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진칼럼] 생각 달라도 예의 갖춘 한미 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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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진 초빙논설위원·언론인
입력 2017-11-0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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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진칼럼]

 

[사진=강영진 초빙논설위원·언론인]



생각 달라도 예의 갖춘 한·미 정상회담

조마조마했던 한·미 정상회담이 별 탈 없이 끝났다. 마음을 졸여야 했던 건 트럼프 미 대통령이 매우 강경한 대북 압박 캠페인을 벌이는 것과 대조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어떻게든 북한과 화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입장차가 큰 탓에 회담이 자칫 썰렁한 분위기 아래 진행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던 것이다.
걱정을 불러일으킨 건 한·미 정부의 대북정책 차이만이 아니다. 지금 중국과 일본은 한국 흔들기에 여념이 없다. 한·미 정상회담을 코앞에 두고 강경화 외교장관이 이른바 ‘3불정책’을 공개 천명했다. 사드 추가배치 배제, 미국의 미사일 방어(MD)체제 불참, 한·미·일 군사동맹 거부가 우리 정부 입장임을 강조한 것이다. 모두 미국이 싫어할 수밖에 없는 내용들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을 국빈(國賓)으로 초청해 놓고 목전에서 미국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는 행동을 한 것이다. 실제로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강 장관의 3불정책 언급에 대해 “한국이 주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민감하게 반응했다.
사드 배치 때문에 악화된 한·중관계를 풀기 위해 불가피한 고육책이라지만 하필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방한에 맞춰 발표한 것은 중국의 요구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황제’로 등극한 19차 당대회가 ‘사드 불화(不和)’를 풀어내기에 좋은 타이밍이었던 것은 맞는다. 그렇더라도 한·미 정상회담을 코앞에 두고 강 장관이 나설 수밖에 없었던 건 미묘하다. 중국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국이 중국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음을 강조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중국 외교부가 강 장관의 3불정책 입장표명을 ‘약속’이라며 치고 나온 것만 봐도 중국의 의도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중국의 과대포장에 당황한 한국 정부는 황급히 3불정책이 ‘약속’이 아니라 ‘입장표명’이라고 정정해야 했다.
일본 역시 한국을 끊임없이 견제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국제사회에서 대북 강경론의 선두주자를 자처한다. 또 트럼프 미 대통령과 찰떡궁합임을 최대로 과시한다. 이런 대외정책 기조에 힘입어 총선에서 압승하기도 했다. 일본 자민당 정부의 대외정책 기조는 미·일 동맹을 최대한 강화해 굴기(屈起)하는 중국에 맞서는 것이다. 미·일 동맹을 호주, 뉴질랜드를 포함하는 아시아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로 확대하겠다는 구상도 선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 구상의 걸림돌이 한국이다.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이 결합해 한·미·일 동맹이 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텐데, 한국은 그럴 생각이 없다. 강한 대북압박에 한국도 적극 동참하길 바라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생각이 다르다. 그렇기에 일본은 한국을 은근히 ‘왕따’하는 분위기를 만든다.
그러나 한국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트럼프 환영만찬에 위안부 출신 이용수 할머니가 참석하고 메뉴에 독도새우가 등장하는 건 그래서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일본은 아직 한국과 동맹을 맺을 자격이 없음을 강조한 것이다. ‘한·미·일 동맹 거부’는 일본의 아시아판 나토 추진 구상에 고춧가루를 뿌린 격이다.
중국과 일본의 흔들기에도 불구하고 한·미 정상회담은 ‘별 탈 없이’ 끝났다. 여기엔 청와대가 노심초사하며 트럼프를 국빈으로 극진히 대접한 효과가 컸다. 세계 최대 규모 해외 미군기지인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마중 나가고, 청와대 안마당에서 전통의장대 사열을 벌이고, 어린이 환영단을 동원하는 등 청와대는 정성을 다했다. 아베 일본 총리처럼 과공비례(過恭非禮)라는 비아냥을 듣지 않을 정도이면서도 손님 트럼프 대통령을 기분 좋게 하는 데 성공했다.
과거 한·미 정상회담은 분위기 나쁘게 끝나는 일이 없지 않았다. 김대중-부시 대통령 정상회담에서 부시가 김대중을 “This man”이라면서 불손하게 불러댄 것이 좋은 예다. 이에 비해 트럼프 대통령은 25시간의 한국 체류 동안 한국 정부와 국민의 감정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분위기가 좋은 건 여기까지다. 한·미 양국 정부가 대북정책, 대중정책, 대일정책을 두고 근본적 차이가 있다는 건 모두가 안다. 따라서 국빈방문과 같은 격식을 차리는 자리가 아니라면 입장 차이가 조율되지 못한 채 갈등으로 불거질 개연성이 얼마든지 있다.
당장 트럼프 대통령이 서울을 뜨자마자 문정인 대통령 특보와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3불정책’을 적극 옹호하고 나섰다. 3불정책을 ‘굴욕외교’로 비판하는 여론에 맞선 것이다. 곧 열릴 한·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을 지원하기 위해 나선 셈이다. 이에 힘입어 한·중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3불정책을 새삼 재천명한다면 한·미관계가 손상될 위험이 있다.
정상회담의 화기애애한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한반도 정세는 여전히 험악하다. 미국은 항공모함 3척을 한반도 인근에 집결시켜 군사훈련을 할 예정이다. 6·25전쟁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국회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힘과 의지를 시험하지 말라”며 북한에 경고한 것이 빈 말이 아님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항공모함 3척이 포진한 당장은 아닐지라도 조만간 북한이 동북아 정세의 중요한 행위자로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나설 것이다. 태평양상 수소폭탄 실험을 몇 차례 예고한 북한이 일을 저지를 것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한반도 긴장은 한순간에 치솟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긴장의 악순환을 벗어나기 위한 계기로 삼기 위해 노력해왔다. 3불정책이 국내외적으로 논란을 촉발할 것임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3불정책을 천명한 건 석달 남은 평창올림픽과 그 이후의 정세를 고려한 것일 수 있다. 평창올림픽에 북한을 참가시켜 남북화합 분위기를 고조시킴으로써 한반도 긴장을 완화할 계기로 삼는다는 구상에 중국이 지원해줄 것을 바라지 않았을까. 험악해져만 가는 한반도 정세가 분위기 좋게 바뀌면 핵문제에도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 기대가 타당한지는 길어야 두세 달 안에 판명난다. 정부가 두세 달 뒤 대북·대외 정책의 기조를 바꿀지를 고민해야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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