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솜방망이 처벌로는 ’제2 조재범’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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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미 기자
입력 2019-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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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미 정치사회부 차장
 

징역 360년. ‘미국 조재범’으로 불리는 래리 나사르에게 법원이 내린 형량이다.
 
나사르는 30년간 미국 체조국가대표팀과 미시간주립대 체조팀 주치의였다. 그는 30년 동안 치료를 빙자해 여자 체조선수들을 강제로 추행하고 성폭행했다. 수십년간 묻혀 있던 이 사건은 2016년 전직 체조선수 레이철 덴홀랜더가 폭로하면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후 전·현직 대표선수이 150여명이 나사르에게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백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조딘 위버,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세계 체조계 여왕인 시몬 바일스도 피해자였다. 나사르에게 피해를 본 여자 체조선수는 350명에 달했다. 관련 재판에서 피해자 증언만 일주일간 진행됐다.
 
법원은 단호했다. 2017년 연방 재판에서 징역 60년을 받은 나사르는 지난해 1월 미시간주 법원에서 최고 175년형을 추가로 받았다. 같은 해 2월 열린 2심에서 미시간주 법원은 여기에 최대 125년형을 보탰다.
 
미국 체조계와 스포츠계도 책임을 피하지 못했다. 당시 미국체조협회장은 임기 1년을 채우지 못했고, 이어 취임한 협회장은 4일 만에 사퇴했다. 미국올림픽위원회는 협회 자격을 박탈했다. 성폭력 소송과 막대한 보상금으로 휘청이던 미국체조협회는 지난달 법원에 파산을 신청했다. 미국올림픽위원회도 무사하지 못했다. 위원장과 경기향상책임자 등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미시간주립대는 피해자들과 합의하는 데 5억 달러(약 5600억원)를 써야 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유사 사건에 대한 대한빙상경기연맹·대한체육회 처분은 솜방망이 수준이다. 2013년 제자들을 성추행해 대한빙상경기연맹에서 영구제명된 한 실업팀 감독은 대한체육회에서 처분이 경감돼 다음 달 지도자로 복귀한다. 성추행으로 제명됐던 전 컬링 국가대표팀 코치도 2년 뒤 빙상계로 돌아왔다. 성추행 의혹으로 물러났던 조재범의 전임 코치는 별다른 징계를 받지 않고 여전히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다.
 
조재범 사건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관리·감독기관에서 단호하게 처벌해야 한다. 성폭력이라는 무거운 범죄를 지금처럼 가볍게 처분해선 안 된다. 이는 법원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도 제 식구 감싸기에만 급급하다면 ‘제2의 조재범’이 언제든지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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