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헌재 소장 직무정지에 정국 격랑…대통령, 순방 중단 귀국

  • 투스크 정부, 경찰 투입해 헌재 소장 진입 차단

  • "법치주의 회복" vs "쿠데타"…사법개혁 갈등

 
30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헌법재판소 청사로 향하는 출입이 경찰에 의해 차단되자 시위대가 철제 출입문을 강제로 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30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헌법재판소 청사로 향하는 출입이 경찰에 의해 차단되자 시위대가 철제 출입문을 강제로 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폴란드에서 헌법재판소 주도권을 둘러싼 정부와 야권의 갈등이 정면충돌로 번졌다. 도날트 투스크 총리가 이끄는 친유럽 중도 정부의 사법개혁 과정에서 전임 정권이 선임한 헌재 소장의 직무가 정지되자 카롤 나브로츠키 대통령은 해외 순방을 중단하고 귀국했다.
 
로이터·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안나 코르빈-표트로프스카 폴란드 헌재 재판관은 30일(현지시간) 보그단 슈비에츠코프스키 헌재 소장과 부소장의 직무를 정지시키고 자신이 재판소 운영을 맡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헌재에 경찰을 대거 배치해 슈비에츠코프스키 소장의 건물 진입을 막았다.
 
슈비에츠코프스키 소장은 민족주의 우파 정당인 법과정의당(PiS)이 집권한 시기 의회에서 선출돼 임명됐다. 반면 코르빈-표트로프스카 재판관은 투스크 정부가 들어선 뒤인 지난 3월 현 의회에서 선출됐다.
 
소장과 부소장의 직무정지 소식에 아프리카를 순방 중이던 나브로츠키 대통령은 일정을 중단하고 급거 귀국했다. 헌재 앞에는 PiS 지지자들이 몰려들었고, 우파 정치인들은 정부가 재판소를 상대로 ‘쿠데타’를 벌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번 충돌은 2015년부터 이어진 헌재 구성과 정당성 논란의 연장선에 있다. 당시 PiS 정부가 이전 정부 시절 선출된 헌법재판관들을 대신할 새 재판관 임명을 추진하면서 분쟁이 시작됐다. 이후 PiS가 지명한 재판관들이 전체 15명 중 과반을 차지하면서 헌재의 독립성과 공정성이 훼손됐다는 비판이 국내외에서 제기됐다.
 
2023년 집권한 투스크 정부는 전임 정권이 훼손한 법치주의를 복원하겠다며 사법개혁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PiS의 지원을 받은 나브로츠키 대통령과 전임 정권에서 임명된 사법부 인사들이 맞서면서 갈등이 이어졌다.
 
폴란드 헌법재판관은 의회에서 선출된 뒤 대통령 앞에서 취임 선서를 한다. 나브로츠키 대통령은 올해 초 의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 6명 중 3명의 선서를 거부했고, 슈비에츠코프스키 소장도 현 의회에서 선출된 재판관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투스크 총리는 이번 조치가 법치주의 회복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엑스(X)에 “법치주의를 회복하는 건 우리의 의무”라며 “이 과정은 어렵고 때로는 고통스럽기까지 하며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 다른 방법은 없다”고 적었다.
 
라도스와프 시코르스키 외무장관도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외무장관 회의 도중 기자들과 만나 “헌재는 전 정부 하에서 정치화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조치는 정식으로 선출된 재판관 다수가 헌재를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야권은 정부가 경찰력을 동원해 사법부를 장악하려 한다며 반발했다.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PiS 대표는 엑스에 “이는 전 세계 어디서도 유례없는 일”이라며 “오늘부터 폴란드는 경찰국가로 변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PiS 집권기에 임명된 야쿠프 쿠모흐 주중 폴란드 대사는 항의의 뜻으로 사임한다고 밝혔고, 폴란드 대법원장도 성명을 내 소장 직무정지 결정과 경찰 조치를 비판했다.
 
헌재 공식 엑스 계정에는 “쿠데타”가 발생했다는 입장이 올라왔다. 해당 계정은 코르빈-표트로프스카 재판관이 대통령 앞에서 취임 선서를 하지 않았다며 임시 소장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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