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퍼펙트스톰을 대비하라-정치권이 위기 부추긴다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최신형 기자
입력 2016-11-16 15:11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린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인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사진=아주경제 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아주경제 최신형·이수경·김혜란·이정주 기자 =갈 곳 잃은 정치가 유령처럼 배회한다. 방향을 잃었다. 헌정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인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운동을 촉구하는 ‘100만 촛불’ 행렬이 들불처럼 번진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절규다.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다. 헌정 공백 사태를 막고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를 넘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포스트 신(新)’ 질서를 맞이할 준비가 됐는가. 문제는 갈등이다. 여야 정치권이 낡고 익숙한 구체제와 단절하지 않는다면, 한국 정치는 또다시 특정 정파의 특정 지역 독식과 1인 보스주의의 87년 체제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에 본지는 창간 9주년을 맞아 갈등의 시대를 넘어 협치·공유 등을 골자로 하는 2018년 체제의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 주>

정치는 ‘갈등’, 그 자체다. 권력투쟁의 장인 정치에서 갈등은 정치적 국면마다 수반된다. 정치의 핵심 기능은 갈등의 조정이지만, 갈등의 불가피성을 전제하지 않으면 실익 있는 논의를 할 수 없다.

정치의 갈등 조정 과정은 ‘정치행위’ 자체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16일 여야와 전문가들에 따르면 정치는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관계 설정(정치)부터 자원 배분의 문제(경제), 의사결정 등 집행 과정(행정), 지도자의 리더십(인문) 등 모든 ‘학’의 총체다. 때때로 치열한 논쟁을 통해서 사회 전반이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최순실 게이트’ 사태로 한반도 전역이 쑥대밭으로 전락했지만, 이 과정을 통해 국가시스템 재건부터 제7공화국 개헌,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등을 골자로 하는 진보화를 꾀할 수도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숱한 갈등이 여의도를 휩쓸었으나, 이는 ‘민주주의 3.0’을 향한 체제 마련으로 이어졌다. 대표적인 게 지난 4·13 국회의원 총선거(총선)에서 나타난 여소야대(與小野大), 3당 체제다.

◆갈등 기폭제로 전락한 정치권

미국의 정당 연구가 E.E. 샤츠 슈나이더는 정치가 갈등을 공적영역으로 전환하는 기능을 하며, 정당이 이를 한다고 했다. 문제는 정치권이 이 갈등을 얼마나 현명하게 관리하느냐다. 슈나이더는 그래서 선택과 치환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하지만 한국 정치를 돌아보면, 갈등을 오히려 ‘조장’하거나 ‘증폭’시켜왔다. 총·대선 등 집권을 위한 권력다툼에 그쳤다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당장 올해 6월, ‘협치’를 내세우며 첫발을 뗀 20대 국회가 개원 두 달여 만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놓고 격화된 것을 떠올릴 수 있다. 각각 새롭게 구성된 지도부를 필두로 새누리당은 사드 배치 찬성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반대를 각각 당론으로 내세우며 날을 세웠다. 지역 표심과 대선을 의식한 첨예한 싸움이 이어졌다.

정기국회에 들어선 이후에는 추가경정예산과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임명 등을 놓고 여야 대립이 격화됐다. 사상 초유의 여당 대표 단식투쟁, 야당 단독 국정감사가 이어지면서 '협치'의 의미는 무색해졌다. 특히 이 과정에서 ‘최순실 사태’가 드러나기 시작한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이 국감장에서 거론됐지만 야당은 공세, 여당은 방어 수준에 그쳤다.

세월호 특별법 역시 지난 2014년 당시 여야 모두 조사에는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수사권 부여, 피해자 의사상자 지정 등에서 엇갈리며 지루한 협상을 했다. 올해에도 특조위가 활동을 연장해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에, 여당은 ‘끝난 문제’라며 선을 그었다.

이 밖에도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던 기초연금법과 공적연금 강화 차원에서 논의된 공무원연금개혁도 여야 공방만 계속하다 끝내 빈손으로 마무리됐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명박(MB) 정부는 2009년 ‘세종시 수정안‘으로 정치적 승부수를 띄워 정치권에서 논란을 낳았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판도라 상자‘를 열었다는 얘기도 나왔다. 당초 ‘행정중심복합도시‘를 건설하려던 원안을 뒤집고, 이전 예정이던 정부부처는 최소화하는 한편 기초과학 연구기관 및 기업을 유치해 경제·과학도시를 세우자는 안을 낸 것이다.

민주당을 비롯해 당시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내 친박(친박근혜) 세력을 중심으로 극한 반대가 나오며 갈등이 정점에 달했다. 2010년 여당은 6·2 지방선거에서 참패했고, 수정안은 그해 말 표결에서 부결됐다.

앞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끌었던 참여정부에서는 ‘종합부동산세(종부세)‘가 파장을 불러왔다. 부동산 과다 보유자에 대한 과세 강화와 투기 억제가 주요 골자였다.

서울 강남이 텃밭으로 불리는 당시 한나라당은 야당으로서 ‘포퓰리즘‘, ‘세금 폭탄‘ 등의 프레임을 내걸고 강경하게 반대했다. 반면 열린우리당(민주당의 전신)은 종부세법 국회 통과를 당론으로 내세우며 맞섰다. 그러나 종부세는 MB정부 첫 해인 2008년 말, 헌법재판소로부터 세대별 합산과세에 대해 위헌 판결을 받으며 세제 기준이 크게 완화됐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린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인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사진=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극단적 파당 정치에 갈등 되레 증폭

갈등은 사회 통합의 장애물이기도 하지만 합리적인 의사 결정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갈등을 부정적으로만 보고 사회적 갈등이 민주주의 위기를 불러온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이는 갈등을 조정하는 생산적인 정치가 작동하지 않은 탓이 크다. 사회적 갈등이 정치권을 거치며 더욱 확대·증폭되는 현상이 만연해 있다는 얘기다.

‘역사의 종언‘으로 유명한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는 ‘거부권 정치(비토크라시·Vetocracy)‘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거부권 정치란 여야가 대화와 타협보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아 사회 혼란을 야기하는 것을 뜻한다. 한국 정치는 20대 총선 결과로 다당제 모양새를 갖췄지만 양당 기득권 정치 구조와 실질적인 차이점을 찾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보수든 진보든 강경파가 주도하게 되면서 중간지대가 없어 대화와 타협의 여지가 없고 상대 정파의 주장이나 정책에 대해 반대를 위한 반대를 계속하게 된다”며 “(중간지대가 없다 보니) 국회에서 갈등을 생산적 정책으로 만들어낼 정치적 능력이 없다”고 진단했다.

채 교수는 이어 “민심에 귀 기울이기보다 공천권을 가진 계파 눈치 보기와 줄서기가 만연하다 보니 강경파가 득세할 수밖에 없는 메커니즘”이라며 “국회는 의원들의 자율적 의사결정의 공간이어야 하고 이에 따라 교차투표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이 갈등을 관리할 도구인 법과 제도를 만드는 데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밀양 송전탑과 제주 강정마을 사건, 영남권 신공항 건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등에서 보듯 국론 분열과 갈등을 최소화하고 갈등을 관리·조정할 법과 제도는 미비한 게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1일 ‘공공기관의 갈등 예방 및 해결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정부가 국책사업을 추진하기 전 충분히 주민 설명회를 개최하고 ‘갈등영향분석‘을 실시하도록 하는 등 민주적인 절차를 마련한 법이다.비슷한 취지의 법이 17대 국회부터 발의됐지만 통과되지 못하고 폐기돼 20대 국회 통과도 쉽지는 않아 보인다. 

◆의원내각제 등 새로운 협치 모델 필요

대다수 전문가들은 갈등을 조정하고 이익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 본연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협치’라는 수단이 필수 요소라는 데 동의했다. 이를 위해 주요 정치 선진국들이 채택한 정치 제도인 의원내각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게 중론이었다.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않으면 내각을 구성하기 힘든 의원내각제의 특성상, 협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요소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협치, 즉 거버넌스는 원래 시장과 기업, 정부, 시민사회가 각 영역에서 협조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좁은 의미에서 정치에만 한정했을 때, 우리나라는 기형적인 대통령제가 협치의 방해 요소”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대통령제는 본디 독재의 산물로 미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선진국들이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면서 “반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중남미 국가들은 대부분이 대통령제를 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지지율에 따라 그때그때 총리를 교체하고 의회까지 가능한 내각제는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을 막을 수 있다”며 “그 과정에서 군소정당이 연합하는 형태의 협치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시사평론가인 이종훈 박사도 “의원내각제가 통상 대통령제에 비해 협치를 하기 유리한 환경”이라며 “권력에 대한 상시감시 기능면에서도 내각제가 더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부분 내각제를 채택한 유럽의 경우 총선에서 압도적 다수당이 탄생하지 않는 이상 소수당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라며 “유럽이 태생적으로 협동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 2공화국 시절 내각제 운용 실패로 부정적인 인식이 있고 국민들의 주권의식이 강해서 기형적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며 “진정한 협치를 위해선 권력 구조를 바꾸는 게 분명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협치의 운영이 비단 특정 정치구조를 떠나 정치문화 전반에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협치는 의원내각제뿐만 아니라 대통령제에서도 필요하다”며 “아무래도 의원내각제가 연정을 전제로 하다 보니 협치가 상대적으로 강조가 되는 부분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정 정치구조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