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우리 모두의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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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전 국회 부대변인)
입력 2018-12-14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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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2011년 2월, 레이건 대통령 탄생 100주년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레이건이 태어난 지 100년 되는 그날 미국 전역은 추모와 찬양 열기에 휩싸였다. 워싱턴에선 상원의원들이 그를 기리는 연설을 이어갔다. 고향인 일리노이 탐피코에도 추모 발길이 줄을 이었다. 이방인 눈에는 다소 과하다고 느껴질 만큼 요란스러웠다. 하지만 그들은 진심으로 레이건을 아끼고 추억했다. 정치 성향은 달라도 함께 추모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해 슈퍼볼은 알링턴 카우보이스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미식축구는 미국인이 가장 즐기는 스포츠다. NFC 우승 팀과 AFC 우승 팀이 맞붙는 슈퍼볼은 단연 최고다. 미국에서만 1억1000만명 이상이 중계를 시청할 정도다. 미국인들은 이날 경기 시작에 앞서 관중석이나 집에서 추모 영상을 관람했다. 한국에서라면 상상하기 쉽지 않은 광경이다. 아마 찬반으로 갈려 격렬했을 것이다. 왜 우리는 이런 문화가 없는지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엊그제 조지 HW 부시 대통령 타계를 보면서 7년 전 기억을 다시 떠올렸다. 언론은 부시 대통령이 클린턴 대통령에게 남긴 편지를 소개했다. 공화당 부시는 1992년 대선에서 민주당 클린턴에게 패했다. 대선 기간 중 그들은 서로를 격하게 비난했다. 부시가 쓴 편지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이 편지를 읽을 때쯤이면 당신은 ‘우리의 대통령’이 되어 있을 겁니다. 이제 당신의 성공은 우리 모두의 성공입니다. 당신을 열렬히 응원하겠습니다.”

정적(政敵)이지만 진심을 담은 글이다. 미국이란 나라를 건설하는 데 정파도 이념도 초월하자는 의지를 담고 있다. 또 다른 앙숙이었던 밥 돌 전 상원의원. 95세인 그도 마지막 가는 부시에게 거수경례를 통해 예의를 표했다. 밥 돌은 부시가 재선에서 낙선하자 만찬에 초대하고 위로했다. 승자독식 문화가 팽배한 우리에겐 생경한 장면들이다. 미국이 왜 세계 제1 강대국 지위를 유지하는지 보여주는 단면이다. 정파를 떠나 전직 대통령을 추모하고, 노정객이 예의를 갖추는 문화가 부러울 따름이다.

우리 역대 대통령들은 어땠는가. 누구 할 것 없이 불운하다. 이국땅에서 망명자로 떠돌거나 부하가 쏜 총에 비명횡사하거나 감옥에 가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 이승만(1~3대)은 4·19의거로 쫓겨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생을 마감했다. 윤보선(4대)은 5·16 군사 쿠데타 세력에 의해 중도 하야하는 수모를 겪었다.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5~9대)는 동지였던 부하에게 목숨을 잃었다.

최규하(10대)는 허수아비 신세를 면치 못하다 신군부에 의해 8개월 만에 쫓겨났다. 전두환(11‧12대), 노태우(13대)는 나란히 12·12 군사 쿠데타와 광주학살 책임을 물어 수감됐다. 김영삼(14대), 김대중(15대)은 자식과 측근 비리 때문에 아들들이 구속 수감됐다. 결정판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무현(16대)이다. 국민들 가슴에 결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새겼다. 이명박(17대), 박근혜(18대)는 권력남용과 권력농단 죗값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70년이란 짧은 근대사치곤 참담하다. 오죽하면 전직 대통령이 바위에서 몸을 날렸을까 싶다.

되돌릴 수 없는 전직 대통령 역사는 부끄럽다. 언제부터인가 상대가 죽어야 끝나는 증오 정치가 만연되고 있다. 만신창이가 된 전직 대통령은 우리 정치수준을 반영한다. 세계 교역규모 11위,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눈앞에 둔 민낯이다. 정당은 권력 창출을 목표로 모인 정치 결사체다. 정책과 권력을 놓고 치열하게 맞서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포용과 관용이 없는 싸움에만 그친다면 동물과 다르지 않다. 상대를 인정하는 성숙한 정치는 도달하기 어려운 것일까. 적일지라도 성공을 기원할 수 있을 때 대한민국은 한 걸음 나아간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라 여기고 섬기겠다”고 했다. 다짐이 구체화되고 있는지 살필 일이다. 그럴 때 우리도 정파를 떠나 기억하고, 자랑하고 싶은 대통령을 가질 수 있다. 때로는 영웅 만들기에 익숙한 미국처럼 우리도 인위적으로라도 그런 문화를 만들 필요가 있다. 끝 모를 저주는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조지아주 애틀랜타에는 카터 대통령 기념관이 있다. 카터는 실패한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퇴임 후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분쟁지역을 찾아다니며 협상을 중재하고 평화를 전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사랑의 집짓기인 해비탯은 카터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작업복을 입고 망치질을 하며 땀을 흘리는 전직 대통령은 충분히 감동적이다. 퇴임 후 고향으로 돌아가 평범한 시민이 되어 이웃과 정을 나누겠다는 문재인 대통령 소망도 현실이 되어야 한다. 우리도 그런 대통령을 보고 싶다. 분열과 갈등을 끝내는 정치는 어떻게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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