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 1% 법인가
통칭 한국의 1%법, 곧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는 반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도시 곳곳에 조형예술작품을 설치해 온 대표적인 문화정책이다. 1972년 문화예술진흥법에 의거 권장 사항으로 시작된 이 제도는 1995년 연 면적 1만㎡ 이상 건축물을 신축 또는 증축할 경우, 건축 비용의 1% 이하 범위에서 회화, 조각 등 미술작품을 설치하도록 의무화하면서 공공 건축물과 민간 건축물 앞에 작품을 세우는 관행이 정착되었다. 다만 건축주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인 경우, 1%의 비율이 고정적으로 적용되지만, 건물의 종류에 따라 차등 및 시·도 조례에 의해 0.5%~0.7% 사이, 건축주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일 때는 건축비의 1%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즉 시설 유형 별로, 시행령으로 적용가능한 비율만 정해두고, 그 범위 안에서 구체적인 비율은 각시·도의 조례에 위임되어 있다.
예를 들면 공동주택의 경우 건축비용의 0.1%에서 0.7% 사이의 범위가 법령상 설정되어 있고, 이 범위 안에서 실제로 적용되는 구체적인 비율은 각 시·도가 조례를 통해 자율적으로 정한다. 예를 들면 인천시는 연 면적 2만㎡를 초과하는 건축물에 대해 누진 구조를 적용하고 있다. 즉, 2만㎡ 이하에 해당하는 부분은 건축비의 0.7%를, 2만㎡를 초과하는 부분에는 이보다 낮은 0.5%를 적용해, 건물이 커질수록 초과분에 대한 부담 비율을 완화하는 방식을 취한다.
1% 법은 경제 형편이 어려웠던 개발도상국가 시절, 미술 시장이 취약했던 시기에 작가들에게는 안정적인 창작의 기회를 제공하고, 시민은 일상에서 미술을 만나는 접점을 넓힌 성과는 매우 크며 그 성과 또한 인정받아야 한다. 그러나 성과가 크다고 해서 제도가 안고 있는 구조적 결함까지 사면받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공미술공해’라는 말이 일반화될 만큼 제도에 대한 불신 또한 오랫동안 누적해왔고, 시대도 변화했기 때문에 쇄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상황을 반영해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가 제도 개선에 나섰다. 2026년 정책토론회가 열렸고, 국회에서는 '문화예술진흥법' 전부개정안이 발의되었으며, 공모 대행 기관 신설과 전국 단위 심의위원 후보단 구성 같은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왜 지금 개정하려 하는지, 현행 제도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문제이며, 어떤 방향으로 고치겠다는 것인지는 분명하게 제시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제도 개선은 진단이 앞서야 한다. 원인을 명확히 규정하지 않은 채 추진되는 개정은 또 하나의 땜질에 그칠 위험이 크며, 병명도 모른 채 약부터 처방하고, 우선 수술부터 하고 보자는식의 개혁은 곤란하다.
\
현행 1% 법의 구조적, 현실적 문제점
현행 1% 법의 문제는 운영상의 미비함이 아니라 설계 자체의 결함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지금의 제도는 ‘일회성 구매 모델’이다. 건축주는 건물 앞 또는 로비에 그림이나 조각 하나를 세우는 순간 법적 의무가 완결된다. 이렇게 법적 의무를 다하고 나면, 사후 관리는 거의 무방비 상태에 놓인다. 작품이 이후 방치되어 물때가 끼건, 훼손이 되든, 심지어 창고에 처박히든, 다른 곳으로 옮겨지거나, 철거되는 경우도 제도는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서울시가 운영하는 미술장식품심의위원회조차 설치 이후의 관리 부실 문제를 지속적으로 지적해 온 것은 이런 제도의 구조적 결함이 이미 예견된 결과였음을 보여 준다. 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일회성 판매 수입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창작 환경인데, 현행 제도는 후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책상머리에 앉아 여기저기서 들리는 이야기 또는 현장을 모르는 방구석 전문가, 이해 당사자들이 하는 말에 휘둘려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까지 적게는 20여 년, 길게는 50여 년 동안 많은 기업과 건축주 그리고 미술인들이 현장에서 제기해 온 문제점부터 체계적으로 정리해 보면 실질적이면서 체감적인 혁신적 대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사실 2011년 도입된 ‘선택적 기금제’도 이렇게 나온 것이다.
가장 먼저 ‘1% 법’에서 지적되는 것은 재원의 문제이다. 흔히 1% 법이라 부르지만 실제로 적용되는 비율은 0.7% 안팎에 머문다. 1995년 의무화 이후 물가와 인건비, 재료비는 꾸준히 올랐으나, 비율은 그대로여서 작품에 투입할 수 있는 실질 예산은 계속 줄어들었다. 그 결과 제대로 된 규모와 완성도 있는 작품 제작의 설치는 점점 어려워졌고, 작고 볼품없는 조형물이 양산되는 구조가 굳어졌다. 제도의 이름은 1%이되 실제는 그에 미치지 못하고, 그마저도 시간이 흐를수록 제작 비용이 증가하면서 재원의 가치는 잠식되어 규모가 줄어 ‘문패 조각’이란 비아냥까지 나오는 형편이다.
더 심각한 것은 발주와 계약 구조에서 비롯되는 문제이다. 언제부터인가 건축주가 아닌 건설업체에 준공검사를 필한 후 건물을 인도하는 조건으로 건축공사를 도급하는 관행이 자리 잡으면서, 그 과정에서 이른바 공공미술제작 설치 실적을 가진 조형물제작업체에 한정해서 작품제안을 받으면서, 개별 작가들의 참여는 제한당하기 시작했다. 또한 중간에 조형물을 납품하는 대행사가 이를 전담하면서, 작품제작비의 일부가 건축주 또는 대행사에 리베이트 형식으로 넘어가는 불공정 관행이 있다는 주장도 아주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는 2019년 경기도의 심의에서 5개 작품이 가격을 과다 책정했다는 이유로 탈락해 리베이트 관행이 의심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이중 계약을 통해 공사 현장의 운영비를 공공미술비용에서 충당하는 것이 현장소장의 능력이라는 말까지 돌면서, 실제 작품의 구상과 전공 대학원 또는 대학생들이 맡고 제작은 중국 등 인건비와 재료비가 저렴한 곳에서 만들어 오는 경우도 흔해졌다. 따라서 작품의 규모와 완성도는 더욱 취약해졌다. 나아가 작품가 일부를 되돌려주는 이른바 페이백이 일반화되면서 작가가 뇌물죄로 실형을 살거나 원래 계약 금액을 기준으로 종합소득세가 부과되어 오히려 손해를 보는 일도 허다한 것이 현실이다. 제도가 예술가를 보호 육성하기는커녕 범법과 손실의 위험으로 내모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작가와 작품을 선정하는 방식에서도 왜곡이 나타난다. 공공미술설치를 위한 작가를 선정하는 방식은 건축주가 직접 선정하거나, 중개업체를 통하거나, 공모를 거치는 세 가지 방식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이후 대개 시도별로 조각, 회화, 공예, 디자인 전문가와 시민 등 비전문가 50여 명의 인력 풀 구성된 미술장식품심의위원회가 꾸려지고, 심의 때마다 추첨을 통해 10명 내외의 위원이 윤번제로 심사에 나서고 있다. 소수의 심의위원이 특정 예술가와 작품을 선정하는 구조에서는 인맥과 로비가 개입할 여지가 항상 존재한다.
특히 어떤 지역의 경우 심의위원 중 심의회의에 참가하지 않을 때는 자기 작품을 심의 대상으로 제출할 수 있어 사실상 ‘셀프 심의’나 다름없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다만 서울이나 경기도는 심의위원으로 활동하는 기간에는 기회를 제한하고 있다. 때로는 심사의 공정성을 위해 작가의 이름을 가리고 심사하는 것은 물론, 작품의 모형도 없이 심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한 작가의 설명도 들어볼 기회가 없이 오직 자료에 의한 심사이고, 작품이 설치될 장소에 대한 현장답사도 없는 심사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서류로 된 심사 자료를 심사한다는 우스개까지 등장하는 것이 현실이다. 또 작가의 이름을 가린다고 해도, 작품을 보면 스타일이나 재료, 기법 등을 통해 특정 작가의 작품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심사의 공정성을 위해 이름을 가리다 보니, 유명 작가의 작품을 모방한 작품이 선정되는 웃픈 일도 다반사이다.
문화부가 2026년 개정안에서 공모 대행기관 신설과 전국 단위 심의위원 후보단 마련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현행 방식으로는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자기 고백이자, 지역별 심의위원회의 들쭉날쭉한 심사 기준 때문에 어느 수준의 작품이 선정될지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정책 목표와 정책 수단의 불일치다. 이 제도의 목적은 ‘일상 속 예술 향유’와 ‘예술가의 창작 기회 확대’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건축물의 전면 또는 로비에 조각작품 하나를 세우는 것이 어떻게 예술가의 지속적인 창작 기회를 확대한다는 것인지. 작품 제작에 투입된 예산은 재료비와 제작비로 소진되고 끝난다. 그 작가가 다음 작품을 만들 작업실이 있는지, 다음 작품을 제작할 재료비는 있는지에 대해 이 제도는 아무런 답을 주지 못한다.
1% 작가만 양산하는 제도
원래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는 본래 예술가에게 창작 기회를 넓혀 주고 시민이 일상에서 예술을 접하게 한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제도가 정착한 뒤 현장에서는 이 취지와 어긋나는 현상이 나타났다. 특히 1% 법의 가장 큰 수혜자인 조각가들은 자신의 작품 세계를 심화하기보다 공공미술 제작에 전념하는 풍조가 생겼고, 개인전이나 단체전 같은 발표 활동이 줄어들었다. 작가들에게 안정적으로 창작에 전념할 수 있도록 만든 제도가 오히려 창작을 위축시켰다면 이는 분명한 역설이자 정책의 실패다.이런 현상의 원인은 수입 구조의 왜곡에 있다. 조각가에게 전시는 작품을 발표하는 자리지만, 판매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어 대체로 비용만 드는 활동이다. 반면 건축물 미술작품은 건축비의 일정 비율이 미리 배정되어 있어 안정적인 수입원이 된다. 생계를 꾸려야 하는 작가가 판매가 불확실하고 비용만 들어가는 전시보다, 확실한 수주를 택하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 결과 작업 시간과 에너지가 공공미술 제작으로 쏠리게 된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작업 방식이 변질되기 시작했다. 건축주가 원하는 것은 대체로 건물의 품격을 높이고 심의를 무난히 통과해 준공검사를 필해 건물을 하루라도 빨리 사용할 수 있는 작품이다.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작품은 심의에서 부결될 위험이 크고 건축주도 꺼리므로, 작가는 자연히 안전하고 익숙한 형식을 반복하게 된다. 작가 자신의 조형 언어를 탐구하는 대신 건축주 또는 공사를 도급받은 건설회사의 예산과 취향에 맞추는 일이 일상이 된 것이다. 이는 작품이 비슷한 모양과 소재로 획일화된다는 비판과도 맞닿아 있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 창작의 선순환이 끊어진다. 예술가는 신작을 발표하고 비평과 관객의 반응을 거치며 성장한다. 개인전과 단체전은 그 과정을 형성하는 핵심 장치이다. 발표의 장에서 멀어지면 작가는 동료와 평단의 검증을 받을 기회를 잃고, 그 공백을 공공미술 시장의 수요와 발주처의 요구가 메우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작가는 예술가라기보다 공공미술 납품업자에 가까워지고 조각계 전체의 담론과 실험 정신도 약해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결국 공공미술의 질의 하락으로 귀결된다. 작가가 공공 미술 제작에 몰두하더라도 제작비의 상당 부분이 중개 구조나 이면 계약으로 빠져나가면 작품에 투입되는 실질 비용과 시간은 줄어든다. 작가는 작업에 충분히 공을 들이기 어렵고, 결과물은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 조형물을 위한 조형물로 되고 만다. 시민 사회가 이를 흉물이라 부르며 철거를 요구하는 일은 이러한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작가의 창작력이 소모되고 시민의 신뢰도 떨어지는 이중의 손실이 발생하는 것이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제도가 작가에게 일감을 주는 데 그쳤을 뿐, 작가가 예술가로서 성장할 환경을 만들어 주지는 못했다는 데 있다. 이를 바로잡으려면 작가 선정의 투명성 확보와 작가에게 정당한 창작료가 돌아가게 하고, 작품의 예술성을 중심으로 심의하며, 작가가 제작 수주와 별개로 자기 작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전시와 발표를 지원하는 방안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제도의 취지가 창작 기회의 확대에 있다면, 그 성과는 설치된 조형물의 수가 아니라 작가들의 창작이 얼마나 풍부해졌는가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평가에 따라 제도의 성패가 결정될 것이다.
공모제의 유혹과 함정
민간 건축주는 공기 지연과 비용을 이유로 작가와 작품 선정 과정에서 특정 작가나 업체에 기회가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와 유사한 형태의 조형물이 반복 설치되는 것을 방지하고, 특히 선정의 공정성을 높이고, 신진 작가의 경우 진입을 쉽게 한다는 명분으로 공모제를 검토하고 있다.다만 공정성을 높이고 신진 작가에게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공모제를 도입해도, 그 의도대로 작동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바로 그 장치가 작품의 질을 떨어뜨리는 역설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다. 일단 현행 제도에서 공모는 의무가 아니다. 세종시의 경우 국가기관·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지방공기업이 건축주인 건축물만 공모 의무 대상이고, 공동주택이나 연 면적 2만㎡를 초과하는 건축물 등은 권고사항으로 시행 중이다.
하지만 공모제는 중진 이상의 작가를 시장에서 밀어내는 결과를 낳게 된다. 작가로서의 인지도와 예술적 성취를 갖춘 작가에게 공모는 정성적 평가가 아니라 정량적 요건과 형식적 서류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절차이다. 특히 공공미술품의 심의란 심의위원들의 주관적인 판단과 결정이다. 객관적인 평가란 예술품을 심사에서는 불가능하다. 다만 심의위원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받은 점수가 많다는 사실 만으로, 우월을 가늠하고 이를 객관적이라고 결정하는 편의적인 방식이다. 따라서 오랜 작업으로 이미 작품 세계를 검증받은 작가가 경쟁 공모에 응해 심사를 받는 일은 비예술적인 제도에 자신을 맞추는 일로 느껴지기 쉽고, 이에 대한 저항감이 크다. 여기에 후배와 젊은, 신진 작가 즉 후배나 제자들과 경쟁해 그들의 기회를 빼앗는다는 부담까지 더해져 많은 중진 작가가 공모 참여를 스스로 꺼리게 될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가장 뛰어난 예술성 높은 작품을 제출할 수 있는 작가들이 후보군에서 제외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렇게 되면 공공미술 지원자 풀은 성장 단계에 있는 작가 중심으로 채워질 것이다. 신진 작가에게 기회를 준다는 취지 자체는 옳지만, 공공장소에 오래도록 남을 대형 공공미술품을 아직 학습기 또는 수련기의 신진 작가의 습작이 아니라 독창성과 미적가치를 지닌 예술적이며, 공공성을 갖추고, 주변 경관과 어우러지는 동시에 안전하고 보존과 유지가 용이한 작품이어야 한다.
중진 작가가 빠진 공모는 아직 성숙하지 못한 작가와 작품이 선정될 수밖에 없고, 이러한 작품이 공공미술이란 이름으로 도시 전역을 채운다면 재앙이 아닐 수 없다. 신진 작가에게 참여 의 기회를 넓혀 주는 일과 한 도시의 공공적인 공간을 채울 작품의 수준을 지키는 일은 별개의 일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신진 작가를 지원 육성할 방법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라는 하나의 돌로 신진 작가 지원과 공공미술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하다가는 두 마리 다 놓치고 마는 우를 범하고 말 것이다.
따라서 공모제는 폐쇄성을 심화할 것이 자명하다. 여기에 이른바 지역 작가에게 해당 지역의 조형물을 몰아주는 관행이 공모와 결합하면 지역의 벽을 넘지 못하는 닫힌 구조가 될 것이다. 특히 경쟁의 범위가 좁아지면 작품의 질적 향상을 이끌어갈 긴장도 약해질 것이다. 또 다른 지역이나 국외의 작가와 견줄 기회가 없는 지역의 작가는 발전의 동력을 잃고, 시민은 그 지역 안에서만 소비되는 작품을 마주하게 되는 불행을 맞게 될 것이다.
반면 공모제는 정작 비용을 부담하는 건축주도 제도의 주체에서 배제하고 만다. 비용은 건축주가 내지만 자신이 선호하는 작품을 고를 수 없고, 남이 정해 준 작품을 자기 건물 앞에 세워야 한다. 이는 불합리할 뿐 아니라 제도의 활력을 꺾는다. 마음에 드는 작가의 작품을 위해 법정 비율을 훨씬 웃도는 5~10%를 기꺼이 쓰는 건축주도 있다고 하는데, 이러한 자발적 후원 의지야말로 공공미술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자산이다.
그러나 공모제는 자발적 후원 의욕을 제도 밖으로 밀어낸다. 1995년 의무화 이전에 설치된 작품 중에는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할 만한 수준의 작품이 제법 있지만, 의무화 이후 그런 괄목할 만한 작품이 뜸해졌다는 점은 곱씹어 볼 문제이다. 이를 곧바로 의무화의 결과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더라도, 제도가 건축주의 안목과 자발성을 살리지 못했다고 할 여지는 충분하다.
이른바 ‘문패조각’의 문제는 건축주가 예술에 무관심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제도가 건축주의 자발적 참여와 안목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 후원의 잠재력을 가진 주체를 수동적인 납부자로 묶어 둔 채 그 의욕을 제도 밖으로 밀어내고 있지는 않은 지, 생각해 볼 일이다.
공모제를 도입해도 선정 과정의 공정성 문제는 구조적으로 남는다. 건축주 개인이나 소수의 심의위원이 작가와 작품을 정하는 구조에서는 인맥과 로비가 개입할 여지는 항상 존재한다. 문화부가 공모 대행 기관 신설과 전국 단위 심의위원 후보단 마련을 논의하는 것은, 현행 방식으로는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점을 사실상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행 기관과 후보단을 두는 것은 결국 선정 권한을 또 다른 소수에게 옮기는 일일 뿐이며, 그 소수가 예술성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는 보장 역시 제도 안에는 없다.
따라서 공모제는 공정성이라는 절차적 가치를 높이는 대신 예술성과 작품성이라는 실질적 가치를 희생시킬 위험이 크다. 중진, 원로 작가의 이탈, 미완의 작품 양산, 지역적 폐쇄성, 건축주의 소외, 그리고 남아 있는 로비의 여지라는 다섯 가지 한계는 공모제가 만능 해법이 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제도를 개선하려면 공모를 의무로 확대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공공미술품의 작가와 작품선정 그리고 심의위원회에 브리핑은 물론 제작과 설치 이후 사후관리를 책임지는 예술감독 (Artistic Director) 제도의 도입이나 지명공모(Invitation only Competition) 또는 추천 등 다양한 선정 방식을 병행하고, 건축주의 안목과 자발적 후원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며, 심의가 절차의 적합성보다 작품의 예술적 완성도를 판단하도록 만드는 방안을 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특히 1% 법에 따라 지출하는 비용에 대해 특별한 세제 혜택을 부여하거나, 의무 이상의 비용을 지출해 공공미술품을 설치할 경우, 건폐율과 용적률을 상향해 주는 등의 유인책을 마련해 민간에 부담만 안길 것이 아니라, 정부도 함께 부담을 나누는 방식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무튼 공정성을 앞세운 공모제가 역설적으로 공정성보다 우선해야 할 공공미술의 예술성을 해쳐서는 안 될 것이다.
국가별 건축물 미술장식 제도(1%법)
건축물 미술장식제도, 이른바 ‘1% 법’의 기원은 1930년대 미국 대공황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루스벨트 행정부는 공공사업진흥국(WPA, Works Progress Administration) 산하 연방미술프로젝트 (FAP, Federal Art Project)를 통해 실업 상태에 놓인 예술가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했으며, 이 과정에서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등이 공공건물의 벽화와 조각 제작에 참여했다. 이런 발상은 전후 미국과 유럽으로 확산하면서 ‘1% 법’이라는 이름으로 정착되었다. 한국의 경우 다른 나라와 달리 제도의 근거를 법률에 두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미국에서는 1959년 필라델피아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1% 미술 조례를 통과시켰다. 연방 차원에서는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의 연방 청사 특별위원회 권고에 따라 ‘연방 신축건물 미술 프로그램’이 처음 제정되었고, 이는 1972년 ‘건축 속의 미술(Art in Architecture)’ 프로그램으로 발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프로그램은 신축 연방 청사나 대규모 개보수 공사비의 최소 0.5%를 미술품 설치에 사용하도록 정하고 있는데, 이는 법률이 아니라 행정 지침의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필라델피아의 이후 미국 전역에서 350개가 넘는 ‘1% 법(Percent for Art)’을 만들었으며, 대부분은 개별 주법에 근거해 운영되며, 통상 1%를, 일부주는 2%까지 정하고 있어, 미국은 연방 차원의 낮은 0.5%와 주별로 상이한 법률이 병존하는 다층적 구조를 가지고 운용되고 있다.
프랑스는 1951년 5월 18일 시행령을 통해 ‘1% 미술 (1% artistique)’ 제도가 시행되었다. 조각가 르네 이셰(René Iché, 1897~1954)와 당시 교육부 장관 피에르 올리비에 라피(Pierre Olivier Lapie, 1901~1994)의 주도로 도입해, 국가가 학교 및 대학 건축비용의 1%를 현대미술 작품 제작해 설치하도록 했다. 처음에는 교육 시설에 국한해 적용했던 제도는 1982년 지방분권화 정책과 함께 지방자치단체로 확대되었고, 2002년에는 지자체에 이양된 권한의 범위 내에서 다시 한번 정비되었다.
현재는 2002년 제정된 시행령에 따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건축비의 1%를 해당 건물을 위한 작품의 주문이나 구매에 사용하도록 하며, 총액이 3만 유로(약 4600만 원)에 미치지 못할 경우 기성 작품을 구매하는 것도 가능하다. 1951년 제도 시행 이래 지금까지 4000여 점의 작품이 제작 설치되었으며, 칼더(Alexander Calder, 1898~1976)와 아르프(Jean Arp, 1886~1966), 바사렐리(Victor Vasarely, 1908~1997) 등이 참여한 파리 쥐시외 캠퍼스(Campus de Jussieu, 현 Pierre et Marie Curie Campus)가 대표적이다.
독일에서는 1950년 1월 25일 연방의회가 조형예술 진흥을 목적으로, 연방이 발주하는 모든 건축공사에서 원칙적으로 공사비의 최소 1%를 조형예술가의 작품 제작에 배정하기로 의결했다. 이는 전후 폐허 속에서 재건이 한창이던 시기의 결정이라는 점에서 상징성을 지닌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1950년 서독 연방의회와 동독 인민의회가 거의 동시에 각각 정부 건축사업에 조형예술가의 참여를 결정했다는 점이다. 이후 비율이 2%까지 확대되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주별로 0.4~2% 사이에서 운영되었다. 다만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North Rhine Westphalia) 주는 2001년 건물관리공사(BLB, Bau und Liegenschaftsbetrieb)를 설립하면서 정률제를 폐지하고 예산에 맞춘 정액 상한제로 전환했다. 이처럼 독일은 국가의 법률이 아니라 ‘연방 건축사업 시행지침(RBBau)’상의 행정 지침의 성격을 띠며, 주와 지자체가 이를 자율적으로 수용하는 구조이다.
네덜란드는 1951년 교육예술과학부의 주도로 국유건물관리청 소관 건물에 적용되는 현행 정률제의 근간이 마련되었으며, 당시 중요하고 상징적인 건물의 장식을 위해 신축비의 1.5%를 배정하도록 했다. 이후 1963년 공식 지침(Brochure)을 통해 처음으로 구체화했고, 1974년 연구위원회 보고서와 1977년 그루이터스 위원회의 보고서를 통해 적용 범위가 점차 확대되어, 현재는 국유부동산관리청이 신축·증개축·리모델링 시 예산의 0.5~2%를 미술품에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그 비율은 예산 규모와 연동해서 정해지는데 총건축비가 100만 유로를 초과할 경우 적용되며, 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은 150만 유로를 초과할 때 적용된다. 아울러 지방자치단체와 주 정부 역시 이와 유사한 자체 규정을 두고 운영하고 있다.
영국은 국가 차원의 강제적인 법률을 두고 있지 않다. 전국 단위의 퍼센트 제도는 존재하지 않으며, 일부 지역과 지방자치단체가 자체적으로 ‘1% 법’을 개발 운영해 왔다. 1982년 영국현대미술연구소(ICA)에서 열린 예술과 건축 컨퍼런스를 계기로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크게 확대되었으며, 1988년 옥스퍼드셔(Oxfordshire)가 영국 최초로 카운티 단위의 1% 법을 정책으로 채택했다. 영국 예술위원회는 개별 사업에 직접 재정을 투입하기보다는 교육과 시범 사업을 통해 이런 정책의 확산을 독려하는 방식을 취했다. 실무적으로는 법정 비율에 따른 의무 부과가 아니라, 개발 계획허가 과정에서 개발업체와 지자체가 협의하는 이른바 ‘기부채납(Section 106 협약)’ 방식으로 운용되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지자체의 재량과 협상력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구조이다.
호주에서는 1989년 서호주 주 정부가 최초로 ‘1% 법’ 정책을 세워, 200만 달러 이상의 공공사업의 경우 건축비의 최대 1%를 공공미술에 사용하도록 했다. 제도가 시행된 이후 지금까지 575점이 넘는 작품이 제작 설치되었고, 총 4600만 달러 이상이 투입된 것으로 집계되었다. 2007년 도시계획 컨설팅업체 로버츠데이와 서호주 시각예술 단체 ‘아트소스(Artsource)’가 협력해 지방자치단체용 1% 법 모델을 개발했고 2019년 조사에 의하면 퍼스 광역권의 25개 지자체 중 18곳이 채택 운영 중이다. 다만 연방 차원의 통일된 규정은 없으며, 남호주의 경우 오래된 공공미술 프로그램과 전담 위원회를 갖고 있지만 공식적인 정책 없이, 주마다 접근 방식과 시행 수준에 상당한 편차가 있다.
일본은 아직 ‘1% 법’이 법제화되어 있지 않다. 2000년 12월 히라야마 이쿠오(平山 郁夫, 1930~2009) 등 미술계·관계 인사들이 1% 법인 '퍼블릭아트 진흥에 관한 제언'을 정부에 제출했고, 2019년에는 자민당 소위원회에서도 법제화를 요구했으나, 입법화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일본은 1980년대 공공미술 개념을 도입해 “조각이 있는 마을 만들기” 같은 지원이 아닌 공공적 성격의 도시정비 사업을 전개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지역에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 너무 많이 설치되면서 ‘조각 공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상을 종합해 보면, ‘1% 법’은 대체로 3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하나는 한국과 프랑스처럼 국가의 법률 또는 시행령에 근거해 전국적으로 강제되는 형태와 미국·독일·네덜란드처럼 법률이 아닌 행정 지침이나 정책의 형태로 운영되는 유형이다. 여기에 영국과 호주는 국가 차원의 통일된 규정이 없이,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적 정책에 의존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아울러 대부분의 국가가 대공황기의 실업 예술가 구제책이나 전후 재건기 문화진흥책, 또는 우리나라처럼 개발도상국가시절 예술가들의 지원이라는 유사한 정책 탄생의 배경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고기가 아닌, 잡는 법과 문화공간제도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정책 목표와 정책 수단의 불일치다. 이 제도의 목적을 “일상 속 예술 향유”와 “예술가의 창작 기회 확대”라고 법에 명시하고 있지만, 건물 앞에 또는 로비에 조각 한 점, 그림 한 점, 거는 것이 어떻게 예술가의 지속적인 창작 기회를 확대한다는 것일까. 작품 제작에 투입된 비용은 재료비와 제작비, 인건비로 소진되고 끝난다. 따라서 작가가 다음 작품을 만들 작업실의 임대료는 있는지, 다음 작품을 할 재료비와 인건비는 낼 수 있는지에 대해 이 제도는 아무런 답을 주지 못한다. 정책 목표가 ‘창작 기회의 지속적 확대’라면, 정책 수단은 마땅히 최소한 ‘지속 가능한 창작 공간의 확보’여야 한다. 현행 제도는 목표와 수단이 근본적으로 어긋나 있다.결국 문제는 공공미술품의 크기나 개수, 비율의 높낮이 같은 표면적 조정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작품을 건물 앞에 ‘설치’하는 행위 중심의 제도가 갖는 한계를 넘어, 예술이 공간과 도시 속에서 작동하는 방식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특히 건축비 일부를 공공미술품 한 점을 위해 사용하는 방식에서, 그 자원을 예술가가 실제로 살아가고 창작할 수 있는 공간을 영구적으로 확보하는 데 쓰는 방식으로 바꾸는 발상의 전환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1% 법의 확장을 위한 구체적 방법론으로 헬싱키, 샌프란시스코, 런던 등에서 시행 해 온 문화공간(CLT, Cultural Land Trust) 이라는 새로운 틀을 통해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가 조각에서 공간으로, 근본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는 한국의 1% 법과 CLT 모델을 결합하는 것은 선택이 가능한 여러 안 중 하나가 아니라, 이 제도가 애초에 표방했던 예술가의 창작 기회 확대라는 목적을 실질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유일하게 합리적인 경로이자 미술에 국한되었던 1% 법의 수혜 범위를 예술 전 분야 즉 문학, 음악, 무용, 연극 등 제 분야로 확장할 수 있는 제도이다.
문화공간신탁(CLT, Cultural Land Trust) 또는 창의토지신탁(Creative Land Trust) 제도 는 1960년대 말 미국에서 등장한 지역사회토지신탁(CLT, Community Land Trust)에서 파생된 제도이다. 1969년 조지아주에서 흑인 농민들의 토지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 설립된 뉴 커뮤니티스(New Communities Inc.)가 그 효시로, 이후 이 제도는 주로 주택 분야에서 저소득층의 안정적 거주권을 지키는 수단으로 미국 전역에 확산했다. 문화·예술 분야의 문화공간제도는 주택용 모델의 핵심 작동 원리를 그대로 원용하되, 대상을 ‘거주자’에서 ‘예술가와 창작 공간’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제도의 핵심 구조는 ‘토지 또는 건물의 소유권’과 ‘이를 이용하는 활동’을 법적으로 분리한다는 것이다. 대개 비영리법인이나 재단, 사회적협동조합이 등기부상 소유자가 되어 부동산을 직접 소유하고, 예술가나 문화단체는 부동산을 소유한 비영리법인으로부터 장기 지상권 계약(Ground Lease) 또는 임대차 계약을 맺어 공간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때 이런 구조가 중요한 것은, 부동산의 소유권을 시장에서 완전히 격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비영리법인이 보유한 자산은 인수합병이나 재개발, 시세 차익을 노린 매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를 흔히 사회복지학에서 ‘탈상품화(Decommodification)’라 하는데, 이것이 CLT를 일반적인 부동산 임대나 민간 기부와 근본적으로 구분 짓는 부분이다.
특히 CLT는 한번 저렴한 임대료를 제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저렴성을 계약서 조항을 통해 영구적으로 고정한다. 즉 재판매 제한 조항(Resale Restriction)이나 임대료 상한 조항을 약관에 명시함으로써, 설령 시장 임대료가 폭등하더라도 이를 소유한 비영리법인은 공간의 임대료는 올릴 수가 없다. 헬싱키 카펠리(Kaapelitehdas)가 수십 년째 시장가의 40% 수준의 임대료를 유지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장치 덕분이다.
대개 전통적인 CLT 모델은 입주자 혹은 이용 당사자, 그리고 인근 지역사회 대표, 그리고 공공의 전문가 대표로 균등하게 이사회를 구성하는 ‘삼분 거버넌스(Tripartite Governance)’ 원칙을 따른다. 이는 부동산을 소유한 비영리법인이나 조합의 의사결정이 특정 자본이나 소수의 이해관계자에게 좌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장치다. 문화 분야 CLT에서는 여기에 예술가의 대표성이 강화되는 경우가 많아, 입주 예술가들이 임대료 정책이나 입주자 선정 기준 결정에 직접 참여하는 구조를 취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CLT는 자본 축적 플랫폼으로 일반적인 문화 기금이나 보조금처럼 써서 없어지는 돈이 아니라 자금이 ‘소비’되지 않고 ‘자산’으로 누적된다는 점이다. 공공보조금, 민간 기부, 부동산 매입 후 발생하는 임대 수익이 모두 하나의 신탁이라는 그릇 안에 쌓이면서, 신탁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부동산을 매입하거나 더 큰 규모의 복합 공간을 조성할 수 있는 재무적 역량을 갖추게 된다. 이러한 예는 헬싱키, 샌프란시스코, 런던의 사례에서 공통적인 사항으로 자산 자체를 확보해 공동체 소유로 쌓아 두는 ‘스톡(Stock) 기반 접근’의 실체로 토지소유권과 건물사용권의 분리, 영구적인 저렴성, 민주적 거버넌스, 자본의 축적이 결합할 때 비로소 CLT는 일회성 지원을 뛰어넘어 예술가에게 항구적인 창작 기반을 제공하는 제도로 작동한다.
문화예술의 지원 효과는 ‘한 번에 얼마를 주는가’가 아니라 ‘그 자원이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많은 예술가에게 반복적으로 혜택을 주는가’에 달려 있다. 헬싱키의 카펠리는 1991년부터 30여 년간 단 하나의 조직이 세 곳의 부동산, 거의 10만 제곱미터의 공간을 운영하며 350개 문화·창작 세입자를 지속적으로 수용해 왔다. 만약 이 자금이 매년 개별 공공조형물 구매에 나누어 쓰였다면, 지금쯤 그 작품들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를 것이다. 대신 카펠리는 하나의 자산으로 존재하며 99%의 점유율을 유지한 채 지금도 예술가들에게 시장가의 40% 수준으로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지역사회 예술 안정화 신탁(CAST, Community Arts Stabilization Trust)’와 아티스트 스페이스 트러스트(AST, Artist Space Trust) 역시 마찬가지다. 개별 자선 기부금이나 보조금은 그 자리에서 소진되는 대신, 신탁이라는 영구적 자본 플랫폼에 누적되면서 29 부두(Pier 29) 같은 대규모 복합 창작공간을 만들어내는 힘이 되었다. 런던의 예술가와 창작자들이 치솟는 임대료 때문에 작업 공간을 잃고 도시를 떠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립된 독립 자선단체이자 사회적 기업인 런던의 ‘문화공간’은 2019년 런던 시장 사딕 칸(Sadiq Khan, 1970~), 영국 예술위원회(Arts Council England), 블룸버그 자선재단(Bloomberg Philanthropies), 아웃셋 현대미술기금(Outset Contemporary Art Fund) 등이 공동으로 기금을 마련해 출범했다. 이들은 “1000명 이상의 예술가를 위한, 그렇지 않다면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을 목표로 했다. 이이는 소비되는 예산이 아니라 축적되는 자산이라는 발상의 전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 법의 또 다른 트랙, 문화공간신탁제도
이들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부동산을 시장에서 영구히 분리해 비영리 신탁이 소유·관리하게 함으로써, 임대료 급등이나 재개발 압력이라는 구조적 위협 자체로부터 예술가를 격리시킨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한국의 1% 법이 반세기 동안 이루지 못한 일이며, 지금 도입해야 할 원리다. 이는 1% 법의 이행 수단에 ‘문화공간신탁 출연’이라는 제3의 경로를 신설하는 것이며 이 경로가 향후 제도의 중심축이 되도록 방향을 선회해야 한다.구체적 제도의 설계는 다음과 같다. 우선 공공조형물을 설치하는 대신 현금을 출연할 경로를 신설하거나 건축주가 건물의 일정 %의 면적을 (가칭) 문화공간신탁에 출연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 각가의 개별 공공미술품 제작설치비용으로는 결코 부동산을 매입할 수 없지만, 하나의 신탁에 누적되면 실제 건물 하나를 통째로 매입해 예술가들에게 영구히 제공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것이 바로 샌프란시스코 CAST가 증명한 ‘자본 플랫폼’의 힘이다.
한편으로는 현물 면적 제공 경로의 신설이다. 이는 신축건물 연 면적의 일정 비율을 창작 공간·소공연장으로 제공하는 것을 미술작품 설치 의무 이행으로 대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다만 이때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이 공간의 운영권은 건축주가 아니라 반드시 신탁에 귀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건축주가 직접 입주 예술가를 선정하도록 방치하면, 현행 제도가 앓고 있는 공정성 문제가 고스란히 재현될 뿐이다. 신탁이 입주자 선정, 임대료 책정, 계약 관리를 전담해야만 공정성과 지속가능성이 동시에 보장된다.
이와 함께 영구성의 원칙을 반드시 관철해야 한다. CLT 모델의 핵심 가치는 영구성이다. 만약 현물 제공 기간을 10~20년 등으로 제한한다면, 계약 만료 후 건물이 다시 상업 용도로 전환되면서 예술가들이 재차 밀려나는 문제가 그대로 반복될 것이다. 따라서 현물 제공은 최소 20~30년 이상의 장기 계약으로 설계하되, 계약 만료 시점에 신탁이 우선매수권 또는 재계약 옵션을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신탁이 직접 매입한 건물은 처음부터 영구 보유해야 함은 물론이다. 영구성을 담보하지 않는 CLT는 CLT가 아니라 이름만 빌린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그리고 현금 또는 현물로 기여한 자산은 반드시 하나의 신탁 아래 통합 리 운영되어야 한다. 현금으로 확보한 자산과 현물로 확보한 공간을 하나의 포트폴리오로 관리해야만, 계약이 만료되는 공간과 새로 확보되는 공간을 유기적으로 조정하며 예술가들의 지속적 정착을 지원할 수 있다. 두 경로를 분리 운영하면 관리 비효율과 형평성 문제만 낳을 뿐이다.
물론 이런 개혁 방안에 대해 검토할 만한 가치 있는 반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1% 법의 개혁 방향 자체를 부정할 근거는 되지 못할 것이다. “건축주의 부담이 지나치게 커질 것”이란 우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현행 제도에서도 이미 건축주가 부담하고 있는 비용을, 단지 공공미술품이 아니라 공간으로 전환하는 것일 뿐이다. 오히려 용적률 인센티브나 세제 혜택을 연계하면 건축주에게도 새로운 유인 및 권장 효과를 제공할 수 있으며, 런던의 사례처럼 공공기관이 정책적으로 재원을 뒷받침하면 부담은 충분히 분산가능하다.
신탁의 관리 역량이 염려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개혁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아니라, 문화공간신탁(가칭)의 설립 초기 단계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실행 과제일 뿐이다. 헬싱키 카펠리가 30여 년간 안정적으로 조직을 운영해 온 경험은, 충분한 시간과 제도적 뒷받침이 있다면 이를 관리 운영할 역량은 넉넉하게 축적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오히려 지금처럼 시·도별로 흩어진 50인 규모의 윤번제 심의위원회를 유지하는 현행 구조야말로 전문성과 책임성이 결여되어 있고, 심의권한은 행사하면서, 심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또한 수도권이나 대도시 중심으로 편중될 것이라는 우려도 문화공간신탁(가칭)의 설계 단계에서 지역 안배 조항을 명문화함으로써 해결할 문제이지, 신탁 제도 자체를 포기할 이유는 못 된다.
문화부가 스스로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이런 근본적인 전환을 관철시킬 최적의 시점이다. 사실 문화공간신탁(가칭) 제도의 도입은 2011년 1% 법 개선 당시에도 이미 논의된 바 있지만, 예상되는 반발을 의식해 결정을 미뤄 오늘에 이르렀다.
사실 지금 추진되고 있는 ‘공모 대행기관 신설’과 ‘미술작품 대여를 통한 설치 의무 대체’라는 아이디어는, 소유가 아닌 접근권과 운영권 중심으로 제도를 재편하려는 문제의식을 이미 담고 있다. 이 문제의식을 끝까지 밀어붙인다면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은 명확하다. 작품을 사는 대신 빌리는 것이 가능하다면, 개별 공공미술품을 제작 구입 설치하는 대신 그 재원을 모아 예술가들이 영구히 머물며 작품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 역시 마땅히 가능해야 하며, 오히려 이것이 제도의 본래 취지에 더 부합하는 것이다.
50여 년간 한국의 도시 곳곳에 세워진 수많은 공공미술품은 나름의 시대적인 산물이자 의미있는 제도였다. 그러나 이제는 물어야 한다. 그 예산이 공공미술품이 아니라 ‘공간’으로 쌓였다면, 지금 한국의 예술가들은 걱정 없는, 다른 창작 환경 속에 있었을 것이다. 문화공간과의 결합은 이 질문에 대한 가장 확실한 답이며, 더 이상 미룰 이유가 없는 개혁이다. 언제까지 주변만 맴돌 것인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