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포스트] 표류하는 R&D 예산권 이관, 과학기술계 '골든타임' 놓치나

 

"프라임 타임(prime time)."

'피크 타임(peak time)'으로도 불리는 이 단어는 방송 시장의 시청률이나 청취율이 가장 높은 황금시간대를 뜻하는 말입니다. 의료 학계에서는 사고나 사건에서 인명을 구조하기 위한 초반 금쪽같은 시간(1~2시간)인 '골든타임(golden time)'으로 지칭하고 있습니다.

가령 누구에게나 발생할수 있는 심장마비는 4분이내 응급처지를 하면 회복이 가능하지만 1시간 이내 증상이 지속되면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이에 '4분 골든타임'의 중요성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항공사의 경우 '운명의 90초' 룰이 있습니다.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90초 내에 승객들을 기내에서 탈출시켜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들의 사안은 제각각 다를 수 있지만 촌각을 다툰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는 현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국가 연구개발(R&D) 예산권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과기혁신본부)에 이전하도록 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이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여야 의원들의 기싸움에 해당 법안은 끝내 해를 넘기고 내년으로 미뤄진 상황입니다.

개정안은 20조원에 달하는 국가 R&D 예비타당성조사 권한을 기획재정부에서 과기정통부로 이관하고, 기재부의 국가 R&D 지출한도 설정 권한도 기재부·과기정통부 공동권한으로 바꾸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과기혁신본부는 과학기술정책 R&D 사업 예산 심의·조정, 성과평가 등을 전담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 셈입니다.

현 정부는 이를 토대로 과기혁신본부가 '과학기술 컨트롤타워'로서 위상을 확립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 과학기술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과학기술계에서도 연구를 적기에 수행할 수 있는 동시에 R&D 투자 여부를 평가하지 않아 기초연구도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았습니다.

하지만 개정안은 6월 발의 직후 부처간 진영 논리에 휘말리면서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었습니다. 10월 말 극적인 부처 합의로 국회로 넘어갔지만, 여야 의원들의 기싸움에 답보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개정안이 해를 넘기면서 과기혁신본부의 컨트롤타워 조기 구축에 따른 R&D 시스템 혁신은 정처없이 표류하게 된 상황입니다.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은 "모든 삶과 인생에는 때가 있다"고 강조하며 23번의 어려운 고비마다 골든타임 전략으로 전승할 수 있었습니다. 수년전 대한민국을 비통에 빠트린 '세월호' 사건에서도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골든타임의 중요성은 지금까지도 회자가 되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해 전 세계적으로 과학기술 연구개발 트렌드가 빠르게 변화하는 가운데, 과학기술정책의 적기(適期)를 놓치지 않는 것인지 되새겨봐야 하는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