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태자당의 영수' 예쉬안닝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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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7-11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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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 중국에서 '태자당의 영수'라고 불리던 예쉬안닝(葉選寧) 전 인민해방군 총정치부 연락부장이 10일 사망했다. 향년 79세.

고인은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에서 숨졌으며, 장례식은 오는 14일 광저우의 한 장례식장에서 치러진다고 인민망이 11일 전했다.

고인은 중국 건국 원로이자 인민해방군의 영웅인 예젠잉(葉劍英) 전 공산당 부주석의 둘째 아들이다. 1938년 홍콩에서 태어난 그는 베이징이공대학의 전신인 베이징공업대학을 졸업했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기 2년 전인 1974년 공장에서 일하다 기계에 오른팔이 잘려 접합을 했으나 평생 불구로 살았다.

예젠잉이 1976년 문혁 4인방을 체포한 직후 예쉬안닝을 후야오방(胡耀邦·1915∼1989)에 파견해 이를 알렸다는 일화도 있다. 1978년 부총리를 지낸 캉스언(康世恩)의 비서로 공직을 시작했다. 이어 중국국제우호연락회 부회장을 거쳐 46세 때인 1984년 인민해방군에 뒤늦게 투신했다. 10대 원수 가운데 1명인 아버지 예젠잉의 후광으로 4년만에 별을 달고 1997년 소장으로 퇴역했다.

예쉬안닝은 1990~97년 인민해방군 총정치부 연락부장으로 있으며 3000명의 태자당 인사들을 해외로 유학 보내 양성했다. 태자당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관리해온 탓에 '태자당의 영수'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예편 후에도 군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했다. 같은 태자당인 시진핑이 총서기 겸 주석이 된 다음에 자신이 관리하던 태자당 명단을 시진핑에게 넘겨 친위세력으로 관리케 했다는 후문이다. 또한 시 주석이 군부를 장악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한때 군부 개혁에 그가 깊숙하게 간여돼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천윈(陳雲)의 딸 천웨이리(陳偉力)와 덩샤오핑(鄧小平)의 아들 덩푸팡(鄧樸方)은 예쉬안닝이 혁명 원로 2세대인 '훙얼다이'(紅二代)의 정신적인 지주라고 평가했다.

가족으로는 연예계에서 활약 중인 딸 예징쯔(葉靜子·40)가 있고, 정협(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을 지낸 예쉬안핑(葉選平·92)이 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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