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김용직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 "박물관은 역사·문화를 매개로 공동체가 소통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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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7-0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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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직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은 "이 시대 박물관은 단순히 과거 역사를 재현해서 보여주는 곳이 아니다"며 "역사와 문화를 매개로 공동체가 소통하는 곳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궁진웅 기자 timeid@]


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종로구 세종대로 198. 서울 한복판 광화문에서 정부서울청사 다음으로 가장 가까운 노른자위 땅, 이곳에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보여주는 박물관이 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지난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를 통해 '현대사박물관' 건립을 공포한 지 4년 뒤인 2012년 12월 문을 열었다. 고난과 역경을 딛고 발전한 우리나라의 행보를 기록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통합을 이뤄 국가 미래발전의 원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이 박물관의 존재 목적이자 이유라 할 수 있다. 

기존 6개 과, 4개 상설전시실로 운영되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지난해 학예연구실을 신설해 연구 기능을 총괄할 수 있게 했고, 3층에 기획전시실을 별도로 만들어 더 다양한 특별전시를 선보일 수 있게 됐다. 

지난 1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2대 관장으로 취임한 김용직(57) 관장은 "우리 박물관은 '도전과 성취'에 초점을 두고 한국의 발전상과 관련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광범위한 분야의 자료를 망라하고 있다"며 "특히 숨은 주인공인 '국민'의 입장에서 역사의 주요 사건을 기록하고 한국의 현재와 미래를 담아내려 한다"고 말했다. 

◆ '그때 그 시절' 추억 되살려주는 박물관 

평생을 정치외교 분야 학자·교수로 지내온 그가 민감한 역사적 사건들을 다룰 수밖에 없는 기관의 수장 자리에 앉은 기분은 어떨까. 김 관장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박물관 중의 한 곳을 맡게 돼 한편으론 영광스럽고 다른 한편으론 책임감을 느낀다"고 운을 뗐다. 글자 그대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기념하는 일들을 많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란다. 그는 "정확한 역사를 발굴하고, 그에 얽힌 기억들을 국민들과 나눌 수 있는 현대적인 박물관을 만들 생각이다"며 "내국인은 물론이고 외국인들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는 전시를 이어나가, 21세기에 주목받는 '문화국가'로 성장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역사박물관이 자리잡은 광화문 삼거리는 1년 365일 관광객으로 붐비는 곳이다. 김 관장은 "광화문을 찾는 이들이 우리 박물관을 '대한민국 근현대사'라는 어려운 주제를 다루는 재미없는 박물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와보면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며 즐겁게 관람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박물관 8층 옥상정원은 놓치지 말아야 할 장소"라며 "광화문과 경복궁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개방된 유일한 곳"이라고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취임 후 반년이 지났다. 외부에서 바라보던 박물관과 관장으로서 들여다본 박물관은 차이가 있을 터다. 김 관장은 "박물관 개관 초기부터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어 자주 여기를 찾았다"며 "불과 3년밖에 되지 않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많은 일들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고 말했다. 아직 소장품 수량도 부족하고 기존 사무실 공간을 리모델링해서 개관한 박물관이다 보니 전시공간의 제약도 있지만, 여느 박물관 못지않게 전시·교육·연구 기능이 잘 수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박물관장으로서 균형있는 역사해석을 위한 틀을 만들 수 있도록 방향을 설정하고, 박물관의 중장기 발전을 위해 여러 사람과 머리를 맞대는 것이 내 역할이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현대사 전시가 지나치게 교육·훈육적이면 재미와 감동은 언감생심, 되레 따분함을 주기 십상이다. 외국인 관람객들도 점차 늘어나는 이때, 박물관도 결국은 '콘텐츠' 경쟁일 수밖에 없다. 김 관장은 "역동적이고 친화적인 박물관을 만들기 위해 연구·전시·교육·홍보·자료·운영 부서간 협력을 강화하고, 전시 관련 오디오 가이드를 개발·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 박물관이 어디에 있는지, 이 건물이 박물관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아직 많은 게 사실이다"며 "건물 외부에 조형 상징물을 두기 위해 각계각층의 의견을 듣고 자문을 거치고 있다"고 귀띔했다. 

◆ "광화문 일대는 한국의 중심지…종합적으로 복원·조성돼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함께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개최했던 '선거, 민주주의를 키우다'전은 시쳇말로 '대박'난 전시였다. 4·13총선과 맞물려 관심을 끌기도 했지만, 1948년 5·10총선거(제헌국회의원 선거)부터 3·15부정선거, 4·19혁명, 5·16군사정변, 유신체제, 6월 항쟁 그리고 1997년 평화적 정권 교체까지의 숨가빴던 선거 역사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전시의 성공에 힘입어 일각에서는 '선거박물관'의 건립 필요성까지 제기하고 있다. 김 관장은 "선거는 민주주의에서 주기적으로 치러지는 일종의 축제이기 때문에 이를 자주 기념하고 전시할 필요가 있다"며 "내년 개최를 목표로 준비중인 '한국 민주화 30주년 특별전'에서도 선거를 조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개인적으로 국민의 힘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성취한 1987년 대통령선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이자 정치외교학자로서 국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의 투표 행위가 국가 발전에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지난 5월 초 "광화문 일대에 '육조거리'를 복원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물론 100% 재현은 어렵겠지만, 이 사업이 진행되면 역사박물관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김 관장은 "좋은 취지"라고 수긍하며 "다만 광화문 일대는 조선왕조뿐만이 아니라 근대 이후 한국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종합적인 검토로 잘 복원되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역사박물관은 과거 경제기획원, 문화공보부 등이 있던 자리에 터를 잡고 있다. 

 

김용직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 [남궁진웅 기자 timeid@]


◆ '제주4·3사건' 표현 논란 통감…"화해·관용·소통의 전시 선보일 것"  

역사박물관이 지난해 11월 배포한 만화 ‘6·25전쟁’이 제주 4·3사건을 '제주 남로당의 무장 반란'이라고 규정한 것을 두고 지난 4월 논란이 뜨거웠다. 전임 관장 시절 기획된 만화였지만, 김 관장은 여론의 뭇매를 피할 수 없었다. 그는 "역사에 대한 접근을 쉽게 해주는 게 '만화'라고 해도, 공적인 기관에서 더 신중한 표현을 쓰지 못한 점은 통감한다"며 "제주 주민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는데, 현재 4·3사건에 대한 오해를 불식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고 밝혔다. 

신임 관장으로서 호된 신고식을 거친 그는 더 옹골차졌다. 1966년의 대한민국을 조명하는 전시를 비롯해 미국평화봉사단을 다루는 전시, 개항 140주년 특별전 등을 착착 준비하며 역사박물관의 진정한 가치를 국민들이 알아봐주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는 상설전시 유물 수를 늘리고 아카이브 센터를 구축해 박물관의 핵심 콘텐츠 기반체계를 대폭 정비할 계획도 갖고 있다. 

"이런 사업들을 추진하는 데 핵심 키워드는 화해와 관용, 그리고 소통입니다. 박물관이 할 일은 국민들에게 역사공동체의 정체성이 담긴 콘텐츠를 제공하고, 교육을 통해 사회통합과 세대갈등을 해소하는 것이지요."  관람객들이 다시 찾아오게끔 하는 전시, 기억해야만 하는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을 조명하는 전시를 꿈꾼다는 '박물관장 김용직'의 순수한 노림수는 여기에 있었다.

◆ "문화융성은 말처럼 단순하지 않아…섣부른 기대는 금물" 

김 관장은 20년간 성신여대에서 교편을 잡았다. 강산이 두 번 변하는동안 '선생님'으로서 그가 만난 학생들도 수천 명이다. 그는 2016년을 사는 청년들에게 꼭 해주고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가 워낙 압축고도성장을 하다 보니 외형적으로는 눈부신 발전을 이뤘지만, 그 내면에는 많은 이들의 희생과 부담이 따랐습니다. 이 부분은 갈수록 심해지는 측면도 있고요. 하지만 현실이 암울할 때 그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고민을 해야 되고, 고민이 어떻게 현실에서 발현되고 실행으로 옮겨졌는지를 다른 사회·역사에서 살펴봐야 합니다."

김 관장 자신도 젊은 시절 학업을 이어가기 힘들 정도로 힘들었지만, 미래를 길게 내다보고 꾸준히 한 길을 걸은 결과 주변의 도움 등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는 "과거 이야기를 들먹이면 '꼰대'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지만, 더 넓은 시야로 세계를 바라보길 바란다"고 힘주어 말했다. 

고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는 인터뷰 도중 미리 준비해 둔 책 한 권을 집어들었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더스타일)다. 그는 "지금은 절판된 것으로 알지만, 70년대 초반에 나왔던 '도설'로 된 역사의 연구(일지사)는 20세기 보석같은 책"이라며 "전 세계 30개 이상의 문명을 비교하며 오늘날, 그리고 미래까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이 책은 빠르게 변화하는 우리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추천했다. 

김 관장은 '문화융성'에 대한 본인만의 생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문화융성은 말처럼 단순한 것이 아니다"며 "'문화'는 많은 이들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장기적으로 형성되는 것이고, '융성'은 그런 바탕 위에 때가 되면 발현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현 정부에서 이를 추진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겠지만 너무 빨리 결과를 기대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었다.

그는 또 "감동은 강요되는 게 아니라 자발적인 것인데, 박물관은 문화적 가치가 있는 다양한 자료로 국민들이 감동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가 평소 박물관을 '문화를 생산하는 곳'이라고 못박는 이유다. 

"이 시대 박물관은 단순히 과거 역사를 재현해서 보여주는 곳이 아닙니다. 박물관은 역사와 문화를 매개로 공동체가 소통하는 곳입니다. 우리 사회가 더욱 성숙한 역사인식으로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이 소통의 힘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국보와 보물이 즐비한 박물관들이 있음에도 '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필요한지'에 대한 답을 그는 에둘러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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