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시대에도 ‘SKY캐슬’은 견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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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민 기자
입력 2019-01-30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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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사, 법률가 직업의 미래 전망은?

SKY캐슬 메인포스터 [사진=JTBC 제공]

그야말로 광풍(狂風)이다. 드라마 한 편이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다. 스토리라인을 잠깐 들여다보자. 3대 째 의사가업을 이으려 자식을 몰아붙인 엄마가 자살한다. 서울대 의대를 보내기 위해 집 한 채 값을 입시 코디네이터 비용으로 지출한다. 부모가 최고로 기쁜 순간에 부모에게 복수한다. 게다가 그 안에 얽히고설킨 주인공들의 출생의 비밀까지…. 극적 전개를 위한 비현실적인 설정이라고도 비판해 보고, 일부 사람들의 경우를 과도하게 일반화시킨 오류일 거라고도 생각해보지만 매주 금, 토요일 밤, 이 드라마가 뻗치는 마력에서 도무지 벗어날 길이 없다. 지난해 11월 23일 1.7%의 시청률로 출발해 지난 26일 비지상파 시청률 최초로 23.2%(닐슨코리아 기준)을 기록하고, 마침내 마지막 회만을 남겨둔 ‘SKY캐슬’ 이야기다.

대한민국 상위 0.1%가 모여 사는 SKY 캐슬. 남편은 왕으로, 자식은 천하제일 왕자와 공주로 키우고 싶은 명문가 출신 사모님들의 처절한 욕망을 샅샅이 들여다보는 드라마 ‘SKY캐슬’에 열광하는 시청자는 정작 명문가 사모님들이 아닌 평범한 우리네 이웃들이다. 시청자들을 이렇게까지 TV 앞에 붙잡아두는 이유는 두 가지로 설명이 가능하다. TV속 그들만의 높은 성 안에서 은밀하게 일어나는 일들을 훔쳐보는 관음증적인 시선이 주는 쾌락 그리고 복닥복닥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줄 정도로 휘황찬란하고 멋진 집에서 사는 주인공들이 어떻게 자녀들을 교육시키는지 그 비기를 알고 싶다는 욕망 말이다. ‘SKY캐슬’에서는 이 시선과 욕망이 씨줄과 날줄처럼 촘촘히 교차된다. 열여덟 풋풋한 생명을 한 순간 죽음으로 몰아넣어버리는 대한민국의 ‘미친’ 교육제도인 대학입시를 적나라하게 고발하면서 말이다.
 

자살하는 명주 [사진=JTBC 제공]

씨줄과 날줄처럼 교차되는 시선과 욕망

지난해 교육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김상곤 전 교육부장관이 ‘대학입시’를 전면적으로 손보겠다고 선언하면서부터다. 신고리 원전 처리문제를 놓고 벌인 일련의 숙의 과정이 대한민국에 민주적인 의사 결정 과정을 생중계했던 영향이었을까. 김 전 장관은 대학입시 문제를 ‘공론화’에 맡겨 가장 큰 지지를 받는 방안을 선택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를 위해 출범한 국가교육회의는 1년여의 지난한 숙의 과정을 거치면서도 결국 (어쩌면 필연적으로) 각 이익단체들이 내는 욕망의 목소리를 조절하는 데 실패했다. 일각에서는 ‘이해찬 세대보다 미래가 더 불투명한 김상곤 세대’라는 자조적인 비판까지 나왔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다시 드라마로 돌아가자. 마지막 회를 남기고 있는 ‘SKY캐슬’은 크게 두 가지 영역에서 그 유의미성을 찾아볼 수 있다. 그 첫 번째는 바로 욕망이다. 드라마 속 인간군상들은 자신이 소유했던 것 혹은 소유하지 못한 것을 손 안에 넣기 위해 끊임없이 욕망한다. 대대로 의사를 직업으로 삼았던 이들은 자녀도 같은 삶을 살기 원한다. 선지국집 딸로 살다 어렵사리 사회지도층에 진입한 이 역시 그 지위를 자녀에게까지 대물림하려고 애쓴다. 그 과정에서 자녀는 망가지고 부모 역시 파괴된다.
 

독서모임 옴파로스 존폐 투표 현장 [사진=JTBC제공]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

성경은 말한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야고보서 1장 15절). “죄의 삯은 사망”(로마서 6장 23절)이라고도 언급한다. 결국 인간을 죽게 하는 것은 욕망인 셈이다. 그런데 이걸 뒤집어 보면 다르다. 욕망을 끝까지 밀어붙여야 삶의 마지막 지점인 죽음에 다다른다는 것. 즉, ‘욕망=삶’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것이다. ‘SKY캐슬’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마치 자신의 존재의미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개개인의 욕망을 끝 간 데까지 밀어붙인다. 그렇게 드라마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숙의 과정을 통해 확정된 대입제도처럼.

여기에 하나 더, 부모의 욕망이 추가된다. 현재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빙상계 성폭행 피의자인 조재범 전 코치에 대해 전 국민이 분노를 표출했다. 하지만 선수들의 부모는 조 전 코치를 감싸려 했다. “최고의 기술을 가르쳐주는데 그 정도 폭력은 괜찮은 거 아닌가” “그렇게 좁은 라커룸에서 어떻게 성폭행이 가능하냐”는 발언을 하면서.

스포츠계 미투 1호 테니스 선수인 김은희 씨는 최근 BBC news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10살 무렵 합숙훈련을 하며 코치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이 문제는 어느 종목이나 어느 지역에나 다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 문제를 다 아는 부모들조차도 쉬쉬하고 있는 이유로는 “자신의 자녀가 대표로 선발되고 성적이 좋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김 선수는 운동부지도자들의 권한, 권력을 축소해야 하고, 부모님들의 인식도 선진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개인이 원하는 바를 욕망하는 것은 잘못된 일일까? 그렇지 않다. 하지만 개인의 욕망이 그들만의 견고한 카르텔을 유지하기 위해 자본과 결합한다면 분명히 문제가 있다. 국가가 나서서 이를 중재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조차 신자유주의의 파도를 타고 상대적으로 경제적 체질이 허약한 다른 국가들을 착복하고 있는 현실에서 교육문제를 방기한 국가를 탓하는 건 어불성설 같다.
 

예서와 우주의 운명적인 첫만남 [사진=JTBC 제공]

실물교육 없이 지식교육에만 매몰되는 아이들

그렇다고 국가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는 없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지 않았던가.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교육학자인 루소는 그의 저서 ‘에밀’에서 교육을 4단계로 구분했다. △0~2세까지는 인간이기 이전에 동물이니 가르치지 말고 젖을 먹여 키울 것 △2~12세까지는 원시인 시기이니 개념을 가르치지 말고 물건을 보여주는 실물교육을 시킬 것 △12~15세까지는 로빈슨 크루소 시기이니 의식주를 어떻게 짓고 만드는지 가르칠 것 △15~25세까지는 시민교육을 할 것 등으로 소략할 수 있다.

우리 교육의 문제점이 여기서 드러난다. 2~12세 때부터 개념을 먼저 가르친다는 것이다. 12~15세 때에는 옷도 만들어보고 집짓기 시늉이라도 해봐야 하는데 학교에서 실물교육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김인환 고려대 명예교수는 “교육이라는 게 한 아이의 고유성을 살리고, 아이도 공부하면서 즐거워해야 하는데 모두들 힘들게 얼굴만 찌푸리는 건 문제가 있다는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지금 우리 교육은 어디에 와 있나? 한창 자연을 느끼며 더불어 사는 삶을 배워야 할 어린이들은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숨 막히게 짜인 시간표대로 그리기, 숫자 익히기, 만들기 등의 과제를 해야 한다. 초등학교도 마찬가지다. 한창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배우고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배움으로써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을 길러야 할 시간에 스스로에 대해 생각할 시간도 부족하다. 놀이가 직업인 아이들에게 자유 시간, 스스로와 타인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할 시간은 없다. 고학년이 되면 본격적인 입시 교육이 시작된다. 정답이 아닌 것 골라내는 훈련을 하느라 한창 푸르러야 할 청소년기를 집, 학원, 독서실을 쳇바퀴처럼 맴돈다. 인생을 하루아침에 결정짓는 대학수학능력시험 날을 위해 삶을 유예한다. 마치 인생은 수능 이후에 시작된다고 선생님도, 학생 자신도 스스로 최면을 걸면서 말이다. 선생님의 삶도 녹록치 않지만 여기서는 논외로 하자.
 

의문의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 [사진=JTBC 제공]

욕망이 잉태한 ‘SKY캐슬’, 무간지옥 대한민국의 민낯

대학문제는 더 심각하다. ‘교육부의 대국민 사기극’(2006, 책갈피 刊)의 저자 정진상 경상대 교수(사회학과)는 “특정대 출신이 교육부 관료직을 독점함으로써 교피아가 탄생했다”며 “관료들이 교육부장관을 장악하는 현실 속에서 교육정책기조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재정을 무기로 대학 위에 군림하는 권위적인 교육부에 대한 비판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교육부 해체를 주장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개인의 욕망, 국가의 직무유기라는 두 관점을 벗어나서 ‘SKY캐슬’을 바라볼 수는 없을까? 그래서 던지는 질문,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SKY캐슬’은 견고할까?’

드라마 속 대한민국 상위 0.1%의 직업은 의사와 법률가다. 4차 산업혁명 시대 가장 먼저 사라질 직업군에 판사, 의사 등 현재의 사회지도층의 직업군은 이미 포함돼 있다. X-ray 판독 의사는 누적된 데이터를 활용한 A.I.보다 정확도가 떨어질 것이고, 빅데이터를 활용한 판례로 판사보다 더 뛰어난 판결을 내리는 A.I.판사가 등장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 바 있기 때문이다.
 

예빈이가 가져온 영재의 일기를 보게 되는 수임 [사진=JTBC 제공]

4차 산업혁명 시대, 의사와 법률가의 미래는?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보자.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의사와 법률가는 살아남을 직업일까? ‘4차 산업혁명이라는 유령’의 저자 홍성욱 서울대 교수(과학철학)는 ‘그렇다’고 답한다. “의대, 법대는 대학 역사상 가장 오래된 학과다. 우리나라에서 의대의 영향력이 커진 것은 100년 남짓이지만, 법률가의 역사는 길다. 옛날 관점에서 과거에 급제하고 선비가 되는 과정과 같다. 세간의 존경을 받고 권력을 가지며 다른 이들이 함부로 하지 못하는 지위를 가질 수 있는 직업이 조선의 선비, 양반이었다. 관료의 전형인 셈인데 법률가도 같은 맥락에 있다.” 홍 교수는 “인공지능이 발전한다고 해도 의사와 법률가를 돕는 도구적 역할을 수행할 뿐, 한국 사회 최상층부의 직업군은 여전히 의사, 법률가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홍 교수의 의견에 동의하지만 양극화가 극심해질 것이라는 진단도 나왔다. 역사학자 전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서울대 의대가 최상류층이라는 설정 자체가 과도한 전제다. 의사 출신으로 사회 최정점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생각해보면 의사들도 썩 흔쾌하지는 않을 텐데, 힘들게 일하면서 드라마처럼 화려한 집에 살지 못하는 의사들은 직업을 대물림하기보다는 일찌감치 자녀들을 유학 보내는 경우가 많다.” 변호사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였다. “한국에서 변호사는 이미 사양산업이다. 김앤장 같은 유명 로펌 소속 변호사는 최상류층으로 많은 돈을 벌지만, 나머지는 공공기관에 6급으로 취직하거나 터무니없는 연봉을 받고 일하는 게 현실이다.”
 

엄마에 이은 혜나의 죽음에 아빠를 원망하는 우주[사진=JTBC 제공]

의사, 법률가 직업, 미래에도 여전히 최상류층

이화여대 평의회장을 지낸 이선희 의과대 교수 역시 자녀에게 굳이 의사라는 직업을 대물림하지는 않을 것이라 말했다. “의사가 전문직인 것은 맞지만 드라마처럼 부와 명예를 거머쥔 최상층은 아니다. 과거와 달리 의사는 정책 영향도 받고 직업적 스트레스도 높아졌다. 물론 직업안정성이란 측면에서 자녀에게 의사를 권하는 비율은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졌다.” 이 교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은 의사의 미래에 대해서도 “산업혁명 시대의 의사에서 위치는 바뀌겠지만 A.I.가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해주면서 인간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은 여전히 남을 것”이라고 답했다.

의학, 법학, 경제학, 정치학. 이 4개의 학문은 근대를 일으킨 학문이다. 중세에 기술직으로 천대받던 이 직업들이 현대에 들어서도 강항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데에는 제국주의자들이 식민지 한국에서 식민지엘리트를 집중 양성시킨 영향도 있다. 법과 의학을 모르고는 제국의 힘이 뻗어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이 과연 근대를 파괴할 것인지, 새로운 미래를 견인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의견이 분분하다. 이제 질문에 답해야 할 때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도 의사와 법률가는 여전히 최상류층의 직업군으로 생존할 것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문제는 그 수다. 양극화가 극도로 진행된 시대를 살면서 최상류층 법률가와 의사와 그렇지 않은 이들이 공존하고 있다. ‘SKY캐슬’이라는 이너서클 안에서도 양극화는 심화되고 있다. 그렇기에 더 좁은 문을 통과해야만 닿을 수 있는 가장 높고 견고한 ‘SKY캐슬’은 계속될 것이다. 또 다른 예서와 우주, 혜나와 영재를 만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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