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진칼럼] 제2의 6·25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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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진 초빙논설위원
입력 2017-10-1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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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진칼럼]

 

  [사진=강영진 초빙논설위원]



제2의 6·25는 없다

6·25전쟁은 인류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의 하나로 꼽힌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 질서가 공산진영과 자유진영으로 나뉘는 국제질서를 확정하는 전쟁이어서 그랬다. 전장(戰場)만 한반도였지 사실상 동서 진영이 벌인 세계대전의 축소판이었던 것이다.
전쟁을 일으킨 것은 김일성을 내세운 공산진영이었지만 자유진영으로서도 결단코 물러설 수 없는 전쟁이었다. 양 진영이 끝내 포기할 수 없는 전쟁이기에 극단적으로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37개월의 전쟁 기간 중 휴전협상이 진행된 것이 24개월 이상이다. 양측 모두 전쟁 발발 1년 만에 결정적 승리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휴전협상에 나선 뒤에도 2년 넘게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서로 조금도 물러설 수 없다는 기세 싸움이 휴전협상의 배후에 깔려 있었다. 그 결과, 전쟁을 최종적으로 종식시키는 평화협정 대신 일단 전투행위를 중지하는 정전협정으로 전쟁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종전 후 2세대가 넘도록 평화체제가 논의조차 되지 못하는 상황을 볼 때 휴전협상 당시의 기세싸움이 여전하다는 느낌이 든다. 동유럽 공산진영의 붕괴, 구소련의 붕괴에 따라 동서 양진영의 대립은 사실상 소멸됐지만 한반도에선 그 대립의 잔재가 남아 있다.
한반도에만 동서 대립의 잔재가 남아 있는 건 북한 때문이다. 북한은 공산진영이 무너지는 변혁에도 살아남았다. 다른 공산국가들과 달리 공고한 1인 독재체제를 다지면서 일종의 신정(神政)국가가 됐기 때문이다. 국민을 제대로 먹여살리지 못한 결핍이 공산국가 소멸의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국민을 제대로 먹여살리지 못한 북한은 살아남았다. 김일성 일가를 교주로 삼은 광적(?)인 신앙심으로 결핍을 이겨낸 것이다. 그 북한이 지금 한반도 위기를 사상 최대로 증폭시키고 있다.
6·25전쟁에 이어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날 것인가. 트럼프 미 대통령을 비롯한 미 정부 당국자들 입에서 전쟁을 암시하는 언급이 잦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정말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북한의 입은 더 험하다. 북한의 위협과 욕설은 예전부터 정평이 나 있는 터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이 6·25전쟁 이후 어느 때보다도 강경하게 나오는 미국을 상대하면서 내심 당황하고 있는지 모른다.
북한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미국을 상대로 힘의 균형을 이룰 때까지 핵개발을 멈추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힘의 균형이란 ‘허망한 꿈’일 뿐이다. 북한은 얼마 전 미국의 B1-B 랜서 전략폭격기가 심야에 북한 동해안까지 북상하는 것을 알지 못했다. 핵미사일 실전배치가 임박했다지만 미국을 상대로 핵미사일을 쏠 일은 아마도 북한이 무너지는 순간까지도 없을 것이다.
광신도들이 집단 자살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 북한이 미국을 핵미사일로 공격하는 건 마찬가지의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그렇지만 북한은 2500만명의 인구를 가진 나라다. 아무리 1인 독재 신정국가라지만 한 나라가 소규모 광신도 집단처럼 비극적 최후를 결행할 가능성은 없다. 철없고 겁 없는 김정은일지라도 독단적으로 전쟁을 벌일 순 없다. 김정은이 정말 불질을 하려는 순간 핵심 측근들부터 배신할 것이다.
문제는 미국이다. 지금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로 미국을 위협하는 상황을 방치할 수 없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외교적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별 기대는 하지 않는다는 분위기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은 외교적 협상 노력을 군사 공격을 위한 명분 쌓기 정도로 생각하는 분위기다. 전쟁을 해야만 한다면 할 것이란 메시지를 빠트리지 않는다.
이런 미국의 태도를 놓고 국내에선 입장이 갈린다. 한·미동맹에 따라 미국이 한국 정부의 의사를 무시하고 북한과 전쟁을 벌일 수 없다는 것이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떤 경우에도 전쟁만은 막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다. 문정인 대통령 특보는 한·미동맹이 깨지더라도 전쟁을 막아야 한다고 막말하듯 해 파문을 일으켰다. 우리 정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이 전쟁을 벌일 수 없고 여차하면 한·미동맹을 파기해서라도 전쟁을 막겠다는 것이 우리 정부와 여당 관계자들의 생각으로 요약된다.
정부관계자들과 달리 야당이나 민간의 의견은 어떤가. 보수 야당이라고 해서 공개적으로 전쟁도 불사할 수 있다는 입장까진 아닌 듯하다. 대다수 민간의 여론도 마찬가지다. 아직은 정말 전쟁을 해야 하나라는 문제까지 생각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통령을 포함한 최고 당국자들이 수시로 북한의 핵무기를 제거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군사적 수단도 사용할 것이라고 매일같이 강조하는 것에 비해 우리 사회의 전쟁 위기감은 의아스러울 정도로 낮다. 정부가 “어떤 경우라도 전쟁을 막겠다”, “동맹이 깨지더라도 전쟁을 막아야 한다”, “한국의 동의 없이 전쟁할 수 없다”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미국은 말뿐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전쟁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B1-B 랜서 폭격기가 밤낮으로 한반도 상공에서 폭격 예행연습을 하고 항공모함과 핵잠수함이 한반도 주변에 집결해 북한 핵 제거를 위한 공격 시나리오를 점검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전쟁만은 안 된다는 우리 정부의 공언을 무색하게 만든다.
미국과 북한은 전쟁이라는 극단을 상정한 채 기세싸움을 벌이고 있다. 한때 북한의 보도(寶刀)였던 벼랑 끝 전술이 지금은 오히려 미국의 전술이 됐다. 이 기세싸움에서 누가 먼저 물러설 것인가. 필자는 북한일 것으로 생각한다. 전쟁이 일어나면 북한은 모든 것을 잃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트럼프 미 대통령은 실보다 득이 많다고 생각할 것이다.
진실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 순간은 우리에게 중대한 선택의 기로다. 미국의 전쟁불사 의지가 진짜 전쟁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막겠다는 우리 정부의 의지가 전쟁을 막을 수 있을지, 그도 아니면 북한이 핵포기 협상에 나설 것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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