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씁쓸한 연금사회주의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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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원 기자
입력 2019-02-19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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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진칼 제공]

몇 년 전 영화 '베테랑'이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영화에서 배우 유아인이 연기한 조태오란 인물이 주목받았다. 영화에서 조태오는 악덕 재벌 2세다. 돈과 권력을 모두 갖고 있어 세상에 무서울 게 없는 안하무인 기업인이다. 
 
제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에게 거침없이 폭력을 행사한다. 문제가 생기면 돈으로 해결하면 된다. 적지 않은 경찰들도 이미 돈으로 매수해 자기 편으로 만들어놨다. 여자들에게도 무례하게 대하고, 하물며 마약까지 한다.

어느 한 곳 좋게 보이는 구석이 없는 인물이다. 요즘 재벌 개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새삼 '베테랑'이 떠올랐다. 기업 오너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상당한 불쾌감을 느꼈을 것 같다.

재벌에 대한 안 좋은 고정관념을 심어줄 게 분명해서다. 그렇다고 떳떳한 재벌은 얼마나 될까. '베테랑'에서 다룬 사건도 실제 있었던 일을 배경으로 했다는 사실을 국민 상당수가 알고 있다.  

영화가 아닌 현실을 들여다보자. 최근 관심은 개혁 대상 1호인 한진그룹에 쏠렸다. 한진그룹 역시 '땅콩 회항', '물컵 갑질' 등으로 오너의 도덕성에 큰 흠집이 난 상태다. 이외에도 탈세를 비롯해 여러 불법적인 경영 행태가 도마에 올랐다. 

앞으로 주주들이 스튜어드십 코드란 제도를 통해 한진그룹 일가의 불법·일탈에 제동을 걸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리고 최대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이 총대를 멨다. 문재인 대통령도 "국민연금은 대기업 대주주의 탈법과 위법에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행사해야 한다"면서 부추겼다. 

그러자 연금사회주의 논란이 불거졌다. 정부가 연기금에 지나치게 관여하다 보면 연금 운용의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민의 노후재산을 책임질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에 개입하다 자칫 기금 운용에서 손실을 볼 것이란 우려가 쏟아졌다.

어느 정도 설득력은 있다. 그렇다고 기업에 문제가 있는 걸 알면서도 주주들이 그냥 모른 척해야 된다는 얘기인가. 반대로 국민연금을 비롯한 주주들의 간섭으로 기업이 경영을 제대로 못하거나 수익을 내지 못한다면, 주식회사 자격이 없는 것 아닐까.

또 국민연금이 장기적으로 높은 운용 수익률을 노린다면, 투자한 기업의 정상화를 먼저 시도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잘못이 있다면 법적으로 조치해야지, 연기금에 의지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법대로 해결하기 어려운 게 있으니 스튜어드십 코드란 장치를 끌어들인 것이다. 법이 해결할 영역이 있고, 주주 입장에서 판단하고 견제할 부분이 있어서다. 그런데도 무턱대고 연금사회주의라면서 비판해야 할까.

주주로서 연기금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인데도 '사회주의'란 말을 덧붙여 불안감을 키우는 것으로 보인다. 정작 기업이 파산할 위기에 처했을 때에는 국민연금이 앞장서서 기업을 살려야 한다고 요구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물론 막무가내 관치는 좋지 않다. 문재인 정부가 지나치게 기업 길들이기를 한다는 지적도 많다. 포퓰리즘 의혹을 낳을 만한 정책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불가피하게 정부가 나서야 할 때도 있다.

기업을 경영하는 데 있어서 자율과 독립성이 필요하다는 건 누구나 안다. 하지만 마냥 자율에 맡길 수만은 없다. 재벌 스스로 환골탈태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국민들이 얼마나 될까. '베테랑'에서는 불의를 참지 못하는 돈키호테 같은 형사들이 악덕 재벌을 응징했다. 

단, 영화일 뿐이다. 현실에서는 주주들이 나서야 한다. 사실 막상 뚜껑을 열었더니 만족스럽진 않았다. 스튜어드십 코드에 대한 무용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한진그룹에 대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한진칼에 '제한적' 범위에서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하기로 했고, 대한항공에 대해서는 경영참여 주주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국민연금의 첫 스튜어드십 코드가 실망스러운 게 사실이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국민연금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한진그룹도 첫 타깃에 불과하다. 주주들이 견제하고 뜯어고쳐야 할 기업들이 한둘이 아니다. 왜 개인이 소유한 민간 기업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냐고 물을지 모른다. 

다른 기업에 불법적으로 피해를 줄 수 있고, 회사 직원을 비롯한 많은 개인들을 힘들 게 할 수 있어서다. 너도나도 연금사회주의를 내세우면서 재벌만 걱정하는 모습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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