근무제를 이미 시행 중이다. 따라서 근무시간 단축을 위해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하자는 노조측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조의 다른 주장을 모두 가리면 틀린 말은 아니다. 노조의 주장 중엔 분명 근무시간 조정에 대한 요구가 있다.

그렇다면 이번 버스 파업의 주 목적이 52시간 근무제 도입이나 도입을 확대하자는 것인가?

파업 목적은 이와는 정 반대다.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수당이 줄어 먹고살기 힘들다는 게 노조측 주장의 본질이다. 이같은 사태는 작년 3월 근로시간 제한을 두지 않는 특례업종에서 노선버스가 제외될 때 이미 예견됐다. 당장 7월부터 300인 이상 버스 업체에 적용된다. 내년부터는 50인 이상 버스 업체로 적용대상이 늘어 문제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경기도의 경우 기사 1인당 100만원 가량 월소득이 줄었다는 게 노조측 주장이다. 300만원 벌던 기사가 초과 근무수당이 줄어 200만원을 번다는 얘기다.

근무시간 단축에 대한 요구가 억지라는 것도 틀렸다.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대상업체 1057 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6.1%인 170 곳이 52시간 초과근무자가 있었다. 이에 따라 7월까지 늘려야할 기사 수는 7300여 명인데 업체 계획은 96곳에서 총 4928명을 늘리는 데 그친다.

파업 가결 사업장 대부분이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했다고 하더라도 노조는 파업을 통해 근무시간 조정을 요구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는 어쨌든 파업의 근본 이유와는 거리가 있다.

김현미 장관의 선언은 두괄식이다. ‘버스 파업과 52시간 근무제가 관련이 없다’는 메시지의 각인이 그의 목적일 개연성이 크다. 이를 위해 그는 버스 파업의 근본 배경은 모두 삭제했다. 의도한 것이라면 전략적이다. 정말 몰랐다면 교통 대책을 관장하는 주무부서 수장으로선 자격 미달이다.

이틀전.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과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나눈 대화가 화제다. 둘은 마이크가 꺼진 줄 알고 속내를 드러냈다. 이 원내대표는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을 지적하며 “단적으로 김현미 장관...”을 언급했다. 김 실장이 이에대해 “지금 버스 사태가 벌어진 것도...”라며 맞장구를 쳤다. 요약하면 교통 대책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 김현미 장관이 일을 잘 못해 당과 청와대가 골치가 아프다는 것이다.

김현미 장관 입장에선 억울하다. ‘교통’ 주무부처라고 하지만 버스 관련 업무는 2005년 지방자치단체로 이양됐다. 지자체에 내려보내는 교부금은 기획재정부가, 52시간 근무제 시행에 따른 임금 감소분을 보전할 고용노동기금은 고용노동부가 집행을 결정한다. 요금 인상은 지자체가 결정해 시행한다. 김 장관이 나서서 해결할 여지가 사실상 없는 셈이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언젠가는 여의도로 돌아가야 하는 정치인 입장에서 원내대표와 청와대 정책실장에게 미운털이 박혀서는 곤란하다. 무엇인가 역할을 해야하는 입장이다.

당정 수장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이번 파업이 무리하게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수반된 부작용의 결과로 낙인 찍히는 것이다. 정무적 감각 측면에서 김 장관은 좋은 점수를 받을 만 하다. 그래도 선언이 어느 정도는 타당해야 한다. 종이 방패로 여론의 칼날을 막을 수는 없다. 대중도 그 정도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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