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허장성쇠 게임체인저 vs 실질적 변화 주도 스틸러(Stea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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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前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
입력 2018-05-01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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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영화·TV, 역사 속에서도 주연보다 명품 조역이 훨씬 더 큰 영향력 미쳐 -

[김상철]

[김상철 전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 12년 만의 남북 정상회담, 보수와 진보를 떠나 정상 간의 만남 자체에 대해서는 모두가 반기는 분위기다. 다만 회담의 내용과 결과에 대해서는 이견인 있을 수 있다. 좀 더 시간이 지나봐야 국민적인 합의가 만들어질 것 같다. 그런데 현장에서의 돌발 장면을 언론에서 편집하여 소개, 때 아닌 화제가 되고 있다. 각종 해프닝을 ‘신 스틸러(Scene Stealer)'로 묘사하여 흥미를 더 유발하고 있기도 하다. 아마 적어도 열흘 정도는 이런 것들이 일상 대화에도 많이 오르내릴 것 같다. 신 스틸러란 직역하면 ‘장면을 훔치는 사람’이다. 영화나 TV 드라마 등에서 발군의 연기력이나 독특한 개성을 발휘해서 주연 이상으로 주목을 받는 조역을 일컫는다. 실제로 우리 연예계에도 명품 조연 배우들이 많다. 실제로 신 스틸러들이 더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활용도 측면에서도 그 가치가 훨씬 높다.

이번 회담에서도 상당수 인물들이 신 스틸러로 회자되고 있다. 순간적으로 자기 포지션을 잊어버린 김영철 부위원장, 전 세계 생중계 화면을 가려버린 ‘기자선생’, 만찬장에서 독창을 부른 제주 출신 13세 소년, 심지어 사람은 아니지만 평양에서 공수해온 옥류관 냉면 등이 거론된다. 김여정이라는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이 최고의 신 스틸러로 꼽히기도 한다.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중 방남하여 남한에도 익히 알려져 있기도 하고, 이번 회담 중에도 지근에서 세심하게 오빠 시중을 드는 모습이 인상적이기도 했다. 김여정이 여성이라는 점과 차분한 모습들이 남측에서 비교적 긍정적으로 비쳐지고 있기도 하다. 한반도의 비핵화, 종전선언과 영구적 평화체제 정착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라 그런지 여성의 역할이 더 돋보이기까지 한다.

지나온 인류의 역사를 보더라도 알려진 명품 조역들이 허다하다. 본인이 직접 역사의 흐름을 바꿀 정도의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주변에서 역사의 수레바퀴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게 한 시대의 인물이다. 역사를 영어로 번역하면 'History'이다. 이는 역사가 남성 중심의 이야기(His+Story)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 속에는 세계사의 큰 물줄기를 바꾼 위대한 여인들이 적지 않다. 역사의 주연 역할을 자임한 남성들을 뒤에서 움직인 신 스틸러가 바로 여성이다. 20세기 들어 여성에게도 참정권이 부여되기 시작하면서 단순 조연이 아닌 주연으로 부상하고 있다. 더 많은 여성이 역사의 후면이 아닌 전면에 나올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지고, 주연과 조연을 넘나들면서 적절한 역할과 실질적인 기여를 할 것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수많은 스틸러들이 벌떼처럼 움직이고 있다

혼란의 시기에는 반드시 ‘게임체인저(Game Changer)'가 나오기 마련이다. 게임체인저란 어떤 일에서 결과나 흐름의 판도를 뒤바꿔 놓을 만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나 사건을 말한다. 남북·북미 회담에 주연급으로 등장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이나 김정은, 트럼프 등이 대표적 게임체인저들이다. 게임체인저들은 존재감이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치킨게임’, 즉 벼랑 끝 전술을 동원하기도 한다. 더 많은 전리품을 챙기기 위해 흔히 쓰는 수법이다. 최악의 상황 직전까지 갔다가 멈추고 협상 테이블을 펼쳐 극적 반전을 꾀하며, 효과의 극대화라는 노림수까지 시계(視界)에 넣고 있다. 하지만 긴 호흡을 갖고 냉정하게 보면 게임체인저보다 신 스틸러의 기여도가 더 높은 경우가 많다는 점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글로벌로 시야를 넓혀보면 도처에 게임체인저들로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정치판에는 자·타칭 ‘스토롱 맨(Strong Man)'들로 판이 채워지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본격적인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려는 국가나 기업들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모두가 게임체인저,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겠다고 아우성이다. 선진국과 신흥국 간은 물론이고, 선발 주자와 후발 주자의 경계도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대기업 중심의 기존 경제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유니콘(매출액 10억 달러 비상장 스타트업)·데카콘(매출액 100억 달러 신생 벤처기업)의 출현도 가시적이다. 단순 모방에서 벗어나 기술 기업 흡수(M&A), 인재 스카웃, 시장 왜곡 등 다양한 형태의 스틸러(Stelaer: 도둑)들이 벌떼처럼 움직이고 있다. 허장성쇠의 게임체인저들보다 실질적 변화를 주도하는 스틸러에 대해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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