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기업 멍드는 '입법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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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오 성장기업부 부장
입력 2019-01-31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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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오 성장기업부 부장]

최근 저녁 자리에서 만난 헬스케어그룹 바디프랜드 고위 임원의 얼굴빛이 상당히 어두웠다. 근래 쉽지 않은 회사 경영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거 같아 말을 건네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연거푸 술잔을 비운 임원은 "하반기 기업공개(IPO)를 목표로 상장 준비에 갈 길이 먼데 예기치 못한 일들이 발목을 잡아 씁쓸하다"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남보다 더 많이 뛰어도 모자란 판에 최근 오너리스크 논란의 중심에 서서 잘나가던 회사의 성장동력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었다.

얼마전 박상현 바디프랜드 대표는 직원들에게 연장근로수당과 퇴직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혐의로 형사 입건됐다. 박 대표는 일부 근로자에 대해서는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지급하고 직원들에게 제한된 연장근로시간 이상 일을 시킨 혐의도 함께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임원은 "고의성은 전혀 없었다. 회사가 급성장하면서 고용이 급작스럽게 늘어나다 보니 수당을 지급하는 과정 등에서 계산상 실수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용노동부 등 행정기관 처분에 따라 조치를 취할 것이며 재발 방지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다만 "매출 규모가 4000억원이 넘고, 3년간의 급여 예산만 수천억원에 달하는 기업에서 미지급금이 6000만원에 불과한 것은 열악한 시스템에서 나름대로 깨끗한 자금운영을 한 것으로 봐달라"며 강하게 호소했다.

상장 예비심사를 진행하고 있는 한국거래소는 이 건이 상장 요건에 영향을 미칠지 검토에 들어갔다. 앞서 거래소는 바디프랜드에 대한 상장 예비심사 기한을 한 차례 늦춘 바 있다. 이번 건으로 상장 일정이 더 늦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사실 이번 일은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에서 제출받은 '바디프랜드 특별근로감독 결과 법 위반사항' 자료를 공개하면서 언론을 탔다.

한 의원은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을 지난해 9월에 대표 발의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 법안은 지난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직장 내에서 사용자나 근로자가 업무상의 우월적 지위 또는 관계를 이용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업무환경을 악화시키는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내용이 골자다.

업계 일각에서는 한 의원 측이 이 법안의 흥행몰이를 위해 바디프랜드의 사례를 과하게 적용해 밀어붙인 것이 아닌가라는 의혹의 목소리가 나온다.

바디프랜드 규모의 기업에서 일반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미지급금 규모는 적게는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에 달한 다는 것이 노무 전문가들의 공통적 견해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기업을 향한 정치인의 '입법갑질'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정애 의원 측과 어떤 교감이 있었는가를 묻는 질문에 임원은 최대한 말을 아꼈다. 어떤 말이라도 듣고 싶었지만 입을 굳게 다물었다. 할 말이 없다기보다는 혹시 또 다른 불똥이 튀지 않을까 우려해 잡음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의도로 보였다.

실제로 정치권의 무리한 입법발의에 재계가 멍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지난해 말에는 여야 일부 국회의원이 지역 발전을 명분으로 지역구 내 기업으로부터 막대한 세금을 추가로 걷기 위해 지방세법 개정안을 잇따라 발의하면서 재계의 공분을 샀다.

세수를 늘리려는 지자체와 지역 표심을 얻으려는 국회의원의 이해가 만나 지역자원시설세 확대가 급물살을 탔다. 하지만 세금 부담으로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하면 투자와 일자리가 줄어 되레 지역 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이 법령이 모두 통과하면 석유·천연가스·시멘트 등 기업에 전가되는 세 부담이 연간 최소 1조750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치도 나왔다.

재계 관계자는 "선진국이 인센티브를 통해 기업을 유치한 후 지역 일자리나 세수를 늘리려는 것과는 정반대"라며 "기업과 시설에 세금을 더 걷어 지역 발전을 도모한다는 것 자체가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정치권의 ‘갑질’은 기업경영에 심각한 악영향을 주고 있다. 국감 때마다 기업인 출석 문제를 두고 정치권이 기업을 압박하고 있고 정작 국감이나 청문회에 나온 기업인들에게는 호통과 망신주기, 지역 민원만 되풀이하고 있다. '시간이 돈'인 기업인 입장에서는 큰 손해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정치권은 친시장적 입법활동과 규제개혁에 나서야 한다. 정치권이 반시장적인 정책을 만드는 데 정치권력을 집중시키면 시장은 왜곡되고 기업들은 무기력증에 빠지게 된다. 기업을 둘러싼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제도적 여건이 악화될수록 기업은 더욱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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