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인터뷰] 김태유 서울대 교수 "'정부혁신' 없인 4차산업혁명 실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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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다현 기자
입력 2019-01-06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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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특별 기획 : 동남아, 4차산업혁명 바람...한국 또 낙오하나 ① ]

  • - 모든 산업혁명은 정부가 주도... 정부부터 혁신해야

  • - 현 정부 조직은 선진국 따라가는 데 적합...'직능중심'으로 전문가 키워야

김태유 서울대 산업공학과 명예교수가 지난달 그의 집무실에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답하고 있다. 김 교수는 1차 산업혁명에 낙오했던 한국이 4차 산업혁명에 성공하려면 정부혁신이 가장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사진=아주경제 유대길 기자]



"제너럴리스트인 지금의 국가 공무원들을 직무에 소속시킨 스페셜리스트로 개혁해야 4차 산업혁명에 성공할 수 있다." 

'패권의 비밀'이란 역저로 유명한 김태유 서울대 산업공학과 명예교수가 4차 산업혁명 성공의 전제조건으로 주저않고 '정부혁신'을 꼽았다. 

그는 최근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영국의 산업혁명도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 아래 가능했던 것"이라며 "산업혁명은 업계 자생적으로 이뤄진 게 결코 아니다"면서 정부혁신의 중요성을 재차 역설했다. 

국산 자율주행차의 대표주자인 스누버가 규제 그물에 걸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먼저 상용화를 시작하고, 카카오 카풀 등 혁신적인 서비스가 택시 업계 등 이해관계자들의 반발로 무산 위기에 처하게 되면서 정부의 규제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싱가포르와 태국 등 우리와 인접한 동남아 국가들이 정부 주로로 4차산업 혁명에 가속이 붙으면서 정부의 역할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본지가 특별 기획의 첫머리에 김태유 교수의 인터뷰를 내세운 것은 정부혁신에 대한 그의 식견이 지금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서울대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를, 콜로라도 대학에서 자원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문의 시작은 공학이었지만 김 교수는 여기에 역사학과 경제학을 접목한 연구로 주목받고 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무도 확실한 청사진을 제시하기 어려운 지금, 김 교수의 '정부혁신' 구상을 들어봤다.

-4차 산업혁명을 역사적으로 어떻게 봐야 할까.
"4차 산업혁명은 사실상 지식산업혁명의 후반부라고 할 수 있다. 1차 산업혁명은 2백년이나 걸렸다. 영국에서 1780년께 시작된 1차 산업혁명이 산업혁명의 전반부였다면 1860년경 독일과 미국이 주도한 2차 산업혁명이 산업혁명의 후반부였다. 그리고 현대산업사회를 미래지식기반사회로 바꾸어갈 대혁신이 지식산업혁명이다. 따라서 제러미 리프킨이 정의한 3차 산업혁명이 지식산업혁명의 전반부이고 최근 다보스포럼 회장 클라우스 슈밥이 정의한 4차 산업혁명이 지식산업혁명의 후반부에 해당되는 것이다." 

-과거 산업혁명 시대에 있었던 중국의 양무운동과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비교하셨다.
"일본 메이지유신의 화두는 '화혼양재(和魂洋才)'다. 화혼은 일본의 정신이고 양재는 서양의 기술 즉 산업혁명을 의미하는데, 화혼양재란 혼만 빼고 제도까지 다 바꾸겠다는 것이다. 메이지유신 성공의 비결은 산업혁명을 위한 제도혁신이었다. 그래서 일본은 산업혁명에 편승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은 당시 대청(大淸)제국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중체서용(中體西用)으로 중국의 제도는 모두 그대로 두고 오직 서양의 근대 산업기술만 도입하려 했다. 제도혁신 없이 중국사회에 서양의 첨단 기술만 접목하려 한 것이다. 이것이 산업혁명에 성공한 일본과 실패한 중국의 결정적인 차이였다. 결국 산업혁명에 실패한 중국은 청일전쟁에서 일본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당시 조선에서 첨예하게 대립했던 개국과 쇄국은 사실상 문제의 핵심이 아니었다. 산업혁명을 하지 못한 나라들은 개국했든 쇄국했든 상관없이 모두 경제적 또는 정치적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패권의 시대'는 무엇이고, 어떻게 국민이 행복해지는가?
"강대국과 패권국은 꼭 같은 의미가 아니다. 거시적으로 인류 문명을 3단계로 분류할 때 첫 단계를 약육강식의 시대라고 부른다. 로마제국, 몽골제국 등의 시대로부터 파시즘에 이르기까지 무조건 쳐들어가서 점령하고 빼앗고나서 명분은 붙이기 나름인 시대였다. 인류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표인 마지막 단계는 지구상의 모든 민족과 국가들이 하나의 정부 하에 자유와 평등을 민주적으로 실천하는 '지구정부시대'이다. 그 중간단계가 국제사회질서가 그나마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패권의 시대다. 패권국은 물론 물리적 압박도 하지만 소프트파워로 도의적·사회적 설득도 한다. 결과적으로는 패권 질서에 참여하는 나라들의 자발적 동의 과정을 거쳐서 국제사회를 합의하에 이끌어 간다."

- 4차산업혁명이 '은하수의 시대'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4차 산업혁명은 기존 산업혁명과 매우 다르다. 산업혁명의 시대는 '북극성의 시대'다. 북두칠성에 의해서 북쪽이라는 방향이 정해지니 지구상 어디에 있는 뱃사람도 북극성을 보고 방향을 찾을 수 있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의 전반부는 석탄, 기계, 직물혁명이다. 독일과 미국이 이끈 산업혁명의 후반부는 전기·화학·철강혁명이다. 이들 기간산업을 잘 따라하고 벤치마킹하면 성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미국의 유에스스틸(US Steel)부터 일본의 신일본제철과 한국의 포항제철에 이르기까지 후발국은 선발국을 벤치마킹하며 발전해왔다. 또한 한국과 일본, 미국의 철강산업은 공존할 수 있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시대는 '은하수의 시대'로서 기간산업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 드론, 나노, 바이오헬스 등 산업의 종류가 은하수 별처럼 많다. 동시에 승자독식의 시대이기도 하다. 미국이 인공지능을, 중국이 드론을 집중 육성하면 우리나라가 경쟁에서 이기기 어렵다. 공존할 수 없으니 2등도 의미가 없다."

-2등이 없다니 선진국 벤치마킹에 성공한 한국에게는 무서운 이야기다. 우리가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정부혁신부터 시작해야 한다. 제3공화국은 엘리트 공무원 제도를 확립해 한강의 기적을 이룩할 수 있었다. 선진국의 성공사례를 무조건 잘 따라만 하는 일반행정관료(제네럴리스트)를 육성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북극성의 시대에는 기간산업의 공존이 가능한 시대였기 때문에 따라하기로도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전문정책관료(스페셜리스트)가 필요한 시대이다. 은하수의 시대 승자독식의 시대에는 전문관료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스페셜리스트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현재 부처에 소속된 공무원을 직무에 소속하도록 전환해 고급공무원을 직무 전문가로 만들어야 한다. 공무원이 특정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책도 읽고 포럼도 다니면서 공부해야하는데 부처 내에서 순환보직을 하니까 어떤 분야를 공부해야 할지 알 수 없다. 축구를 예를 들면 프로선수들은 포지션이 확정돼 전문가가 되지만 조기축구회에서는 공격도 하고 수비도 해야하니 전문가가 될 수 없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지금 공무원이 과잉규제와 철밥통이라 지탄받는 것이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공무원들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구태의연한 공직인사제도가 공무원을 규제만능주의자로 만든 것이다. 국민도 피해자이지만 그들도 피해자이기는 매일반이다. 제도를 바꾸면 사람은 금방 바뀐다. 정부의 유전자를 바꾸기 위해서는 준비기간은 6개월이면 되고 3년 이내에 효과를 볼 수 있다."

-현재 한국의 4차 산업혁명 대응 방식이 어떤 것 같은가?
"지금 우리나라의 4차 산업혁명 대응방식은 백년 전에 산업혁명에 실패한 중국의 양무운동을 그대로 따라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학자도 그런 수준이고 언론도 그렇고 정부도 제도혁신 없이 신기술만 개발하려고 한다. 지금부터라도 서둘러 제도개혁을 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에 성공할 수 있는 제도개혁은 정부혁신, 사회혁신, 대외혁신의 3대 혁신이다. 오늘은 현재 가장 시급한 문제인 규제개혁을 위한 정부혁신에 인터뷰의 초점을 맞추었다. 왜냐하면 현재 부처에 소속하며 순환보직하는 고급공무원을 부처가 아닌 직무(군)에 소속시키지 않고는 근본적인 규제개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미 정부혁신을 시도한 적이 있으셨다고 알고 있다.
"노무현 정부 초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으로 청와대에 들어갔다. 나는 당시 과학기술중심사회라는 이름으로 세계 최초로 4차 산업혁명을 시도했다. 우선 과기부 장관을 부총리로 승격시켰고 '미시경제부총리'로 만들 계획이었다. 또 예산권을 과기부로 가지고 와서 혁신본부를 설치했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시대에 대한 이해가 있는 이공계 박사를 50여명 특채해서 사무관으로 전진배치했다.
4차 산업혁명을 위한 기본조직과 예산 그리고 사람은 확보했는데 실제 추진도 해보기도 전에 개혁에 대한 반발로 자의반 타의반 보좌관직을 떠나게 됐다. 정말 많이 좌절했다. 그러나 ‘정암 조광조’는 학문이 완성되기 전에 정치를 해서 실패했다는 율곡의 글을 상기하며 4차 산업혁명을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집필한 책이 경제성장론(Economic Growth, Springer)과 패권의 비밀(The Secrets of Hegemony)이라는 산업혁명에 관한 이론서이다. 현재 집필중인 '대외혁신 관련 신간'이 나의 4차 산업혁명 연구를 완성하는 저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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