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경제봉쇄...험난한 쿠르디스탄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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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주 기자
입력 2017-09-27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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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쿠르드족 분리독립 90% 찬성 불구 이라크 중앙정부 "위헌" 협상 거부

  • 각국 쿠르드족 연쇄 독립운동 가능성에 터키·이라크 등 제재 예고

  • 예산 지원 중단·유가하락에 경제 약화...추가제재에 지정학적 긴장 고조

이라크 북동부 키르쿠크 지역에서 지난 25일(현지시간) 쿠르드계(커디시) 어린이들이 거리에서 쿠르드자치정부 깃발을 흔들고 있다. [사진=연합/AP]


"쿠르디스탄(쿠르드족이 추구하는 독립국가 명칭)의 의지가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마수드 바르자니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KRG) 수반은 26일(이하 현지시간) 이라크 내 쿠르드계 분리·독립 찬반 투표에 대한 승리를 선언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라크 중앙정부와의 협상에 즉각 나서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러나 이라크 중앙정부와 터키 등 주변국들은 '경제 봉쇄' 카드까지 꺼낸 상태다. 독립 가능성은 열렸지만 중동을 둘러싼 지정학적 우려가 높아지면서 후폭풍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BBC,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 25일 진행된 쿠르드족 분리·독립 찬반 투표 결과 90% 이상이 독립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지 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율이 72.2%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투표 결과는 법적 구속력을 갖지 않는다. 다만 찬성 다수로 통과됨에 따라 KRG는 주민들로부터 협상 권한을 위임받아 이라크 중앙정부, 주변국과 함께 독립 여부를 협상할 수 있다.

바르자니 수반은 당장 하이데르 알아바디 이라크 총리에게 KRG의 독립국가 수립을 위한 협상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알아바디 이라크 총리는 '위헌적 투표'라며 협상 가능성은 없다고 일축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도 "KRG는 독립을 포기하거나 굶어야 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래픽=김효곤 기자 hyogoncap@]


주변국들의 반감은 이번 투표를 계기로 각국 내 쿠르드족의 분리·독립 운동이 자극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됐다. '국가 없는 세계 최대 민족'으로 일컬어지는 쿠르드족은 중동을 중심으로 2500만~3500만명이 분산돼 있다. 이번 투표는 이라크 국경 인근에서 치러졌지만 주변국으로 확대되면 파급효과가 커질 수 있다. 터키에 머물고 있는 쿠르드족은 1400만 명에 달한다. 시리아 북부에서 세력을 넓히고 있는 쿠르드족은 터키 정부와 갈등을 빚어왔다.

KRG 경제는 그동안 외국자본을 토대로 한 건설업과 원유 수출을 지렛대 삼아 번성해왔다. 자치구 수도 격인 아르빌에는 부유층이 밀집한 '드림시티'도 구성돼 있다. 그러나 2014년을 기점으로 하향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라크 중앙정부와의 대립 격화로 매년 지급되던 국가예산 17%가 중단된 데다 국제유가 하락으로 원유 수출에서 타격을 입은 탓이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도 KRG 경제 약화에 일조했다. 2014년 IS가 이라크 북부 모술을 점령, KRG 자치구까지 세력을 확장하자 IS와 대항하기 위해 군사비용이 막대한 규모로 늘어난 탓이다. 이후 3~4년간 재정난을 극복하지 못하면서 실업률이 20%를 넘긴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주변국들은 독립투표 결과를 인정하지 않겠다며 경제 봉쇄를 통해 쿠르드족을 압박한다는 입장이다. 일단 터키는 KRG의 원유 수출용 송유관을 차단하고 하부르 검문소의 통행을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하부르 국경은 KRG의 주요한 대외 교역의 길목이다. 지리적으로 터키, 이라크 중앙정부, 이란, 시리아에 접해 있는 상황에서 터키가 국경을 막으면 이라크 쿠르드 자치구는 사실상 봉쇄된다.
 

26일(현지시간) 이라크와 터키군이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KRG) 자치지역과 인접한 이라크-터키 남동부 국경지대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연합/AP]


이라크 중앙정부는 또 KRG의 수도 격인 아르빌과 술레이마니아 국제공항의 통제권한을 29일 오후까지 중앙정부에 넘기지 않으면 공항을 폐쇄하겠다고 통보한 상태다. KRG 자치지역에서 나오는 모든 원유 관련 수익을 귀속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미 주변국에 KRG와 석유 거래를 하지 않도록 촉구하는 대응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독립투표를 계기로 추가 압박 계획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이라크와 터키군은 KRG 자치지역과 인접한 국경지대에서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했다고 로이터 등 외신은 전했다. 이란은 국경지대 부근에 미사일 시스템을 추가 배치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당분간 지정학적 긴장이 계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면서 국제사회도 앞으로 전개될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 등에 따르면 미 국무부와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각각 성명을 통해 "이번 투표가 중동 정세를 잠재적으로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며 "이라크 중앙정부와 KRG의 대화와 타협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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