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이희숙 한국소비자원장 “똑똑한 소비 돕고 건실한 기업 살리는 징검다리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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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지 기자
입력 2019-03-22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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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비생활, 품질 좋고 안전한 제품 살리는 ‘화폐 투표’

  • ‘행복드림’ 포털(앱), 상품·서비스 비교 등 수시 업데이트

  • 분쟁조정 등 역할 커졌지만 사업자 거부 땐 효력 약해

  • 조정자거부 사업자 공개·손해배상금 대불제 등 필요

이희숙 한국소비자원 원장이 19일 서울 송파구 문정동 한국소비자원 서울지원에서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석유선 기자 stone@ajunews.com]


이희숙 한국소비자원 원장의 기관 운영 목표는 ‘소비자 권익 증진’ 단 한 가지다. 지난해 6월 취임한 이 원장은 소비자정책을 추진하는 기관장으로서, 일상생활에선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서 숨가쁜 8개월을 보냈다.

지난 19일 서울 송파구 문정동 한국소비자원 서울지원에서 만난 이 원장에게 지난 8개월간 소회를 묻자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와보니까 소비생활 전반을 다루는 게 녹록지 않더라. 작게나마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의 말처럼 목표는 ‘소비자 권익 증진’ 한 가지지만,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 소비자원에서 하는 업무는 방대하다. 가장 우선적인 업무는 상품과 서비스의 거래 및 이용과정에서 발생하는 소비자의 불만 처리와 피해구제다.

이외 소비자 권익과 관련한 정책 연구는 물론, 공정거래위원회 산하 기관으로서 물품 거래 과정의 소비자 문제를 조사해 사업자와 정부 사이에서 개선사항을 건의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상담을 기초로 한 소비자들의 평가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도 한다.

아울러 상품의 규격, 품질, 안전성 등 시험 검사를 한 후 사업자에게 리콜 시정 권고, 최근 급증하는 해외직구에 국제 소비자 이슈들까지 전방위적으로 다룬다. 이 원장은 “소비자에게 유익하고 권익 증진을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거기에 초점을 두고 의사결정을 진행한다”고 부연했다.

◆소비생활은 정보에 기초한 ‘화폐투표’

이 원장은 이날 ‘소비생활=화폐투표’라는 점을 수차례 강조했다. 총선과 대선에서 국회의원과 대통령에게 투표하는 것처럼 시장에 동일한 제품들을 놓고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소비자는 따져보고 합리적인 소비를 해야 건강한 시장이 조성된다는 뜻이다.

“품질이 좋고 안전한 제품을 선택하는 소비자가 많으면 그 제품은 시장에서 살아남고, 그렇지 않은 제품은 퇴출을 당하는 거죠. 소비자들이 사업자를 리드해가면서 ‘어떤 제품을 생산하라’는 메시지를 화폐투표(구매)를 통해 전달하는 게 소비자 역할입니다.”

1995년부터 23년간 충북대 소비자학과 교수로 내리 소비자에 대한 연구를 한 이 원장 역시 실생활에서 똑똑한 소비자로 거듭나기 위해 매번 고민한다.

1988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을 당시에는 컨슈머 리포트를 보면서 고르고 골라 새로 얻은 아파트에 가전을 채웠다. 최근에는 소비자원과 공정위가 함께 운영하는 ‘행복드림’ 포털을 애용한다. 행복드림에선 상품 및 서비스 비교정보, 피해 예방을 위한 주의사항 등 최신 정보가 수시로 업데이트되고 있다.

“저는 어떤 상품을 사기 전에 늘 행복드림에서 검색을 해요. 광고만 보고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실상 열어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저도 깜짝 놀라곤 해요. 안전이 의심될 때는 바코드를 등록하면 리콜된 제품인지 알 수 있고, 향후 리콜이 되면 휴대전화에 푸시(push)도 보내줍니다.”

소비자원에선 소비자들이 정보에 기초한 소비생활을 할 수 있도록 소비자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제품들을 위주로 가격, 품질, 회사 등 요소·요인별로 비교해 저렴한 가격에 품질이 좋은 제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최근에는 건조기와 소형가전제품 정보를 제공했고, 곧 미세먼지 증가에 따라 수요가 폭증하고 있는 공기청정기 비교·분석도 내놓을 예정이다.
 

19일 서울 송파구 문정동 한국소비자원 서울지원에서 만난 이희숙 한국소비자원 원장. [사진=석유선 기자 stone@ajunews.com]


◆손해배상금 대불제도 등 제도적 정비 필요

최근 몇 년 사이 가습기 살균제, BMW 차량 화재 등 소비자 집단 피해 사례가 잇따랐다. 이에 따라 소비자원의 역할도 가중됐다. 소비자원에서는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면 상담, 피해구제, 분쟁조정 등을 통해 소비자에게 도움을 준다.

소비자 분쟁조정 성립률은 최근 3년 평균 70% 정도다. 다만, 소비자원이 분쟁조정을 하더라도 사업자가 거절하면 효력이 없다. 대부분 사업자 측이 수락을 거부한 경우다. 분쟁조정 불성립 건 중 사업자가 거부한 비율은 2016년 94.32%, 2017년 91.21%에 달한다.

지난해 라돈 사태에서 문제가 됐던 대진침대가 이 경우다. 대진침대는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가 ‘방사성 물질 라돈이 검출된 대진침대 매트리스 소비자에게 매트리스를 교환해 주고 위자료 30만원을 지급하라’는 집단분쟁조정 결정을 내렸지만 이를 거부했다.

이 원장은 “분쟁조정위에서 정신적 위자료까지 책정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분쟁조정 결과가 재판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쳐서 소비자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면서도, 분쟁조정 불성립 등 현 제도에 대한 개선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우선, 업자가 배상능력이 없을 경우 정부가 기금을 통해 대신 내주고 사업자의 상황이 나아지면 구상권을 청구하는 ‘손해배상금 대불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같은 제도적 정비는 국회와 정부의 몫이다. 특히, 대불제도는 재원 확보가 필수인 만큼 이 원장은 “정부와 국회를 중심으로 대불제도 도입과 관련해 충분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는 분쟁조정안을 상습적으로 거부하는 사업자 명단을 공개하는 내용의 법안도 발의된 상태다. 정재호‧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소비자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고, 국회에 계류 중이다. 소비자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만 별다른 이유 없이 3번 이상 분쟁조정결과를 거부한 사업자도 있다. 

이 원장은 “소비자들이 소비한 제품을 일일이 소송한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금전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보통 포기한다“며 “이 점을 알기에 사업자들이 교묘하게, 반복적으로, 특별한 사유가 없이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 심증이 가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고 법안 통과 필요성을 강조했다.

◆기업과도 상생…중소기업 살리기 앞장 선다

그렇다고 소비자원이 사업자를 감시하는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원은 소비자와 기업의 상생을 통해 건전한 시장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대형유통업체, 온라인유통업체, 가전제품 등 사업자와 정례협의체를 운영하면서 정보를 제공한다. 소비자 안전을 위해 위해요소를 상시 모니터링하는 소비자위해감시시스템을 운영하는데, 이곳에서 문제가 있는 제품을 발견하면 사업자와 연결해 판매되지 못하도록 일괄 차단하는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이 원장은 “부문별 사업자들과 정례적으로 만나서 소비자들이 궁금해했던 것들과 리콜 제품 리스트와 같은 정보를 정리해서 준다”며 “사업자들도 정보를 기초로 해서 수정하면 제품에 대한 경쟁력이 생기기 때문에 대부분 만족한다”고 말했다.

‘가성비’가 우수한데 숨어 있는 중소기업 제품을 알리는 데도 힘쓰고 있다. 최근 사례로는 건전지를 꼽았다. 소비자원은 지난해 7월 7개 브랜드 20개 종류의 건전지의 가성비를 직접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가격 대비(100원당) 지속 가능한 시간을 측정한 것이다. 놀랍게도 유명브랜드 건전지를 다 제치고 다이소의 자체 상표(PB) 건전지 ‘네오’의 가성비가 가장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원장은 “발표 후 해당 건전지 매출이 2.5배가 올랐다고 한다“며 “소비자에게 정보를 주는 게 최우선이고, 그 과정에서 중소기업 제품은 품질이 낮다는 소비자의 편견을 깰 수 있도록 중소기업 활성화를 위해 정보가 있으면 부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들의 ‘니즈(needs)’를 파악하고 있다는 장점을 살려 중소기업 증진센터인 ‘친화경영센터(가칭)’ 발족도 준비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주로 금융지원을 위주로 지원한다면, 소비자원에선 개발에 관한 아이디어와 소비자 피드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소비자원에 1372소비자상담센터를 통해 들어오는 상담 건수는 1년에 약 80만건이다. 이를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해 권역별 광역시·도의 소비자상담 분석정보를 정기적으로 제공하고, 중소기업, 소상공인, 창업자가 소비자피해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이 원장은 “제품을 만들려는 마음은 앞서 있는데 이런 스타트업 업체들은 소비자 만족도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면서 “경쟁력을 갖춰 시작할 수 있도록 기업소비자 교육도 실시할 예정”이라면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빅데이터를 활용한 정보를 참고하고 싶다고 하면 언제든지 맞춤형으로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 이희숙 한국소비자원장 프로필

△1955년생 (만 63세)
△충북대 가정교육학 학사(학사), 서울대 대학원 소비자경제학(석사), 미국 오리건주립대 소비자경제학(박사)
△충북대 생활과학대학 소비자학과 교수
△(사)한국소비자학회 회장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정책위원회 위원
△공정거래위원회 표시광고심사자문위원회 위원(장)
△(사)한국소비자정책교육학회 회장
△(사)한국FP(Financial Planning)학회 회장
△국민경제자문위원회 위원
△한국소비자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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