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늘어나는 유럽의 병자 …한국은 안전지대인가?

  • 대내외 악재로 경제 악순환… 미래가 불안한 청년들의 분노 임계치 넘어

김상철 글로벌비지니스연구센터 원장
[김상철 글로벌비지니스연구센터 원장]
 
지구촌 곳곳에 병(病)든 국가들이 도미노처럼 번지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에 있어 자유론은 나라가 없을 정도다. 부모 세대보다 못사는 것이 보편화되면서 젊은 세대들의 분노가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 변화를 위해 정치지형을 바꿔보지만 어떤 정치도 난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더 깊은 수렁으로 몰아넣는다. 국가·기업·개인 간의 부(富)의 격차 혹은 불공평이 극으로 치달으면서 갈등이 증폭한다. 얄팍한 정치는 이 틈새를 파고들어 근원적인 개혁은 방치하고 임기응변과 포퓰리즘을 남발하면서 악순환을 거듭하며 국가를 계속 뒷걸음치게 한다. 미·중 격돌에서 비롯된 국가 이기주의의 확산은 세계를 단절시키고 글로벌 경제의 선순환을 차단한다. 더 나아진다는 희망보다 더 나빠질 것이라는 절망감이 압도적으로 높다.
 
최근 10년 동안 경제적으로 가장 위험한 지역이라고 평가되던 유럽에서 마침내 성난 군중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성장 동력이 무너지면서 벼랑 끝으로 몰린 민생 경제에 출구가 보이지 않아 극단적인 선택의 길로 들어섰다. 원인은 다양하다. 생활물가·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실질소득 정체가 근본적 이유다. 여기에 더해 주택난과 청년층의 미래 불안, 공공서비스의 질 저하와 재정 제약, 정부에 대한 불신과 정치적 위기 등 복합적 요인들이 임계치를 넘어선 결과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유럽 여러 나라의 시위가 하나의 조직이나 단일한 정치적 목표에 따라 동시에 움직이는 것은 아니나 그동안 쌓여온 불만이 비슷한 시기에 동시다발적으로 표출되는 현상으로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다.

외부적 요인도 크게 작용했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는 유럽의 에너지 비용을 크게 늘리면서 경제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중동 전쟁까지 겹쳐 두 개의 전쟁이 유럽의 에너지 불안을 최고조로 키웠다. 중국과의 경제 교류 확대가 한때는 유럽에 득이 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유럽 경제에 독(毒)이 되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중국 기업의 공세가 유럽의 산업 구조와 고용에 치명적인 요소로 작용, 경제의 근간을 크게 흔드는 중이다. 한편으로 미국과의 관계 악화로 경제·안보 지형이 위협을 받고 있기도 하다. 러시아 에너지·중국 수출시장·미국의 안보 등 유럽을 지탱하는 3대 버팀목이 무너지면서 성장 엔진이 꺼지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한층 높아지고 있는 것이 객관적인 사실이다.
 
유럽의 미래가 암울해지는 또 다른 큰 이유는 유럽 경제의 지주 역할을 하는 독일 경제의 붕괴다. 사실 유럽에서 병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독일이 미국이나 중국 등 경쟁자와의 경쟁에서 크게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19년 이후 실질 GDP에서 거의 제로 성장을 하고 있다. 중국과의 경쟁 심화, 미국의 관세, 높은 에너지·임금 비용, 노동력 부족, 투자 부진이 독일의 경쟁력 약화를 부채질해 왔다. 과거의 성공 경제모델에 안주하면서 급변하고 있는 세계 경제의 흐름에 충분히 적응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다. 급기야 독일 제조업의 상징인 자동차 산업이 심각한 구조조정에 직면하고 있다. 폭스바겐 그룹의 10만 명 감축을 필두로 BMW·포르쉐·벤츠 등도 조직 슬림화, 수익구조 조정 등 수술대에 올랐다.
 
민생 파탄에다 중국 기업 파상공세로 성장 엔진 극도로 고갈
 
유럽 경제의 더 큰 걱정은 과연 회생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해결해야 할 내부적인 문제도 첩첩산중이지만 중국 등 외부의 공세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도 중요한 이슈다. 물론 이번 유럽 전역의 시위 확산과 중국 기업의 공세가 직접적인 원인 제공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럽 산업의 일자리·임금·재정 기반을 약화할 수 있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심각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중국의 생산능력 확대와 본격적인 수출 경쟁 진입은 유럽 제조업의 가격·수익성 압박을 재촉하고 가계소득·지역경제에 대한 부담을 늘리면서 민생 경제 불만과 정치적 불신을 확대할 가능성이 짙다. 실제로 배터리·전기차 부문에서 유럽 내 중국 공장이 26개나 되어 관세 등 통상압박을 우회해 무관세로 만들고 있다.
 
유럽 민중의 시위 확산은 다른 나라에도 큰 짐으로 다가오고 있다. 성난 군중의 대부분이 젊은이들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점이 많다. 세계 최대 경제권인 향후 유럽의 경제 정책 변화와 더불어 결과적으로 글로벌 실물 혹은 금융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처방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 정책에 있어 보호주의 색채가 더 강화하고, 현지 조달과 유럽산 부품 사용을 우대하면 해외 공급업체의 유럽 시장 진입 조건이 바뀔 수도 있다. 이는 유럽 시장 내에서 중국 기업과 숨이 가쁜 경쟁을 해야 하는 한국 기업의 처지에서 보면 득이 될 수도, 실이 될 수도 있다. 사회적 불안이 정부의 재정·산업·통상 정책을 바꾸고, 그 변화가 글로벌 투자와 공급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유럽의 시위를 먼발치에서 지켜보고 있는 한국의 상황도 절대 녹록지 않다. 엄밀하게 보면 정도의 차이만 있지, 한국의 현실도 이와 유사하다. 최근 정부 여당에 대한 청년들의 불만이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연금·주택·일자리·물가 등 어느 하나도 청년에게 긍정적인 것들이 없다. 기성세대들이 청년세대의 짐이 되고, 희생양이 되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유럽과 마찬가지로 중국 기업의 한국 시장 공세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에 막힌 수출길을 한국 시장에서 만회하려는 속셈을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국내 산업 곳곳에서 피해가 확산하고 있다. 한국은 과연 안전지대인가 하는 꼬리표가 붙어 다닌다. 개혁을 자꾸 뒤로 미루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야 한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년)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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