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창업스토리](26) 옷에 생명을 불어넣다...자연주의 감성 패션 ― RENLI SU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입력 2016-03-17 07: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20대 앳된 소녀 쑤런리가 만든 내추럴·오가닉 패션 브랜드

런리쑤가 지나온길[그래픽=임이슬 기자 90606a@]


아주경제 배인선 기자 =“비단옷은 어찌나 하늘거리는지, 가벼운 치맛자락이 바람 따라 너울거리네. 떨어지는 꽃과 흐르는 물은 겨울에 눈이 오든 여름에 비가 오든 영원히 함께 한다.(羅衣何飄搖, 輕裾隨風還. 流水落花冬雪夏雨,長相伴)"

중국 동한 말기 조조의 아들 조식이 지은 '미녀편(美女篇)' 에 나오는 구절을 따서 만든 이 문구를 옷 라벨에 새기는 한 업체가 있다. 내추럴·오가닉 패션 브랜드 ‘런리쑤(RENLI SU)’다. 꾸미지 않은 듯 자연스러우면서도 우아하며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겠다는 런리쑤의 패션 철학이 이 문구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미완성인 듯 듬성듬성한 바느질, 끝단을 풀어헤친 셔츠, 빛 바랜 듯한 원단. 이것이 바로 런리쑤가 추구하는 패션이다.

런리쑤를 이끄는 디자이너는 아직 30세도 안된 20대 앳된 소녀 쑤런리(蘇仁莉 29)다.  2013년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런리쑤를 만들었다. 그는 알렉산더 왕, 제이슨 우, 필립 림 등 이미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중국계 디자이너 선배의 뒤를 이어 글로벌 패션 무대에서 점차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어렸을 적부터 그림 그리길 좋아했던 그는 사실 처음부터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중국 유일의 미술종합대학인 중앙미술학원에 입학해 디자인학과를 전공으로 선택한 후 자신의 색깔이 담긴 옷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내가 그린 그림을 걸고 싶다는 꿈은 어느새 파리 패션쇼 런웨이를 누비는 옷을 만들겠다는 꿈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래서 졸업 후 곧바로 영국 런던패션스쿨에 입학했다. 이곳서 쑤는 자기만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디자인 세계를 개척했다.

자연주의에 수공예 감성을 담는 것은 런리쑤의 트레이드 마크다.

쑤는 옷을 만들 때 옷감을 고르는 데 신경을 가장 많이 쓴다. 그는 옷감이야 말로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담을 매개체라고 말한다. 

여행을 좋아하는 그는 세계 곳곳을 둘러보며 접한 천연 옷감을 사용해 옷을 만들었다. 원단 1kg을 만드는 데 한 사람이 물레를 돌려 실을 만들고 손으로 엮어 짜 15일을 작업한다는 인도의 카디 원단, 아일랜드 산간고지의 양털과 린넨을 혼방한 섬유, 티베트 야크 울도 직접 공수해 원단으로 사용해봤다.

옷감을 구기고 씻고 문질러 빚 바래게 만들며 더 ‘날 것’처럼 만들기도 했다. 철저한 수공예 작업으로 기계로는 도저히 만들어 낼 수 없는 자연스러운 효과를 내며 자신 만의 디자인을 완성했다.

그는 디자이너를 옷에 생명을 불어넣는 사람이라고 묘사한다. 쑤는 자신이 만든 옷에 고객의 추억이 담기길 바란다. 천연 원단과 자연 염색을 그토록 고수하는 이유도 고객이 한번 사서 오래 입으며 추억을 켜켜이 쌓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런리쑤만의 철학은 패션계 유명인사 수지 멘키스(Suzy Menkes) 보그 인터내셔널 에디터의 눈에도 띄었다. 그는 쑤런리를 ‘디자인 창작과정에 자신만의 세계에 대한 견해가 담겨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쑤는 자신의 디자인 철학에 영감을 준 사람으로 기하학적 회화로 유명한 라틴 미술계 거장 미라 쉔델, 아방가르드패션 브랜드 '꼼데가르송'을 만든 일본계 디자이너 레이 가와쿠보, 미니멀리즘 무용의 대명사인 벨기에 안무가 안나 테레나 3명을 꼽는다. 모두 각자 몸 담은 분야에서 자신 만의 색깔을 지닌 예술가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사진=런리쑤 홈페이지]


런리쑤는 아직 변변한 매장 하나 없을 정도로 걸음마 단계다. 런리쑤닷컴이라는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을 뿐이다. 런던이나 베이징·상하이의 편집매장에서나 간혹 찾아볼 수 있다. 스카프 하나에 165파운드, 우리나라 돈으로 28만원 정도로 가격도 웬만한 명품에 못지 않다. 하지만 우연히 그의 옷을 접한 사람들은 “어디 가면 런리쑤 옷을 살 수 있냐”고 묻는다.

쑤런리는 지난 해 10월 이탈리아 명품 온라인쇼핑몰 육스닷컴의 'Y.E.S 에코패션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했다. 이어 12월엔 포브스의 ‘세계가 주목하는 중국 패션디자이너 12명’에도 이름을 올렸다. 패스트 패션이 즐비한 오늘 날 인간적이고 자연친화적인 슬로우 패션으로 중국 패션사의 한 장을 쓰고있는 쑤런리의 앞날이 기대되는 이유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아주NM&C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