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대출 시장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은행들이 기업금융 인프라 고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출 규모를 늘리는 영업 경쟁을 넘어 여신 실행 절차를 간소화하고 신용위험 관리체계를 정교화하는 움직임이다. 기업의 회계·자금관리 업무를 은행 시스템과 연계하거나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등 기업금융 경쟁의 무게중심이 업무 효율성과 데이터 활용 역량으로 옮겨가고 있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이달 '기업여신 다건 실행 프로세스 개선'과 '부도 시 손실률(LGD) 산출 프로세스 및 추정 시스템 개선'을 위한 사업자 선정에 착수했다. 기업여신 실행 과정의 반복 업무를 줄이고 대출 부실에 따른 예상 손실을 보다 정교하게 측정하기 위한 작업이다. 대출 취급 확대에 대응해 업무 효율성과 위험관리 역량을 동시에 강화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은행들이 기업금융 인프라 정비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가파른 기업대출 증가세가 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지난 9월 말 기업대출 잔액은 886조4813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약 41조8000억원 증가했다. 9월 한 달에만 8조951억원 늘어 2년 5개월 만에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다. 가계대출 규제가 이어지는 가운데 기업금융이 은행권의 주요 성장 동력으로 떠오르면서 이를 뒷받침할 시스템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특히 여신 업무 자동화가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기업여신은 심사부터 승인, 실행까지 여러 절차를 거치는 만큼 취급 규모가 늘어날수록 업무 부담도 커진다. 이에 은행들은 AI를 활용해 반복 업무를 줄이고 심사와 실행에 필요한 시간을 단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기업금융 인프라 개선은 기업 경영데이터 활용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은행들이 계좌 거래뿐 아니라 회계와 자금관리 등 기업 경영활동 전반으로 서비스 범위를 넓히면서 현금흐름과 자금 수요를 파악할 수 있는 기반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KB국민은행은 코어뱅킹 현대화 2단계 사업 일환으로 기업뱅킹에 전사적자원관리(ERP) 기능을 내재화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기존 계좌조회와 이체 중심인 기업뱅킹에 자동화 장부와 자금관리 기능을 결합하고 금융거래와 회계정보를 연계하는 방식이다. 기업 고객의 업무 편의성을 높이는 동시에 거래 데이터를 활용한 맞춤형 금융서비스 제공 기반을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으로서는 여신 처리 비용을 줄이는 동시에 기업 고객 접점을 넓히고 부실 위험에도 대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프라 개선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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