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허삼관'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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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1-20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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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허삼관' 스틸 [사진 제공=NEW]

아주경제 김은하 기자 = “또 부성애야?”라고 얼굴을 찌푸릴 수도 있겠다. 2013년 천만 영화의 테이프를 끊은 ‘7번 방의 선물’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지금 스크린은 아버지 천하다. “이렇게 모진 세상 우리 자식이 아니라 내가 살아 다행”이라며 혹독한 현대사를 희생으로 살아낸 우리네의 아버지(‘국제시장’)부터 제1차 세계대전 갈리폴리 전투 이후 실종된 세 아들을 찾기 위해 호주에서 터키까지 1만 4000km 횡단하는 금발의 아버지까지(‘워터 디바이너’)…날 때부터 아버지였다는 듯 헌신과 부정으로 무장한 채 온갖 고뇌를 견디는 아버지 속에서 유독 유치하고 뻔뻔한 아버지가 있으니…바로 ‘허삼관’(제작 ㈜두타연·㈜판타지오픽쳐스 , 감독 하정우)이다.

피 한두번은 팔아봐야 책임 있는 가장이라고 말할 수 있던 시절 ‘허삼관’은 마을 최고 미녀 허옥란(하지원)을 부인으로 얻기 위해 매혈을 다짐한다. 배가 아프고 이뿌리가 시큰거릴 때까지 물을 마시고 오줌보를 움켜쥐며 피를 뽑아 옥란과 결혼에 성공해 아들 셋을 낳아 오순도순 살고 있는데 마을에 “허삼관네 첫째 일락이가 옥란의 옛 약혼녀 하소용과 판박이”라는 소문이 돈다. “책임감 있고 듬직한 게 나를 똑 닮았다”며 가장 예뻐한 큰아들이 남의 자식이라니…. ‘허삼관’은 펄쩍 뛰며 호기롭게 혈액형 분석을 했는데 이게 웬걸 “허삼관은 O형, 허옥란은 B형, 하소용은 A형, 허일락은 AB형”이란다.

‘허삼관’의 유치한 만행은 이때부터 시작이다. “항아리 좀 옮겨줘요”라는 허옥란의 부탁에도 발을 꼬고 누워 꼼짝도 않는 것은 기본이고 “아부지 (친아들이 아니라) 죄송해요”라고 우는 일락에게 “내가 왜 네 아버지냐? 엄마 없을 때에는 아저씨라고 불러라”하면서 으름장을 놓고, 만두 외식에는 “내가 피를 팔아 너에게 만두를 사주면 내 피를 하소용에게 주는 꼴”이라며 일락을 빼놓고 가기도 한다.

“네 친아버지한테 가서 만두 사달라고 해”라며 내쫓아도 “내 아부지는 허삼관 뿐”이라는 일락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일락이가 하소용과 같은 병에 걸려 죽을 위기에 놓인다.
 

영화 '허삼관' 스틸 [사진 제공=NEW]

일락의 병원비를 위해 피를 짜내고 짜내다 쓰러진 허삼관이 남의 피를 수혈받고 일어나 “돈을 낼 수 없으니 남의 피는 다시 빼가라”고 윽박지르면서, 혈색이 안 좋아 피를 뽑아 주지 않을까 봐 바늘 자국과 멍이 가득한 팔로 물구나무를 서 얼굴로 피를 몰면서, 산송장의 모습으로 “얼른 나아서 만두 먹으러 가자”며 일락을 끌어안으며 ‘허삼관’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데뷔작 ‘롤러코스터’로 단박에 ‘하정우표 코미디’를 탄생시킨 하정우의 연출력은 빛난다. ‘돈을 벌기 위해 피를 판다’는 어둡고 무거운 소재 매혈을 투박한 유머와 부정으로 따뜻하게 포장해내 거북스럽지 않다. 연출과 병행하면서도 연기력은 흐트러짐이 없다. 작렬하는 뒤끝부터 절절한 부정까지 설득력 있게 연기하며 극의 중심을 잡는다. 하지원이 연기하는 푼수데기 아줌마도 매력적이다. 손가락 마디마디까지 통통한 윤은혜의 육덕진 분장과 일락을 연기한 아역배우 남다름의 남다른 연기, 담배 한갑과 술 한병에 딸을 넘겨주는 아버지 이경영, 교태로운 콧소리를 연신 내뿜는 김영애에까지 조연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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