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저무는 날들을 위한 기도 - 이빈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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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논설실장
입력 2018-12-31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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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기도는 일어나지 않은 일을 위한 것이었지만 저무는 날의 기도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감사와 후회를 위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한 일은 모두 감사할 일들이나 후회할 일들일 것입니다. 감사 또한 인간의 일이며 후회 또한 사람이 비켜갈 수 없는 일입니다.

감사와 후회는 하나의 일에 발생하는 양면이기도 합니다. 그대를 만난 일에 감사하고 그대를 만나지 못하게 된 일에 후회합니다. 그대를 사랑할 수 있게된 것을 감사하고 그 처음의 사랑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합니다. 그대가 나를 지켜준 것에 감사하고 나를 지켜주는그대를 끝내 지키지 못하고 허튼 길을 걸어온 것에 후회합니다.
 

[서울 은평구 봉산에 있는 봉수정의 노을, 사진=서울관광재단 제공]


아침의 기도는 미안함에 대해 말하기가 쑥스럽습니다. 하지만 저무는 날의 기도는 미안함이 하나의 공기를 이룹니다. 살아온 삶이 미안하고 어느 날의 우행들이 미안하고 함부로 내달렸던 결정이 미안하고 타인에게 상처를 입힌 것들이 미안하고 사랑하지 못한 것이 미안하고 사랑한 것이 미안합니다.

내가 이렇게 평안해서는 안될 것을, 그 미안한 일을 지나온 뒤에도 평안하게 있는 이것이 미안합니다. 지금의 나의 안(安)을 덜어내고 깎아내는 일이 미안(未安)이라 들었습니다. 미안한 감정을 가지는 것, 미안하게 그대를 돌아보는 것, 미안했지만 미안하다고 말도 못하고 지나와버린 그 미안한 자리를 돌아보는 것, 저무는 날의 기도는 찰랑이는 뉘우침의 빛과 흔들리는 그리움의 어둠이 함께 아른거리는 저녁강과 같은 것입니다.

아아 하지만 미안함에 머물러, 저무는 날의 온전한 충만의 호흡을 잃지는 않고 싶습니다. 이제야 눈뜨게 된 것들, 이제야 말할 수 있게 된 것들, 이제야 들리는 목소리들, 이제야 제 값어치를 얻게된 사물과 사람에 대한 깨끗한 애정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은 아픔과 슬픔 위에서만 바라볼 수 있는 한 영혼을 정화하는 광채의 시간입니다.

저무는 날이라고 미래가 없는 것은 아니겠습니다. 나를 돌려세우던 수많은 부정적인 것들을 가만히 내려놓는 대신, 나는 지금까지 했던 어떤 것들을 지키고자 합니다. 그대에 대한 끝없는 응시와 갈망 또한 해가 아주 저무는 그때까지 가져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일도 사랑받는 일도 다 변함없이 하면서 다시 뉘우침을 쌓을 것입니다.

그래도 이 저문 시간에 나라는 한 존재를 가만히 앉혀 놓고 두 손 모으게 한 누군가를 향해 기도하고 싶습니다. 나는 어쩌면 지나간 일들을 수정하지 않고 두텁게 살아갈지 모릅니다. 그것이, 그것만이 나라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상국 논설실장(이빈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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