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꼬리 자르기' 외교부, 또 트라우마 남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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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 기자
입력 2019-04-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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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외교부에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말에는 '체코'를 '체코슬로바키아'로 잘못 표기하고, 한·말레이시아 정상회담 때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네시아어로 인사말을 하도록 해 눈총을 받던 외교부는 최근 공식 외교 행사장에 '구겨진 태극기'를 세워둬 구설수의 정점을 찍었다.   

잦은 실수로 근무 기강이 해이해졌다는 비판 여론이 들끓자, 외교부는 구겨진 태극기를 세운 담당 과장의 보직을 해임했다. 사건이 일어난 지 사흘 만에 내놓은 조치다.  

외교부는 감사관실을 통해 이번 일이 벌어진 경위를 조사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묻고, 또 조사 결과에 따라 다른 외교적 실수에 대해서도 조사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실무자에게만 책임을 지워 사건을 무마시키는 외교부의 '꼬리 자르기' 식의 태도는 찜찜함을 남긴다. 여기에 외교부와 외교부 수장의 책임은 없는 걸까. 

강경화 장관은 사건이 발생한 당일 "외교업무의 특성상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다. 맡은 바 업무에 빈틈없이 임해달라"며 '프로페셔널'을 당부하는 걸로 상황을 정리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의 대처가 신중하지 못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식적인 징계 절차를 밟지 않고 불과 사흘 만에 서둘러서 보직을 해임한 것은 그저 성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가뜩이나 정권이 바뀌면서 옷을 벗은 선배들을 지켜본 외교관들의 뇌리에 트라우마로 각인될 가능성이 높다. 젊은 외교관들 사이에서는 이미 '괜히 소신대로 나섰다간 불이익만 당한다'는 인식이 형성됐다고 한다. 서글픈 일이다. 

외교가에서는 최근 잦아진 의전 실수가 기강 해이와 양자(兩者)외교 업무를 담당하는 리더십의 부재 탓이라는 직언이 나온다.

한 외교 소식통은 외교부에서 조직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차원에서 시행한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 문화'의 영향도 크다고 말했다. 어설프게 도입한 52시간제 이후 외교부 분위기가 과거에 비해 느슨해져 기강이 해이해졌다는 의미다. 

또한 최근 실수가 모두 양자외교 업무에서 터진 점도 문제로 인식된다. 양자외교 업무를 전담한 차관급의 리더십이 없기 때문에 이 같은 실수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현재 외교부를 이끌고 있는 장·차관은 다자(多者)외교와 경제 업무의 전문가로 꼽히는 인물들이다.
 
외교부가 실수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야 할 건 '꼬리 자르기'가 아니다. 근원적인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는 이상 또 언제, 얼마나 치명적인 실수가 터질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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