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촨성' 살아있는 지진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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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05-10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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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쓰촨5.12대지진 3주년 르포 (下)> 아물어가는 상흔과 남은 과제 <하>

중국 쓰촨성 베이촨현 지진 재해 기념비 앞에서 관광객이 지진 피해자를 애도하고 있다.


[청두 베이촨 원촨 = 배인선 기자] “2008년 5월 12일 발생한 지진으로 진앙지인 원촨(汶川)현을 중심으로 반경 380km 지역이 폭삭 내려 앉았다. 당시 지진의 충격은 3000km 멀리의 상하이에 까지 전달됐을 정도다”

원촨 현지에서 지난달 만난 청두(成都) 중국 청년 여행사 안내원 신학춘 씨는 2008년 당시 쓰촨(四川)성 지진 피해를 이렇게 묘사했다. 지진 전후 위성 사진을 비교해 보면 남한 면적만한 땅 덩어리가 지진의 직격탄으로 반폐허 상태로 변했다는 것.

당시 발생한 지진 규모는 무려 8.0으로 이로 인해 쓰촨성 주민 8만6000여명이 사망 또는 실종하고 25만 명에 가까운 주민이 부상을 당했다.

또한 쓰촨성 전체가 무려 8451억 위안(한화 약 140조원)에 달하는 직접적인 경제손실을 입었다. 특히 지진 피해가 가장 심했던 원촨과 베이촨(北川)이 입은 경제 손실 규모는 각각 643억 위안, 670억 위안에 달했다.

쓰촨성 정부는 이러한 재난을 극복하고 3년 만에 쓰촨성을 신천지로 만들어내는‘기적’을 일궈냈다. 하지만 이곳에는 아직 아물지 않는 재해의 상처가 지역주민들이 극복해야할 새로운 과제로 남아있었다.

△ 살아있는 지진 박물관

쓰촨성 원촨현 잉슈(映秀)진에 위치한 쉬안커우 중고등학교. 지진 재해로 학교 건물이 무너져 내려앉았다.


지난 4월 19일 찾은 원촨현 잉슈(映秀)진에 위치한 쉬안커우(漩口) 중고등학교. 이 곳은 2008년 발생한 대지진으로 폐허가 돼 있었다. 건물 외관은 모두 폭격을 맞은 듯 벽은 균열되고 깨진 시멘트벽 사이로 철재가 튀어 나와 흉물스러운 몰골을 하고 있었다. 일부 건물은 아예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폭삭 무너져 내려 앉았다.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는 커다란 시계가 14시 28분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어 당시 재해 발생 시각을 보여주고 있었다.

3년 전 이곳에서는 학생 43명과 교사 8명, 직원 2명이 지진 충격으로 무너진 건물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해 목숨을 잃었다. 또한 학생 27명과 교사 2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이 중 3명은 부상으로 팔을 절단해야만 했다.

쓰촨성 지진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베이촨현 취산(曲山)진 일대. 이곳은 현재 지진 발생 현장을 그대로 보존해 살아있는 '지진박물관'으로 불린다.


다음 날 찾은 베이촨현 취산(曲山)진 일대는 더욱더 처참한 몰골이었다. 마을 전체가 지진으로 온통 쑥대밭으로 변했다. 지난 2008년 발생한 대지진으로 이곳에선 주민 2만 명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됐다.

중국 정부는 이곳을 쓰촨성의 ‘살아있는 지진 박물관’으로 보호해 유적지로 보호하는 한편 이곳에 살던 재해 지역 주민들을 여기서 23km 떨어진 곳에 새로운 마을을 지어 이주토록 장려했다고 안내원은 전했다.

이곳 마을 대다수 아파트와 상가는 무너져 내려앉아 진흙과 시멘트 콘크리트 속에 묻혀 있었다. 창고에 있던 트럭과 승용차는 모두 건물에 눌려 찌그러져 있었다.

베이촨 중고등학교 건물은 아예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 나 있었다. 옆으로 쓰러진 농구 골대, 옆으로 쏠린 깃대 위에 나부끼는 오성 홍기, 곳곳에 보이는 책·걸상 만이 이 곳이 과거 학교였다는 사실을 알려줄 뿐이었다.

이곳 베이촨 중고등학교에서만 총 1000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3년 전 이곳에서 수업을 받던 2900명의 학생 중 겨우 60% 정도 만이 목숨을 건진 것이다.

한 때 맑은 물이 흘렀다는 강은 이제는 산사태로 쏟아져 내려온 진흙으로 이미 강줄기가 막혀 ‘언색호’로 변해 있었다.

쓰촨 베이촨현 지진 재해 마을. 무너진 건물 잔해 벽에는 “그녀가 방해 받지 않고 편안히 잠들 수 있게 해주세요”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움푹 파인 도로를 걷는 도중 한 무너진 건물 앞에서 안내원이 발걸음을 멈췄다. 건물 잔해 벽에는 “그녀가 방해 받지 않고 편안히 잠들 수 있게 해주세요”라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아마 가족이나 친구가 무너진 건물 더미에 갇혀서 빠져 나오지 못했나 봅니다. 그래서 이렇게라도 고인을 애도하고자 벽에 이러한 글씨를 적은 것이죠” 안내원이 숙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내원은 “관광객뿐만 아니라 실제로 이곳에서 가족이나 동료를 잃은 사람들이 종종 입장료 13위안을 내고 들어와 무너진 건물 앞에서 멍하니 서있다가 가곤 한다”고 말했다.

문득 얼마 전 중국 신문에서 지진 재해로 남편을 잃었다는 한 중국인 여성이 한 말이 떠올랐다.

“아직 남편의 시신도 찾지 못했다. 아직도 저 폐허 더미 속에 잠들어 있을 것 같아 떠날 수가 없다.”

3년 전 대지진으로 남편을 잃은 이 여성은 정부에서 지은 신 도시로 이주하지 않을 것이라며 남편이 묻혀있는 베이촨현 취산(曲山)진 근처 산비탈에 집을 짓고 살겠다고 말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은 거액의 보상금으로도, 새로운 집으로도, 새로운 일자리로도 쉽게 보상되지 않는 듯 했다.

△ 재해 후유증과 싸우는 사람들

실제로 지진 대참사 발생 이후 쓰촨성 재해 지역 주민들의 자살과 이혼이 늘어나는 등 재해 현장에는 그 후유증이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쓰촨 지진 발생과 그에 따른 충격으로 이곳 지역에 만성적 정신질환을 호소하고 있는 환자가 15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중국 사회과학원 통계에 따르면 베이촨현 간부 중 40%가 자연 재해로 인한 스트레스성 장애를 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진 발생 5개월 뒤인 지난 2008년 10월 베이촨현 농업 판공실 둥위페이(董玉飛) 주임이, 그리고 2009년 4월에는 베이촨현 당위원회 선전부 펑샹(馮翔) 부장이 아들을 잃은 슬픔을 견디다 못해 목을 매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펑샹 부장은 유서에서 지진으로 가족을 잃은 뒤 깊은 우울증을 앓았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둥위페이 주임도 유서를 통해 지진 재건작업과 생활 스트레스가 심해 견딜 수 없다고 전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이 뿐만이 아니라 민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0년 1~3분기 쓰촨성의 이혼 부부는 모두 10만2596 쌍으로 중국 각 성시 중 1위를 차지하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쓰촨성 사회과학원의 광웨이 연구원은 “지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숨지는 것을 지켜 보면서 정신적 충격 탓에 불화를 겪는 부부가 늘어나 고, 덩달아 이혼율도 증가한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쓰촨성의 한 관리는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 사망등 각종 재해 충격으로 적지않은 주민들이 공포와 우울증 등의 정신적 장애에 시달리고 있다"며 "다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주변의 관심과 강인한 정신력으로 재해 후유증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대지진 발생 3년이 지난 지금 원촨과 베이촨 등 쓰촨 일대는 성공적인 복구 재건 작업으로 마을 외관에서는 이미 신천지로 탈바꿈했다. 남은 과제는 이 지역 주민들이 하루빨리 대지진이 할퀴고 간 마음의 상흔을 치유하고 평화를 되찾는 것이다. 취재를 마치고 현장을 떠날때 문뜩 이곳 지역 주민들에게는 여전히 외부 사회의 많은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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