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포커스] “죄가 없다는 증거를 대라”…식품업계 냉가슴 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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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우 기자
입력 2018-11-27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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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우 생활경제부 기자]

‘10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1명의 무고한 죄인을 만들면 안 된다.’

18세기 법학자 윌리엄 블랙스톤이 한 말로, 죄를 지은 자를 처벌하는 것보다 단 한 사람이라도 억울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다. 오늘날 형사법 대원칙인 ‘무죄추정 원칙’의 근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유독 식품업계에서는 이 말의 의미가 통하지 않는 듯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지난 10월 22일 대상 충남 천안공장이 제조·판매한 ‘청정원 런천미트’ 제품을 수거·검사한 결과, 세균발육 양성으로 부적합 판정돼 해당 제품을 판매중단 및 회수 조치한다고 밝혔다.

대기업 햄 제품에서 세균이라니, 연일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를 장식한 것은 물론이고 대상 청정원에는 소비자 항의가 빗발쳤다. 대상은 당장 공장 가동을 전부 멈추고 소비자 대응에 들어갔다. 식약처 공고 이틀 후인 10월 24일 런천미트 전 제품 회수와 함께 소비자 반품 및 환불 조치를 실행했다.

런천미트는 115g 용량 한 종류만 해도 월매출 12억원을 올렸던 알짜 상품이다. 이번 사태로 대상이 입은 손실은 유무형으로 환산하면 수백억원에 이른다.

그런데 식약처가 “통조림에서 발견된 세균은 대장균”이라고 재발표하면서 상황이 뒤집혔다. 대장균은 80도 이상 온도에서 1분 이상 노출되면 모두 죽는다. 런천미트는 116도에 40분 동안 가열한 상태에서 밀봉 제조하는 과정을 거친다. 전문가들도 검출된 세균이 대장균이라면, 제조사 문제가 아니라 실험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런천미트뿐만 아니라 스팸 등 캔햄 제품에서 이물질 혼입으로 ‘대장균’이 검출된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식약처는 지난 1일 다시 이 제품을 검사한 검사기관 충청남도 동물위생시험소에 대해 검사과정 전반의 적절성을 확인하기 위한 현장점검을 벌이겠다며 태도를 바꿨다. 하지만 한 달이 다 돼가도록 검사 결과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대상은 실험을 진행한 충남도청을 상대로 지난 21일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충남도청은 런천미트를 검사한 동물위생시험소의 상급기관이다. 기업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상은 소송을 통해 자신들의 무죄를 밝히고 싶어한다. 하지만 죄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은 유죄에 대한 증거를 찾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식약처는 제품 회수와 처벌이란 결과론적인 ‘유죄 입증’에 집중하기보다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돌아가, 세균 검출이 어디서 됐는지 하루빨리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그것이 ‘소비자에게 정확한 식품 안전 정보’를 제공한다는 식약처 본연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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