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잘나가는 길 대신 약자 편에 선 이대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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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7-03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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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정률 이대순 변호사 [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아주경제 김부원 기자= 이대순 변호사는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라벌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그는 1991년 사시 33회에 합격해 법조계에 발을 들였다. 

법조인으로 잘나갈 조건을 갖췄지만 그는 스스로 순탄한 길을 포기했다. 자부심과 자존심을 잃고 싶지 않아서다. 그가 시민단체인 약탈경제반대행동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것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아주경제가 3일 만난 이대순 변호사는 "부모님이 전북 부안 출신으로 집안 어르신이 동학혁명 주도 세력이었다"며 "혁명에 참여했던 분 가운데 상당수가 서울로 올라와 본적을 바꿨지만, 아버지는 그러지 않으셨다"고 말했다.

그는 법조계에 뛰어든 뒤 '정치 검찰' 실체를 보고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이대순 변호사는 "내가 생각했던 검찰과 달랐다"며 "지극히 권력 지향적인 검찰 문화를 보고 변호사를 택했다"고 말했다.

물론 변호사 업무라고 마냥 정의로운 것은 아니었다. 그는 1994년 대형 로펌에 들어가 전문변호사로 활동했다. 그곳에서 만 4년을 근무하면서 해상, 항공, 무역분쟁을 주로 맡았다. 명백히 잘못을 저지른 가해자를 변호해야 하는 상황도 많았다.

바로 가해자는 거대한 힘을 쥔 대기업이었다. 정부조차도 피해자인 서민을 돕지 않았다고 한다. 정부는 사건을 조사하고 처리하는 시스템조차 제대로 갖춰놓지 않았다. 힘없는 피해자가 법정 싸움에서 이기기 어려운 이유다.

이대순 변호사는 모든 사회 시스템이 대기업 같은 권력자에 유리하도록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실망했다. 결국 그는 대형 로펌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회사에서 보장해주는 많은 돈과 해외연수 같은 혜택마저 포기하고 대한법률구조공단으로 옮겼다. 이대순 변호사는 "로펌에서도 이 사회와 법조계 부조리를 경험하니 큰 회의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내가 은행 대출을 받아 작은 아파트를 계약했는데, 로펌을 떠나면서 급여가 반으로 줄었다"며 "원리금 상환 계획도 지킬 수 없게 됐고, 금융위기까지 터져 한동안 경제적으로 고생했다"고 털어놨다.

그렇게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점차 사회 부조리에 맞서기로 결심했다. 시민단체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이대순 변호사가 처음 인연을 맺은 시민단체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었다.

이곳에서 활동하면 금융실명제 도입을 추진하는 데 앞장섰다. 금융투자시장에서 벌어진 주요사건 가운데 이대순 변호사가 피해자를 변호한 것도 적지 않다. 쌍용차 사태나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 진로그룹 부도 사태, LIG건설 기업어음(CP) 사태가 대표적이다.

그는 "금융시스템을 비롯한 사회 전반이 바로 서려면 법조계 부조리를 척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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