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정몽구·신격호·이건희·구본무의 꿈과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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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2-08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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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김창익 기자 =현대차그룹이 최근 서울시에 제출한 삼성동 한국전력 본사부지 개발 계획엔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의 층고와 층수가 각각 571m, 115층으로 돼 있다. 신년사에서 정몽구 회장이 언급했던 105층보다 10개 층이 높아졌다. 부지의 40%를 기부채납하는 대가로 받은 용적률 800%를 최대한 채우다보니 높이가 결과적으로 상향조정된 것으로 보여진다.

일각에서는 국내 최고(崔高) 자리를 둘러쌓고 벌어진 재벌 기업간 자존심 경쟁의 결과로 풀이하는 시각도 있다. 신격호 회장의 야심작인 롯데월드타워의 층고는 123층으로 GBC보다 8층이 높지만 층고는 555m로 16m가 낮다. GBC가 만약 정 회장의 언급대로 105층으로 지어졌다면 롯데월드타워보다 10m 이상 낮아졌을 가능성이 크다.

기왕에 초고층 빌딩을 질 바에는 층고를 국내 최고로 하는 게 여러모로 활용가치가 있다. 국내 최고(崔高)란 수식어로는 일단 국내외에 마케팅을 하는데 유리하다. 입주기업은 물론 관광객들 입장에서도 같은 값이면 높은 빌딩을 찾아보고 싶을 것이다. 한 끝발의 차이로 두 번째로 높은 빌딩을 건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경우 임대료 수입보다 전망대 입장료 수입이 더 크다고 하니, 랜드마크의 상징성은 실제로도 상당히 큰 수입원이다.

최고 빌딩 자리를 둘러싼 재벌간의 자존심 경쟁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정몽구 회장이나 신격호 회장보다 선배다.

2007년 용산 국제업무지구 사업자 선정 당시 삼성그룹은 삼성물산-국민은행 컨소시엄쪽에, LG그룹은 프라임-현대건설 컨소시엄쪽에 각각 서서 사업권을 놓고 경쟁을 벌였다. 국내 굴지의 2개 그룹이 당시 사업자 선정 경쟁에 뛰어든 것은 용산 국제업무지구에 들어설 랜드마크타워를 차지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2007년 사업자 선정 당시만해도 150층 이상으로 계획된 랜드마크 빌딩의 주인이 될 경우 삼성이나 LG그룹 본사 빌딩은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 되는 것이었다. 이후 8조원을 써낸 삼성물산 컨소시엄이 사업자로 결정되면서 결국 아시아 최고 빌딩은 이건희 회장의 소유가 될 뻔 했으나 글로벌 금융위기 후 자금난과 사업성 등의 이유로 사업이 무산되면서 이건희 회장의 꿈은 일단 물거품이 됐다.

사업자 선정후 삼성물산 컨소시엄의 최종 계획엔 랜드마크 빌딩 층수가 111층으로 수정됐다. 하지만 당시엔 롯데월드타워가 계획되기 전이어서 국내에서 계획된 최고 빌딩이었다. 사업성을 고려해 층수를 대폭 낮추면서도 국내 최고 빌딩이란 자존심은 남기고 싶었던 것일까.

100층 이상 초고층 빌딩은 랜드마크로서의 가치를 제외하면 사실 비합리적인 건축물이다. 임대료가 높아 일부 글로벌 기업들을 제외하면 입주기업을 찾기 힘들고, 건축 자재나 관리비도 층고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랜드마크 타워는 오너의 강력한 의지가 없으면 세상의 빛을 보기 힘들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신격호 회장이 오랫동안 품어온 꿈이 아니었으면 123층 롯데월드타워는 여러 가지 규제에 묶여 착공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감정가 3조원짜리 땅을 10조원에 사들일 수 있는 정몽구 회장의 결단이 아니었으면 GBC의 청사진은 아직 현대차그룹의 책상 서랍속에서 꺼내지지조차 못했을 게 뻔하다.

초고층 빌딩은 안전성과 환경 훼손 교통난 유발 등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 나라의 소중한 자산임에는 틀림이 없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뉴욕에 가면 45달러의 거금을 주고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전망대를 들른다. 그들의 눈에 비춰진 맨해튼 스카이라인이 아름다운 것은 주변의 다른 마천루들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들이 그 순간 밟고선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때문이다. 한 건축주의 꿈과 자존심, 그리고 그 것을 현실로 이루어낸 불굴의 의지가 탄식을 자아낼 정도로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을 비로소 내려다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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