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현 SK회장 타계 20주기...'10년 앞을 내다본 기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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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훈 기자
입력 2018-08-12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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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1세기 일등국가, 대한민국의 핵심 산업을 일으킨 한국경제의 선각자

폐암수술을 받은 故 최종현 회장(좌측 둘째)이 IMF 구제금융 직전인 1997년 9월, 산소 호흡기를 꽂은 채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해서 경제위기 극복방안을 논의하고 있다.[사진=SK]


"석유로부터 섬유에 이르는 산업의 완전 계열화를 확립하자. 기업확장과 더불어 경영 능력을 배양하자"

취임 3년차의 최종현 SK 선대회장이 남긴 1975년 신년사다. 형인 최종건 창업회장에 이어 2대 회장에 오른 최 선대회장은 SK가 나가야할 길을 제시한 기업인이다. 실제 이 신년사는 SK의 '제2창업선언'으로 불린다.

당시 최 선대회장은 '석유에서 섬유까지 완전계열화'라는 그룹의 외적(하드웨어)인 도약과 '경영 능력 배양'이라는 그룹 내적인 '소프트웨어' 정립을 위한 목표를 제시했다. 최 선대회장의 석유 수직계열화는 1980년 대한석유공사(유공) 인수로 이어졌다. 이후 1991년에 현재의 SK 울산콤플렉스 석유화학 단지를 만들면서 완성됐다.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1979년 SKMS(SK 매니지먼트 시스템) 정립, 1989년 수펙스추구법 도입으로 달성됐다.

오는 24일은 최 선대회장이 세상을 떠난지 20년이 된다. 20년은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할 만큼 긴 세월이다. 하지만 최 선대회장이 남긴 경영철학은 여전히 SK그룹에 살아 숨쉬고 있다. 아들인 최태원 SK 회장은 선대의 유산인 SKMS를 이어가고 있다. 더불어 인재경영과 그의 도전정신을 이어받아 SK를 재계 3위로 끌어올렸다.

◆"운(運)만으로 큰 사업을 할 수 없다" 치밀한 준비로 꿈 실현

최 선대회장은 자본, 기술, 인재가 없었던 1973년 당시 선경(現 SK)을 세계 일류 에너지∙화학 회사로 키우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천명했다.

섬유회사에 불과한 SK가 원유정제는 물론 석유화학, 필름, 원사, 섬유 등에 이르는 수직계열화를 선언한 것인데, 많은 이들이 ‘불가능한 꿈’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최 선대회장은 장기적 안목과 중동지역 왕실과의 석유 네트워크 구축 등 치밀한 준비 끝에 1980년 유공을 인수했다.

최 선대회장은 1983년부터 해외유전 개발에 나섰다. 성공확률이 5%에 불과해 주변에서 만류했지만 뚝심있게 사업을 추진, 이듬해인 1984년 북예멘 유전개발에 성공했다. 대한민국이 무자원 산유국 대열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이후 1991년 울산에 합성섬유 원료인 파라자일렌(PX) 제조시설을 준공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최 선대회장은 미래설계가 그룹 총수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산업동향 분석을 위해 1984년 미국에 미주경영실을 세운 이유다. 이후 정보통신 분야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은 최종현 회장은 미국 ICT 기업들에 투자하고 현지법인을 설립해 이동통신사업을 준비했다.

앞선 준비 끝에 1992년 압도적 격차로 제2이동통신사업자에 선정됐지만 특혜시비가 일자 사업권을 자진 반납했다. “준비한 기업에는 언제든 기회가 온다”고 내부를 설득한 최종현 회장은 실제로 2년 뒤 문민정부 시절인 1994년 한국이동통신 민영화에 참여,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했다.

◆"인재를 키워야 경제대국으로" 일등 국가를 꿈꾼 재계리더

최 선대회장은 SK의 성장조차 불투명했던 1970년대부터 인재양성에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비록 대한민국이 아직은 개발도상국이자 자원빈국 처지이지만 인재를 키우면 얼마든지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에서다.

최 선대회장은 1972년에 조림사업으로 장학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서해개발(現 SK임업)을 설립했다. 1974년에는 사재를 털어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했다.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500달러도 안되던 시절, ‘일등국가가 되기 위해선 세계적 수준의 학자들을 많이 배출해야 한다’는 최종현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재단이다. 재단은 당시 서울 집 한 채 값보다 비싼 해외 유학비용은 물론 생활비까지 파격적인 지원을 했다.

재단이 44년간 양성한 인재는 국내외 곳곳에서 거목으로 자랐다. 약 3700명의 장학생을 지원했고, 740명에 달하는 해외 명문대 박사를 배출했다. 현재 80% 이상이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시대를 앞선 유언으로 화장(火葬)과 통 큰 기부문화 이끌어

최 선대회장은 타계하기 직전 "내가 죽으면 반드시 화장(火葬)하고, 훌륭한 화장시설을 지어 사회에 기부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묘지 난립으로 좁은 국토를 효율적으로 활용 못하는 것을 평소 안타까워했던 최 회장은 사회지도층 인사 중 처음으로 화장을 택하면서 장례문화를 선도한 것이다.

최 선대회장의 시대를 앞선 유언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최 선대회장 사후 한달만에 ‘한국 장묘문화개혁 범국민협의회’가 결성돼 ‘화장 유언 남기기 운동’이 전개될 정도로 시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SK그룹은 선대회장의 유언에 따라 2010년 1월 500억원을 들여 충남 연기군 세종시 은하수공원에 장례시설을 준공해 세종시에 기부했다.

◆선대회장 경영철학, 최태원 회장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져

선대회장이 남긴 경영 DNA는 장남 최태원 회장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최 회장은 2011년 하이닉스 인수 등을 통해 반도체와 바이오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최 회장은 하이닉스 인수 직후 "하이닉스가 SK 식구가 된 것은 SK의 반도체 사업에 대한 오랜 꿈을 실현하는 의미가 있다"면서 30년 전 선대회장의 못다 이룬 꿈을 언급했다.

선대회장이 1978년 미래 산업의 중심이 반도체가 될 것임을 예견하고 선경반도체를 설립했으나 전 세계를 강타한 2차 오일쇼크로 꿈을 접어야 했던 과거를 회상한 것이다.

최 회장은 취임 20년 만에 SK를 매출 158조원, 순이익 17조3500억원, 재계 순위 3위로 이끌었다. 1998년 취임할 당시 SK그룹은 매출 37조4000억원, 순이익 1000억원, 재계 순위 5위였다.

또 선대회장의 사업보국과 사회공헌 경영철학은 최태원 회장의 사회적가치와 공유인프라 전략 등으로 진화 발전해 여러 이해관계자의 더 큰 행복을 키워나가고 있다.

◆SK 선대회장 20주기, 사진전·기부행사로 추모

SK그룹은 선대회장 20주기를 맞아 업적과 경영철학을 기리고 있다. 구성원의 기부금을 모아 숲 조성 사회적기업인 트리플래닛에 전달, 5만평 규모의 숲을 조성키로 했다. 오는 14일부터는 고인의 업적과 그룹의 성장사를 살펴 볼 수 있는 20주기 사진전을 주요 사업장에서 개최하고, 24일에는 워커힐호텔 비스타홀에서 경영철학을 재조명하는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이항수 SK그룹 홍보팀장(전무)은 "최종현 선대회장의 혜안과 통찰 그리고 실천력은 후대 기업인이 본받아야 할 가치로 인정받고 있다"면서 "SK그룹은 앞으로도 최 선대회장의 경영철학을 올곧게 추구해 사회와 행복을 나누는, 존경받는 일등기업으로 지속 성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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