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변산'을 연출한 이준익 감독[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언제나 그렇듯 이준익(59) 감독은 영화를 통해 ‘인간’을 들여다본다. 타인에 대한 애정과 궁금증은 그의 작품을, 세계를 따듯하고 인간적으로 느껴지게 한다.

지난 4일 개봉한 영화 ‘변산’ 역시 그렇다. 꼬일 대로 꼬인 순간, 친구 선미(김고은 분)의 꼼수로 고향 변산에 돌아오게 된 무명 래퍼 학수(박정민 분)가 피하고 싶었던 과거와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이준익 감독의 아이덴티티(identity·정체성), 그 자체이기도 했다.

청년세대와 기성세대 그리고 부끄러운 과거를 마주한 이들에게 “정면으로 돌파하라”는 권유와 응원은 그의 지난 작품이 그랬듯 연필로 정성껏 눌러 쓴 손편지처럼 친근하고 따스했다.

다음은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가진 이준익 감독의 일문일답이다

영화 '변산'을 연출한 이준익 감독[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영화 ‘동주’, ‘박열’에 이어 ‘변산’으로 청춘 3부작이 완성됐다. 이번에도 ‘청춘’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청춘에 관심을 가진 건 아니다. 마케팅의 프레임 안에서 관전 포인트를 찾으려는 노력 아니었을까. 하하하. ‘동주’도, ‘박열’도 청춘 1부작, 2부작이라고 생각하고 만든 건 아니었으니까. 마케팅이 만들어준 청춘 프레임이다."

-그렇다면 인간에 대한 관심일까?
"그렇다. 나는 언제나 인물, 사람에 관심이 있다. 다양한 사람들은 하나하나의 가치를 부여받는 거다. 일반화하거나 통용화 시키는 건 잘 안 된다."

-이번 작품 속 인간 군상은 어떻다고 생각하나?
"개별적이라고 본다. 요즘은 개인주의도 인정받는 시대니까. 극 중 아버지도, 학수, 선미까지도 다 개별인 거다. 아버지가 아들 학수에게 ‘잘사는 것이 (나에 대한) 복수다’라고 하는데, 이 말은 탈무드에 나오는 대사 중 하나다. 언젠가 읽고 깊이 감명받아 ‘꼭 영화에 한 번은 쓰겠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마침 잘 어울려서 여기에 써먹게 된 거지. 용서해주는 이가 나중에도 용서받을 수 있는 거다. 자신은 타인을 용서하지 않으면서, 자신은 타인에게 용서받길 바란다면 그건 개인주의가 아니라 이기주의다. 아버지는 학수에게, 학수는 선미에게 용서받고 잘사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복수에 성공한 셈이다."

-‘라디오스타’와 ‘즐거운 인생’이 록으로 저항정신을 표현했다면, ‘변산’은 그 수단이 랩이 되었다.
"영화는 대중매체다. 대중을 담는 그릇이라는 거지. 젊은이들이 랩에 관심이 많으니 필연적으로 대중문화·영화에 쓰이는 거다. 단 랩이라는 장르는 미국이 원산지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다소 낯설다. 미국을 흉내 내며 의미부여를 한다고 해도 우리 현실과는 다르다. 그래서 가능한 한 최첨단의 장르와 가장 컨트리한 장소를 어우러지게 하려고 했다. 가장 트렌디한 랩과 가장 컨트리한 변산을 통해 학수가 고향과 불편한 기억을 맞닥뜨린다면 이야기가 될 것 같았다. 거기에 박정민이 직접 쓴 진솔한 자기 고백이 더해진다면 역설적으로 패러독스 코미디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위험했지만 과감하게 모험하게 된 거다."

영화 '변산' 스틸컷 중, 학수 역의 박정민[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래퍼인 주인공과 변산 주민들의 갈등은 청년세대와 기성세대의 문제를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
세대 간의 갈등은 오랜 사회문제다. 세대 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방향보다 갈증을 증폭시키는 사례들이 훨씬 더 많고 확산되는데 그렇다면 세대 간의 이해는 어디에서 시작되느냐다. 청춘이 아재를 이해하는 게 수월할까? 아니면 아재가 청춘을 이해하는 게 수월할까? 저는 후자라고 본다. 청춘은 아직 아재를 경험하지 못했으나, 아재는 청춘을 경험해보았기 때문이다. 청춘을 잊어버린 아재 혹은 꼰대에게 이 영화를 보여준다면 ‘아, 랩이 저런 거였구나’ 이해하고 이해 면적이 더 넓어지지 않을까. 그래서 일부러 랩 가사 자막도 넣었다. 나이 든 사람들은 리스닝이 잘 안 되거든."

-이준익 감독의 작품들은 이른바 ‘사람 냄새’ 나는 영화가 많았다. 그런데도 나름 그 안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데.
"미스터리·스릴러 장르 영화들은 그 장르만의 쾌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간 제가 찍은 건 장르 영화가 단 한 편도 없다. 다만 장르적 반복을 하는 건 스스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자기 작품의 필모그래피를 책임져야 하는데, 장르 영화를 찍지 못하는 감독 입장에서 자기 영화와 충돌하는 건 피해야 하지 않겠나."

-커튼콜 장면도 인상 깊더라. 꽉 닫힌 해피엔딩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런 의도였다. 행복하게 끝내고 싶었다. 엔딩 장면을 보면 학수와 선미가 짧게 뽀뽀하는 신이 있는데 그건 배우들의 애드리브였다. 배우들도 학수와 선미가 입 한번 맞추지 못하는 게 아쉬웠던 거지. 늘 두 사람은 뽀뽀하려다가 못했고 심지어 유사하게 한 것이 노을과 뽀뽀한 거니까.

영화 '변산'을 연출한 이준익 감독[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학수가 아버지와 갈등을 빚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아버지를 때리는데. 이 장면에서 나름 작은 논란(?)이 있었다.
"아버지를 어떻게 때릴 수 있느냐는 거다. 그러나 저는 학수가 아버지를 때렸다고 생각지 않는다. 반대로 아버지가 학수에게 맞고 싶었던 거지. 그래서 계속 ‘컴온’, ‘쳐! 쳐보라고!’라고 자극하고 도발하는 것 아니겠나. ‘나를 밟고 넘어가 용대를 밟으라’는 것이 아버지의 의도였고 그 말인즉슨 ‘불편했던 과거를 극복하라’는 거지. 아버지가 학수의 독기를 끌어올렸다고 본다. 그래서 그다음 대사가 ‘펀치는 이만하면 됐다’ 아니겠나. 그 신은 학수가 아버지를 때린 게 아니라 꼰대가 청춘에게 때려달라는 주문 같은 신이다. 어떤 표상을 깨라는 거지. 가부장제가 오랜 세월 대한민국에 남아있는데 우리가 이 시대를, 가부장제의 표상을 넘어설 때가 되지 않았나."

-관객들이 ‘변산’을 어떻게 보았으면 좋겠나.
"감독으로서 나의 철학이 무엇이냐면, 영화는 관객의 것이라는 거다. 제가 어릴 때 본 만화영화는 내 가슴속에 남아있고 결국은 내 영화다. 찍을 때는 만드는 사람들의 것이지만 개봉하고 나면 시간 내서 영화를 보는 관객의 것이 되는 거다."

-다음 영화는 어떤 작품이 될까?
"준비 중인데 아직 결정하진 못했다. 빨리하려고 노력 중이긴 하는데. 하하하.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1년에 한 편씩 꾸준히 찍으려고 한다. 성실히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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