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꺼풀 벗기자 여성들의 목소리가 드러났다' 확산되는 #미투…"나 떨고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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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연 기자
입력 2018-03-05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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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조계서 시작된 '미투'…문화예술계, 대학가, 종교계 등으로 번져

  • 피해자는 숨고 가해자만 남아…일각선 폭로성 '미투' 전개 방식 비판도

  • 전문가들 '피해자의 자격' 운운하기 전 자기 반성 필요

  • 보수적 성문화, 성희롱에 무감감각 가부장적 남성들 등 인식 변화 필요

[사진=아주경제 DB]


검찰 내에서 벌어지는 성희롱 고발 사태에서 시작된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운동이 법조계를 넘어 문화예술계·대학가·방송가·종교계 등 전방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연일 새롭게 터지는 의혹에 시민들의 분노도 들불처럼 타오르고 있다. 권력관계 구조 최하위에 있던 피해자들의 용기있는 증언으로 사회 지도층, 권력층들의 치부가 하나씩 드러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법조계서 시작된 미투, 사회 곳곳으로 스며···가해자들 "나 떨고있니?"

국내 미투운동은 지난 1월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의 안태근 전 법무부 국장의 성추행 을 폭로한 계기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서 검사에 이어 임은정 서울북부지검 검사도 과거 부장검사에 의해 성폭행을 당할 뻔한 사실을 폭로하면서 법조계 전반으로 퍼졌다.

현재 법무부와 검찰은 조사단을 꾸려 검찰 내 성희롱·성폭력 사태에 대한 전반적인 진상 조사를 진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후배 여검사를 성추행한 혐의로 김모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부장검사가 구속됐고, 안태근 전 검사장도 지난 26일 검찰 조사를 받았다. 수사 대상에 오른 전·현직 검사도 다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투운동은 정치권·문화계 원로·대중의 선망을 받던 배우·교수·종교계 등 성역 없이 번지고 있다. 최영미 시인은 원로 시인인 고은의 상습적인 성추행을 고발했고,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 이승비 극단 나비꿈 대표, 김보리(가명), 배우 김지현 씨 등은 연희단패거리패를 이끌던 이윤택 연출가의 성추행과 성폭행 사실을 잇따라 폭로했다.

또 다른 연극계 거물인 오태석 연출가, 한명구 서울예대 교수, 소나무 사진으로 유명한 배병우 작가, 뮤지컬 ‘명성황후’, ‘영웅’ 등으로 알려진 윤호진 에이콤대표(연출가) 등도 그간 자행했던 성추행 사실이 잇따라 폭로됐다. 세종문화회관 이사장 등을 지낸 연출가 김석만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 시절 성추행 의혹이 불거지면서 국립극장장 최종 후보에서 탈락하기도 했다.

방송계와 종교계에선 파장이 더욱 크다. 배우 겸 대학교수인 조민기는 청주대에서 수년간 여학생들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대학가 미투 바람에 불을 지폈다. 안방극장으로부터 사랑받던 조재현도 성추행 의혹에 무릎을 꿇고 대학 교수직 등을 내려놓았다. '씬스틸러'로 충무로를 종횡무진했던 오달수, 최일화 등도 성폭행 가해자로 지목돼 무릎을 꿇었다. 

국내 대표적인 인권단체중 하나인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김덕진 씨도 과거 여성 활동가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용납할 수 없는 큰 잘못을 했다"며 사과했다. 천주교 수원교구의 한 사제 역시 아프리카 남수단 선교봉사활동 당시 한 여성신자를 성폭행하려던 사실이 폭로돼 이용훈 교구장 명의로 사과문을 발표했다.

◇무차별적인 폭로에 '여성 경계령'···일각선 "여성 스스로 '미투' 후퇴 자초"

들불처럼 번지는 미투운동에 대해 일각에서는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피해자들이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을 익명성에 기대 폭로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피해자는 꽁꽁숨고 확대 재생산된 ‘성희롱 고발담’만 남아 사실확인이 안된 상황에서 가해자만 무차별적으로 '융단폭격'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다.

익명을 요구한 ​A대학원생(27·여)은 “이런식의 무차별적 폭로가 미투운동으로 둔갑하면 학생들 너다섯만 모여도 마음에 안드는 교수를 찍어내릴 수 있다”며 “가짜 운동이 판치면 진짜 도움이 필요한 피해자들의 상황도 의심받을 수 있는 만큼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무분별한 폭로전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박모(38·남)씨 역시 “미국의 경우에는 영화판에 오래있던 영화관계자, 유명 여배우 등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당당하게 ‘미투’를 외치는 반면 한국의 미투운동은 피해자들이 익명성 뒤에 숨어서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 기억에 기대 호소한다”며 "미투 운동의 취지는 좋지만 카더라 식의 폭로는 여성들 스스로 미투 운동을 무너뜨리는 계기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남성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여성직원 경계령’도 나온다. 언제 어디서 가해자로 몰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대기업 30대 남성 직원 한모씨는 “요즘 같은 분위기에는 회식은 커녕 여성직원과 단둘이 커피를 마시거나 야근하기도 두렵다”며 “장기간 팀 프로젝트를 해야하는 경우나 출장 등에 여성 팀원을 꺼리는 분위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피해자vs가해자 '대결구도' 옳지 않아···'난 피해자 인권 지키려 했는가' 반성
 
전문가들은 미투 운동의 본질은 권력관계 내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인 만큼 남-녀 간의 갈등으로 치부하거나 법조계·문화계 등 특정 집단의 문제로 몰고가는 형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성별이 문제가 아니라 권력관계가 형성되는 모든 영역에서는 성폭력이 벌어질 수 있다”며 “특정 집단이나 개인의 도덕적 흠결을 문제의 원인으로 축소하는 것은 성차별의 구조적 원인을 심화시킨다”고 말했다.

가해자보다 피해자에게만 관심 갖는 한국 사회의 후진적인 행태도 바꿔야 한다. 한국 미투운동이 익명 게시판, SNS등을 통해 폭로적 성격으로 전개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피해자를 ‘꽃뱀’으로 보는 사회적 인식, 신상털기, 보수적인 성문화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

특히 사실을 말하더라도 법적으로 처벌 받을 수 있는 조항은 성희롱·성폭력을 외치는 피해자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주장이다. 형법 307조 1항에는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때문에 이번 미투 운동을 계기로 이 조항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쏠린다. 현재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제’ 해당 조항의 삭제를 청원하는 글이 게시됐다.

한국여성단체연합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익명으로 피해 사실을 폭로하는 것은 사태가 성범죄 가해자보다 피해자에 초점이 맞춰지기 때문"이라며 "방조자들이 '피해자의 자격'을 운운하고, 가해자가 피해자를 역고소하는 상황에서 나온 최소한의 보호장치"라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가에게 ‘자신을 드러내라’고 말하기 전에 그동안 사회가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기 위해 노력해왔는지, 피해자를 평가하거나 인권을 침해하지는 않았는지 등에 대해 먼저 되짚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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