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박항서 신드롬을 뛰어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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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전 국회 부대변인)
입력 2018-12-19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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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박항서 감독에게 쏟아지는 찬사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겸손과 헌신을 바탕에 둔 리더십에 대한 공감이다. 그가 걷는 길은 베트남 축구 역사가 되고 있다. 베트남은 세계 A매치 이정표를 새로 썼다. 16경기 연승이다. 현존 세계 A매치 무패 기록을 새로 작성한 것이다. 스즈키 컵에서 우승한 15일, 베트남은 잠들지 못했다. 베트남 국민들은 박 감독과 대한민국을 연호했다. 한 선수는 태극기를 두른 채 경기장을 돌았다. 박항서 매직에서 시작된 여러 상징적인 장면 가운데 압권으로 기억된다.

박항서 신드롬은 한국과 베트남에 새로운 다리를 놓았다. 지난해 10월 취임 이후 1년 만에 가져온 변화다. 영웅 박 감독에 대한 애정은 한국으로 옮겨 붙었다. 한국도 베트남 못지않게 열기가 뜨겁다. 한국인들은 한마음으로 베트남을 응원했다. 이날 SBS 시청률은 18.1%를 기록했다. 같은 시간 대 3사 시청률을 합산한 것보다 높다. 기록적이다. “외교관 100명 보다 많은 일을 했다”는 칭찬은 괜한 수사가 아니다.

박항서 감독은 단지 운이 좋은 게 아니다. 따뜻한 품성과 지도자로서 뛰어난 자질이 밑바탕이 됐다. 그는 선수들과 진심으로 소통했다. 눈높이를 맞추고 경청함으로써 잠재능력을 끌어냈다. “나도 키가 작아 그 심정을 이해한다”며 선수들과 공감했다. 파파(아빠) 리더십은 결속력을 다진 원천이다. 덕분에 두 나라는 가까워졌고 서로를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 생산적이며 지속적인 우호 관계 형성은 이제부터다.

그런 면에서 베트남 유력 일간지 ‘뚜오이째’ 기획보도를 떠올린다. 뚜오이째는 2016년 9월 11~17일까지 7차례 기획보도를 이어갔다. 내용은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다. 생존자 증언과 활동이 주된 내용이다. 박항서 열풍 와중에서 뜬금없다고 핀잔할 수 있다. 하지만 스포츠는 스포츠고 역사는 역사다. 진정한 화해를 토대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야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1964~1973년까지 32만 5,000여 명을 파병했다. 미국(55만 명)에 이은 두 번째다. 공산화를 막는다는 명분 아래 베트콩(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과 싸웠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베트남 전쟁을 ‘추악한 전쟁’으로 규정한다. 한국군 참전 역시 같은 선상에서 바라본다. 용병(用兵)에 다름 아니라는 인식이다. 5,000여 명에 이르는 한국군이 베트남 정글에서 숨졌고 많은 이들은 아직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렇다고 민간인 학살을 덮을 수는 없다. 베트남 정부에 따르면 한국군에 의해 80여 건 9,000여 명이 학살됐다. 꽝남성을 비롯해 베트남 곳곳에 세워진 한국군 증오비는 이를 증거한다.

김대중 노무현 민주정부는 지난 잘못을 부분적으로 사과했다. 반면 보수정권은 줄기차게 외면한다. 전쟁 중 민간인 학살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식량 지원과 도로 건설을 앞세운다. 일본 우익들이 자신들 잘못을 덮을 때 끌어 쓰는 논리와 다르지 않다. 민간인 학살은 비록 지금은 서로 외면하지만 살아 있는 뇌관이다. 독일 수상 빌리 브란트는 용기란 무엇인지 보여줬다. 1970년 12월 그는 폴란드 유대인 추모비 앞에 무릎 꿇었다. 그리고 차가운 겨울비를 맞으며 사죄했다. 폴란드인들은 감동했고 국제사회는 독일을 성숙한 나라로 인식했다.

베트남은 우리에게 매력적인 나라다. 신 남방정책 선상에 놓인 핵심 국가이기도 하다. ‘도이 머이(쇄신)’ 정책 이후 6~7%대 높은 경제 성장을 유지하고 있다. 근면‧성실한 민족성에다 높은 교육열과 젊은 인구가 뒷받침 됐다. 전체 인구 9,600여 만 명 가운데 10~24세는 40%, 20~30대도 35%에 달한다. 평균 연령은 30.8%, 스마트폰 보급률 55%로 성장 잠재력은 무궁하다. 무역협회는 2020년 한국과 베트남 교역액을 1,200억 달러로 예상한다. 2대 수출국이다. 2017년 한국이 베트남 수입시장에서 차지한 비율은 22.1%로, 1위 중국을 바짝 뒤쫓고 있다.

지난해 정세균 국회의장을 모시고 방문한 삼성전자 하노이 공장은 그 전초기지였다. 하노이 공장은 역동적인 베트남 경제를 확인시켜주는 좋은 사례다. 공장 규모는 60만 평으로 압도적이다. 전체 수출 물량 가운데 25%를 하노이 공장에서 담당한다. 직접 고용만 11만 명, 협력업체를 포함하면 18만 여명이 이곳에서 일한다. 주차장에 늘어선 820대에 달하는 통근 버스는 장관이다. 또 출퇴근 시간이면 공장 주변은 오토바이 행렬로 바다를 이룬다. 그들은 삼성전자 사원을 자랑으로 여긴다. 낮은 인건비와 우수한 인력은 계속해서 베트남 경제 성장을 견인할 경쟁력 있는 자산이다.

“나를 사랑하는 만큼 대한민국도 사랑해달라.” 박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베트남 국민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그가 바라는 대로 우호적인 관계가 지속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혜를 베푼다고 생각하는 순간 멀어지게 된다. 오만은 사람을 멀리하고 겸손은 사람을 부른다. 박 감독이 보여준 겸손과 헌신에 답이 있다. 거기에 더해 용기 있는 역사 인식이 뒤따를 때 동반 성장한다. 진실함보다 강한 무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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