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포커스] 4차 산업혁명 첫 시험대, 인터넷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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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6-08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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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천 아주경제 금융부장]

전날 과음을 한 탓일까. 쓰린 속을 달래며 주말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짜증이 났다. 이 모습이 안쓰러운지 조수석에 앉아 있던 아들 녀석이 내심 위로의 말을 건넸다. "10년 후에는 아빠가 운전하지 않아도 되니까 몇 년만 참아." 성인이 되면 자신이 운전할 것이니 짜증내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아빠, 10년 후에는 사람이 운전하면 벌금을 내야 한대"라는 말에 쓴웃음이 나왔다. 동시에 약간 충격을 받았다. 미래를 바라보는 요즘 아이들의 사고와 자세에 놀란 것이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해서는 안 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을 '혁명'이라고 하는 이유는 과거 방식에서의 탈피가 아니라 '파괴'를 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고정 관념 역시 탈피가 아니라 '파괴'해야 하는 것이고,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뜻이다. 단순히 생활 패턴만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닌 듯싶었다.

인터넷뱅크에 대한 논란이 많다. 출범은 했지만 반쪽이다. 은행 역할을 하려면 당장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 은산법'이 통과돼야 한다. 문제는 인터넷뱅크를 4차 산업혁명이 아닌 정치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다 보니 애석하게도 비극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하지만 아이들의 유연한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해법을 찾지 못할 것도 아니다.

은산법의 쟁점은 명확하다. 현행법에서는 산업자본은 은행 지분을 10%까지만 보유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의결권도 4% 이상 허용하지 않는다. 이에 '인터넷은행 특례법'은 정보통신기술 기업(KT, 카카오)이 산업자본이기는 하지만 예외를 허용해 인터넷뱅크 지분을 30%에서 최대 50%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골자다.

반대 의견도 논리적이다. 규제를 완화하면 은행이 재벌(산업자본)의 사금고화로 이어질 수 있고, 인터넷뱅크에만 예외를 인정할 수 없으니 일반은행에도 동일한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은산법 완화가 곧 재벌의 사금고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은 꼼꼼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사금고화나 대주주의 신용공여 문제는 다른 법이나 규제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실제로 현재 발의된 특례법에는 대주주와의 거래를 강력히 규제하고 있다. 대주주의 신용공여를 금지하고, 대주주가 발행하는 주식 취득도 금지하고 있다.


세상은 변했는데 은행법은 여전히 10년 전과 똑같다. 관계자들 역시 은산분리의 적정성에 대해서만 논의하고 미래를 고민하지 않는 듯하다. 금융당국은 현실을 직시하고, 정치권은 전향적인 검토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터넷뱅크는 어차피 가야 할 길이다. 그렇다면 큰 틀에서 합의점을 찾은 후 문제가 있다면 차근차근 해결하면 그만이다. 작은 문제가 있다고 해서 시대 흐름 자체를 역행하면 안 된다. 세상을 바꿀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는데 이를 알아채지 못하는 것은 죄악이다. 급변하는 상황에서 변화를 받아들이는 '자세'를 갖추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운전을 하면 벌금을 내야 한다는 아들 녀석의 말에는 수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미래에는 사람이 수술을 해서도 안 되고, 약국에서 약을 조제하는 것도 안 된다. 주식을 투자하는 것도, 심지어 기사를 쓰는 것도 인간이 하면 안 되는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대기업의 사금고화라는 단편적 이유로 은행 업무는 창구에서만 하라는 건 왠지 씁쓸하다. 위정자들은 변화의 시대를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것이다.

아들과의 긴 대화는 "이제 학생들도 애써 공부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녀석의 주장에 결국 다툼으로 끝났지만 왠지 그런 세상이 올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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