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진칼럼] 줄타기 달인은 뛰어내릴 때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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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진 초빙논설위원
입력 2017-11-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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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진칼럼]

 

    [사진=강영진 초빙논설위원]



줄타기 달인은 뛰어내릴 때를 안다

중국이 화를 풀었다. 지난주 강경화 외교장관이 밝힌 ‘3불 정책’을 계기로 한·중 간 ‘사드 갈등’이 풀렸다는 평가가 이미 있었다. 이를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국가주석이 주말 정상회담에서 확인했다. 다음 달 문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고 시 주석은 내년 2월 평창올림픽 때 방한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중단된 최고위급 교류를 재개키로 한 것이다.
중국이 사드를 이유로 한국에 가한 경제적 ‘제재조치’들도 지난주부터 풀리는 기미다. 문재인-시진핑 회담을 계기로 중국인들은 안심하고 한국관광에 나설 수 있고 한국 화장품도 마음껏 살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주 예정된 문재인 대통령–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 회담에선 ‘한류(韓流) 해제’를 넘어 한·중 경제교류를 강화하는 방안이 본격 논의될 전망이다.
다행스런 일이다. ‘3불 정책’이 중국에 대해 너무 저자세이며 우리 안보 주권을 포기한 것이라는 부정적 평가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의 관계를 냉랭한 대립적 상황 아래 계속 방치할 순 없는 일이다. 어떻게든 풀어내야 할 일이었다. ‘3불 정책’은 안보를 포기한 것까지는 아니고 일부 양보한 수준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공평해 보인다.
‘안보 문제는 결코 타협해선 안 된다’는 원칙론은 호소력이 크다. 그러나 원칙론을 뛰어넘는 고차원적인 전략전술 없이 한반도 주변정세를 헤쳐 나갈 수 없다. 북한이 한사코 ‘미국의 적대시 정책이 바뀌지 않으면 핵 포기는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안보제일주의의 전형이다. 극단적으로 인권침해적인 북한 체제라면 ‘안보제일주의’ 이외에 다른 선택이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로 인해 북한이 당면한 위기는 북한의 존립을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안보제일주의가 안보를 가장 위협하는 역설적 상황이다.
안보제일주의까지는 아니라도 안보는 대외정책에서 최우선 순위로 다뤄야 하는 건 맞는다. 문제는 우리가 안보 관련 사안에서 중국에 어느 선까지 양보할 수 있느냐다. 중국과 미국은 기본적으로 경쟁적 관계다. 일본이 중국을 두려워하고 견제하는 건 수백년 동안 지속된 입장이다. 중국이 북한을 버리고 남한이 흡수 통일하도록 방치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점들을 모두 고려하면서 우리의 안보를 최선으로 지켜내야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한·중 정상회담에서 북한핵문제 해법에 대해 의견 교환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청와대는 내용을 공개하길 꺼렸다. 북한의 핵개발 중단과 한·미 군사연습 중단을 맞바꾸자는 중국의 쌍중단(雙中斷) 입장에 대해 미국은 ‘모욕적’이라면서 반대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정부의 입장도 다르지 않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 앞에서 어떤 입장을 보였는지가 주목된다. 단호한 반대였는지, 아니면 생각해볼 수 있다고 했는지, 그도 아니면 묵묵부답이었는지. 이와 관련, 문정인 대통령 특보는 중국의 쌍중단 입장에 상당히 동조하는 입장이다. 문 대통령이 시 주석 앞에서 문 특보처럼 반응했을지 궁금하다.
한·미는 1992년 합동군사연습을 중단한 적이 있다. 남북기본합의서가 체결되는 등 화해분위기가 고조됐을 때다. 그러나 지금은 당시와 너무 다른 상황이다. 당시 북한은 공산권 국가들의 연쇄 붕괴 속에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었다. 이에 비해 지금 북한은 핵개발의 마지막 단계에 있다. 우리의 안보 여건이 한·미 군사연습 중단을 고려할 만큼 여유롭지 않은 것이다.
중국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쌍중단을 강조하는 건 한·미동맹을 훼손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드를 이유로 한국에 큰 타격을 주면서까지 경제제재에 나섰던 것도 마찬가지다. 중국과 접경한 한반도가 미국의 군사 전진기지가 되는 것을 참을 수 없다는 것일 게다. 앞으로도 중국은 한미동맹 약화를 겨냥한 노림수를 언제든 구사할 것이다.
덩샤오핑(鄧小平) 시절의 도광양회(韬光养晦)가 시진핑 시기엔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로 바뀌었다. 실력이 갖춰질 때까지 때를 기다린다던 대외정책이 미국에 대해 중국도 대국(大國)임을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상황이다. 중국은 우리에게도 중국을 대국으로 섬길 것을 강요하고 있다.
지난 주 트럼프 미 대통령은 한국에서 1박2일 동안 안보행보를 이어갔다. 도착하자마자 캠프 험프리스를 방문하고 국회연설도 안보가 주제였다. 비록 안개 때문에 불발됐지만 예정에 없던 판문점 방문도 극적인 안보 행보였다. 그러나 트럼프의 행보는 역대 미 대통령들의 그것과 미묘하게 달랐다. 한국에 대한 안보 공약 재확인 과정이 생략됐다.
미국은 지금 한국의 대 중국 입장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최근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미국의 입장도 변화하는 중이다. ‘동맹’인 미국이 중국처럼 우리를 마구 흔들어대진 않더라도 동맹 역시 상호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동맹을 소홀히 한다고 느낀다면 미국 역시 섭섭한 표시를 하게 될 것이다.
‘반미면 어떠냐’던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 그랬다. 당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원치 않는 나라에 미군을 주둔할 생각이 없다”고 맞받았다. 이런 미국을 달래기 위해 노무현 정부는 주한미군의 역할을 한국방위를 넘어 미국의 해외기동군 역할까지 확대하는 데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혹 떼려다 혹 붙인 결과였다. 주한미군이 평택 미군기지로 집결하게 된 배경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평택기지는 아이러니다. 세계 최대 해외 미군기지가 된 덕분에 미국 입장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가치가 오히려 커졌고, 동맹은 그만큼 든든해진 셈이다.
우리는 지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운명적인 줄타기를 하고 있다. 전에 없던 일이다. 그래서 위태위태하다. 사드 보복에서 보았듯 중국은 언제든 줄을 크게 흔들 태세다. 한·미 동맹이 뒷받침하고 있는 동북아 질서를 깨트리려는 것이다. 당장은 우리가 줄에서 뛰어내릴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그러나 줄 위에서 언제든 뛰어내릴 수 있다는 각오와 준비가 필요할지 모른다. 줄을 타고 있는 우리를 흔들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줄 위에 있을 때만 가능하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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