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금과 무역전쟁 사이' 구글 과징금에 가려진 EU의 진짜 속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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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주 기자
입력 2018-07-19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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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C, 안드로이드 경쟁 위반 이유로 구글에 과징금 5조원 부과

  • 미국 기업 철퇴 역사 길어...애플·구글 등 IT 기업 때리기에 편중

  • "미국의 디지털 독식 견제...미·EU 갈등 '디지털'로의 확산 신호"

[사진=연합/AP]


"유럽연합(EU)의 과징금은 안드로이드 생태계의 균형을 깰 것이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가 즉각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EU 집행위원회(EC)가 18일(이하 현지시간) 스마트폰 운영체제(OS)의 불공정 거래를 이유로 구글에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한 직후다. EC가 역내 경쟁력 확보를 명분으로 미국 기업에 과징금을 부과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다만 미국과 EU의 관세 폭탄 떠넘기기로 인해 무역전쟁이 거세지고 있는 만큼 또 다른 갈등을 촉발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번 조치는 의미가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글·애플·인텔··· 미국 IT 기업만 잡는 EU, 도대체 왜?

EC가 구글에 물린 벌금은 43억4000만 유로(약 5조7146억원)다. 구글이 안드로이드 OS로 시장 지배력을 남용해 EU의 경쟁 관련 법규를 위반했다는 게 이유다. 구글은 지난해 6월에도 자사에 유리한 검색 결과를 유도했다는 이유로 24억 유로의 과징금 철퇴를 맞았다. EU는 구글을 상대로 1년여의 시차를 두고 벌금을 2배 가까이 늘리며 역대 최대 과징금 기록을 갈아치웠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보도에 따르면 EC가 구글의 행위를 불법으로 공식 선언한 만큼 구글은 향후 90일 이내에 EU의 요구사항을 준수하거나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 EU가 이번에 물린 과징금은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 하루 매출의 약 5%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구글 측은 과징금 부과가 부당하다며 소송 제기를 통해 EC 결정에 이의를 제기한다는 방침이다. 

EC가 미국 기업 때리기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5년에는 글로벌 기업들에 대한 탈세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맥도날드와 스타벅스, 아마존 등에 시정 명령을 내렸다. 특이한 점은 EC가 철퇴를 내린 미국 기업 중에 유난히 정보기술(IT) 관련 기업이 많다는 점이다. 2016년에는 유럽의 세금 제도를 악용했다는 이유로 애플에 수십억 유로의 벌금을 부과했다.

2007년에는 반독점 위반 혐의를 놓고 또 다른 IT 공룡인 마이크로소프트(MS)와 공방을 벌였다. MS는 수년간 분쟁을 이어가다 결국 20억 유로 상당의 벌금을 내기로 합의했다. 반도체 기업인 인텔에도 11억 유로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디지털 서비스 분야를 독식하고 있는 미국 기업을 견제하려는 EU의 의도가 깔려 있다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기술 진보가 급격하게 이뤄지는 IT 분야 특성상 시장 장악력이 밀리면 이후에도 우위를 점하기 어렵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얘기다. EC가 지난 2010년부터 글로벌 IT 기업들의 불공정 여부에 대한 조사를 본격화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010년은 애플이 스마트폰 아이폰을 출시한 지 3년째 되는 해로, 모바일 기기와 앱 개발 경쟁이 활발해진 시기다. 

EU가 지난 5월 25일 역내 개인정보 보호 규정을 강화한 일반 개인정보보호법(GDPR)을 시행하기로 한 것도 이런 입장과 무관하지 않다고 가디언 등 외신은 전했다. GDPR은 EU 시민권자의 개인 정보를 제3자에게 넘겨주던 관행을 강도 높게 규제하기 위한 제도다. 위반할 경우 전 세계 매출액의 최대 4%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어 미국 IT 공룡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과감한 행보" vs "너무 늦은 조치"··· 미·EU 갈등, 디지털로 확전되나

미국 기업에 대한 EU의 과징금 부과 조치는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지만 이번 조치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구글이 스마트폰 업계에서 상당한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일단 과감한 행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반대로 상황이 마무리되기까지 수년이 걸릴 수 있는 만큼 너무 늦은 조치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시장정보제공업체인 CCS 인사이트의 제프 블레이버 애널리스트는 "안드로이드는 이미 서구 사회에서 소비자에게 필수적인 구글 앱과 서비스 구축에 도움을 주었다"며 "OS와 앱을 분리하면 장기적으로는 경쟁 촉진에 도움이 되겠지만 제조업체로서는 소비자 수요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구글 서비스를 계속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경쟁 구도에 바람직한 영향을 미치기보다는 현재 고조되고 있는 미국과 EU 간 무역갈등을 더 자극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페이스북과 구글은 GDPR 발효 첫날 개인정보 보호 위반 혐의로 이미 제소된 상태다. 때문에 자동차세 부과, 이란 제재 여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국방비 분담 등 연일 악화일로를 겪고 있는 미국과 EU의 갈등이 수치화할 수 있는 '경제'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디지털'로 확전되고 있다는 신호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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