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손' 해외 재벌 기부 문화 배우고 익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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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지 기자
입력 2018-11-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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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 기부 규모 늘었지만 불신풍조 여전

  • 해외재벌·저명인사 사례 본받아야

 


우리나라는 ‘기부의 불모지’라고 불릴 정도로 기부 문화의 후진국이다. 지난해 9월 영국자선지원재단(CAF)이 발표한 ‘세계기부지수 2017’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기부참여지수 순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21위로, 전체 조사 대상국 139개국 중에서 62위에 이름을 올렸다. 분쟁국인 이라크 순위(39위)에도 뒤지는 순위다.

기부에 대한 호응도 미국(5위)이나 홍콩(25위)에 비해 낮다. 아직도 오히려 못 배우고 가난한 사람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기부활동에 나서고 있으며 부자나 저명인사들의 재산 사회 환원은 흔하지 않다. 또, 기업을 운영해 모은 재산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것 자체가 선의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위기다. 

최근 온라인·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기부 활동의 참여를 유도해 재미있게 기부를 즐기면서 하는 ‘퍼네이션(funation)’을 통해 기부 행위에 대한 ‘문턱’을 낮췄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기부 문화가 아직까지 일상에 자리 잡지 못하는 듯하다.

반면 미국, 유럽 등 선진국들은 한국과 대조되는 모습을 보인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일반인은 연소득의 약 2%를, 부자들은 연소득의 약 6%를 매년 기부하고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인이 더욱 적극적으로 기부활동에 참여하는 반면 선진국의 부자들은 일반인에 비해 훨씬 더 많은 기부를 하고 있다는 것.

◆ ‘존 데이비슨 록펠러’, ‘앤드루 카네기’,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석유왕’ 존 데이비슨 록펠러 [사진=위키백과]


미국의 현대 기부문화의 형태를 이루는 데 결정적인 이바지를 한 인물이 있다. 바로 ‘석유왕’ 존 데이비슨 록펠러와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다. 이들은 거의 동시대 인물로, 가장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사업가들이다. 평생 일궈낸 재산을 자선사업을 통해 사회로 환원시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했다.

록펠러와 카네기는 자선사업을 통해 교육, 문화, 의료 등 여러 분야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스탠더드오일 창업가인 록펠러는 지금까지도 미국인들에게 여전히 존경을 받고 있지만 19세기 전반만 해도 ‘강도 귀족(Robber Baron)’이라고 불렸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서 정경유착, 무자비한 기업 인수, 문어발식 회사 확장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록펠러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5억5000만 달러나 되는 돈을 기부했고 시카고 대학교를 설립해 교육 문화의 혁신을 가져왔다. 또 1913년에는 록펠러 재단을 세워 문화예술, 의료 전반에 걸쳐 20억 달러 이상 규모에 달하는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자선사업에 대한 열정과 노력은 사후에도 꾸준히 이어졌다.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 [사진=게티이미지]


록펠러와 함께 미국 재벌로 통하는 앤드루 카네기는 19세기 후반 미국 강철 산업을 크게 확장한 사업가로, 외동딸에게 소액의 현금과 개인 집만 남기며 당시 3억5000만 달러(현재 가치 48억 달러)를 모두 사회에 환원하며 록펠러처럼 베푸는 여생을 보냈다.

그도 교육·문화 분야에 크게 기여했다. 기부금 지원을 통해 미국과 영국의 공공 도서관 증대에 이바지했다. 그가 미국 전역에 지은 도서관만 2500개에 달한다. 또 사회복지, 빈곤타파 등에도 힘써왔다.

◆ ‘워런 버핏’·‘빌 게이츠’ 등 세계 부호, 기부 활동 활발
 

워런 버핏[사진=바이두]


미국의 이러한 자선사업과 기부 정신은 이제 미국 사회 전반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이러한 기부 정신을 전 세계에 확산시키는 데는 오늘날 세계적 부호인 워런 버핏,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등이 그 중심 역할을 해오고 있다.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최고경영자(CEO)가 지금까지 기부한 누적 총액이 현재 시장가치로 따지면 약 467억 달러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전 회장 빌 게이츠가 기부한 주식의 총액은 약 500억 달러로 추산된다.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는 2년 전 "우리 딸이 더 나은 세상에서 살기를 바란다"며 주식 지분 99%(당시 시가 52조원)의 기부를 약속했다.
 

빌 게이츠 [사진=바이두]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워런 버핏은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기부해오다 지난 2010년부터 빌 게이츠와 함께 다른 재벌들에게 재산 기부를 독려하는 기부 캠페인 ‘기빙 플레지(Giving Pledge)’를 시작했다. 현재 이 캠페인에는 오라클의 창업자 래리 엘리슨, CNN의 창업자 테드 터너 등 여러 억만장자 70명이 가입돼 있다.

미국 건국 초기부터 행정적 재정적으로 취약한 연방정부 등 공공부문이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할 때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기부 문화가 나온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또 미국의 뿌리인 청교도 정신이 바로 박애주의 정신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유럽의 희생 문화에서 비롯된 기부 문화

미국과 마찬가지로 유럽도 '기부 왕국'이라고 불린다. 특히 유럽 내에서도 수준 높은 기부 문화를 가진 영국의 경우 고대 로마 때부터 고위층의 공공봉사와 기부헌납의 전통이 강했고 당시 이를 의무이자 명예로 인식돼왔기 때문에 희생정신이 줄곧 몸에 배어 있다.

고대 로마 시기 귀족 등 고위층의 전쟁 참여 전통은 확고해 건국 이후 500년 동안 원로원에서 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15분의 1로 크게 줄어들었다. 계속되는 전쟁에서 귀족들이 많이 희생돼 왔고, 1·2차 세계대전 때에도 영국 지도층 자녀들이 수천 명이나 전쟁터로 나가 목숨을 잃은 것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아들인 앤드루 왕자도 포클랜드 전쟁에 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영국 자선지원재단(CAF)이 발표한 영국의 기부 활동 추이를 살펴보면 2010년 이후 불어닥친 유럽 경제 위기와 무관하게 2000년 이후 꾸준한 것으로 나타난다. 영국의 자선단체 수는 16만개에 달하고, 성인의 75%가 한 달에 한 번 정도 기부하며 47%가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한다.

최근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영국 해리 왕자 결혼식에도 해리 왕자가 결혼 선물 대신 7개 자선단체를 선정해 기부를 선택할 정도였다. 이처럼 영국을 시작으로 유럽 전반에 기부 문화가 뿌리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 일본 재벌의 변천사

‘재벌’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일본 ‘자이바쓰(財閥)’ 가문은 일본 근대화 과정에서 탄생했다. 메이지 유신 후 메이지 정부는 ‘미국과 유럽을 좇고, 미국과 유럽을 추월하자’를 슬로건으로 삼아 근대화를 강력하게 추진했다.

당시 재벌들은 이런 시대적 흐름을 타고 부를 쌓아 일본경제에 큰 기여를 해왔다. 일본 재벌들은 돈으로 자신들을 위한 정권 창출에 나서면서 정경유착의 길을 열었고 특혜, 독과점, 투기 등을 통해 규모를 키웠다.

우리나라처럼 일본도 정부 지원 아래 성장했지만 2차 세계대전 패망 이후 해체됐다. 이후 미 군정을 거치면서 소유지배구조를 크게 바꿔 지배 구조의 투명성이 크게 높아졌다. 오너가족의 경영권이 아닌 전문경영인 체제로 급격히 변화한 시점이다.

◆ 몰락 없는 日 기업 ‘도요타’를 통해 경영방식 배워야

우리나라 부자들은 재벌을 필두로 자녀에게 상속하기 위해 탈세를 일삼으며 '부의 대물림'에 집착하지만 일본 기업은 다르다.

대표적인 예로 도요타를 꼽을 수 있다. 세계적인 경제전문지 포춘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순위’에서 아시아 기업 중 일본 도요타 자동차가 지난 2003년부터 상위권을 차지할 정도로, 도요타는 세계적으로 ‘청렴하고 몰락이 없는 기업’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실제로 도요타 가문의 주식 지분율은 2%로, 70여 년의 그룹 역사에 단 한 번도 비자금 등 도덕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 일본인들의 존경을 받았다.

또 일본의 경우 소유권이 있는 지배주주는 경영에서 한 발짝 물러서고 전문 경영인과 은행에서 파견된 임원이 경영을 주로 맡는데 도요타도 마찬가지였다. 후손들은 도요타에 입사해 일하지만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가차없이 도태됐다. 1937년 창업 이후 지금까지 총 11명이 도요타를 경영했는데 후손이 6명, 전문경영인이 5명이었다. 실제로 창업가 증손자인 현 도요다 아키오 사장도 은행에서 일하다가 평사원으로 입사했고 업무 실수를 저질러 강등된 적도 있다.

도요타 재단도 선진 기업처럼 사회 공익에 나서고 있다. 일본 도요타 자동차는 지난 2013년 엔저 효과로 약 20조원의 순이익을 기록하자 자사주 3600억엔어치를 매입하고 절반을 공익재단에 기부했다.

◆ ‘기부 불모지’ 한국, ‘기부 왕국’으로 변모하기 위해서는…
 

[사진=통계청]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기부 규모는 2008년 9조원에서 2016년 12조8600억원으로 늘었지만, 기부 참여율은 2011년 36.4%에서 지난 2017년 26.7%로 오히려 감소했다. 국민소득 증가에 따라 기부의 규모 자체는 증가했지만 기부금 모집, 사용에 대한 불신과 관련 제도의 미비로 기부에 참여하는 비율은 줄어든 셈이다. 기부 의향을 묻는 질문에도 ‘있다’는 답변이 2013년 48.4%에서 지난 2017년 41.2%로 줄었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기부에 있어서 '후진국'이나 다름없다. 그나마 이뤄지고 있는 기부마저 일회성이고 비자발적인 데다 다액소수다. 때로 재벌 기업이 사회적 물의를 빚은 뒤 이를 가리기 위한 수단으로 기부를 활용하는 등 기부 자체를 악용하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기업의 기부 자체를 나쁘게 보는 시선이 많아졌다.

실제로 대기업의 기부금은 우리나라 기부 총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지만 그에 걸맞은 국민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사회에 재산을 환원하겠다면서 청계재단을 설립했지만 사실은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세워졌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여론의 비난을 받은 바 있다.

한 사회학과 교수는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대기업의 ‘불량한 태도’가 바뀌어야만 기부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다”면서 “현재 국민들은 기업인들의 ‘눈 가리고 아웅’ 식의 기부에 지쳐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해외 재벌이나 저명인사들의 ‘깨끗한 기부’ 사례를 본받을 필요성이 있다”면서 “향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같은 사례가 일어나지 않도록 재벌과 권력의 유착 고리를 하루 빨리 끊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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