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자의 아시아의 영성(Spiritual Asia)㉟ | 기독교 이야기 ①] 예수, 사랑이라는 혁명

  • 율법에서 사랑으로, 갈릴리에서 십자가까지…

  • 한 유대 청년의 삶과 죽음은 어떻게 2000년 세계문명의 물줄기를 바꾸었는가

인류의 역사를 바꾼 사람들은 많다. 제국을 건설한 왕이 있었고 대륙을 정복한 장수가 있었으며 새로운 사상을 세운 철학자와 세상을 바꾼 과학자가 있었다. 그러나 군대도 없고 영토도 없으며 재산도 권력도 없었던 한 사람이 죽은 뒤 2000년이 지나도록 세계 수십억 인간의 삶과 문명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나사렛 예수.

그는 황제가 아니었다. 군대를 거느리지 않았고 책 한 권 직접 남기지 않았다. 궁전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당대의 권력 중심인 로마에서 활동하지도 않았다. 로마제국 변방 팔레스타인의 작은 마을들을 걸어 다니며 사람들에게 이야기했고, 병든 사람과 가난한 사람을 만나고 제자들과 밥을 먹었다. 그리고 마침내 로마제국의 형벌인 십자가형으로 죽었다.

세상의 기준으로만 보면 실패한 인생이었다.

그런데 그의 죽음 이후 역사가 움직였다. 그를 따르던 작은 공동체는 예루살렘을 넘어 소아시아와 그리스, 로마로 퍼져갔다. 박해받던 신앙은 수백 년 뒤 로마제국이 공인하는 종교가 되었고 마침내 유럽문명의 중심에 들어섰다. 하나였던 교회는 긴 역사를 지나 서방과 동방으로 갈라져 오늘날의 가톨릭과 정교회로 이어졌고, 다시 16세기 서방교회의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개신교라는 거대한 흐름이 생겨났다.

오늘 우리가 ‘기독교’라고 부르는 Christianity는 이 모두를 아우르는 큰 이름이다.

가톨릭도 기독교이고 정교회도 기독교이며 개신교도 기독교다. 서로 교리와 전통, 예배와 교회제도에서 차이가 있지만 모두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기독교를 이해하려면 교황이나 루터보다 먼저 한 사람에게 돌아가야 한다.

예수다.

그리고 예수를 이해하려면 그보다 더 오래된 이야기로 돌아가야 한다.

유대교다.

예수는 유대인이었다
기독교의 역사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예수는 유대인이었다.

그는 유대인의 가정에서 태어났고 유대교의 성서를 읽었으며 회당과 성전을 알고 있었다. 안식일과 유월절을 지켰고 모세의 율법과 예언자들의 말씀을 토대로 가르쳤다. 그의 첫 제자들도 유대인이었다.

따라서 기독교는 유대교와 전혀 무관한 곳에서 갑자기 나타난 종교가 아니다. 아브라함과 모세, 출애굽과 시내산의 계약, 토라와 예언자라는 긴 강물에서 출발했다.

앞선 유대교 삼부작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떠남을 보았다. 모세의 출애굽을 따라 자유와 계약을 만났고, 토라와 탈무드를 통해 질문과 공부의 전통을 살펴보았다. 마지막에는 아인슈타인과 노벨상, 금융과 기업, AI까지 가서 물었다.

“그대가 얻은 힘은 누구를 살리고 있는가.”

기독교 이야기는 바로 그 질문을 이어받는다. 힘을 누구를 위해 사용할 것인가. 예수가 보여준 답은 뜻밖이었다. 더 강한 힘이 아니었다. 사랑이었다.
 

로마제국의 변방에서


예수가 살았던 시대의 팔레스타인은 로마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다. 유대인들에게 정치적 자유는 제한돼 있었고 로마의 지배와 세금, 지역 권력과 종교 권위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유대인들은 기다렸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정의를 회복해줄 것이라는 기대, 메시아에 대한 열망이 시대의 공기 속에 있었다. 어떤 사람은 정치적 해방자를 기대했고 어떤 사람은 종교적 갱신을 기다렸다.

그때 갈릴리에서 한 사람이 나타났다. 예수였다.

그는 군대를 만들지 않았다. 로마를 무너뜨릴 정치조직도 만들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에게 전혀 다른 나라를 이야기했다.

하나님의 나라.

그 나라는 단순히 지도의 영토를 넓히는 제국이 아니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가난한 사람과 억눌린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인간의 내면에서부터 삶의 질서를 바꾸는 나라였다.

로마 황제의 나라는 군대와 법과 세금으로 유지됐다. 예수가 말한 나라는 사랑과 정의와 자비에서 시작됐다. 기독교의 혁명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갈릴리에서 시작된 혁명
 
이미지챗GPT 생성
이미지=챗GPT 생성


갈릴리는 제국의 중심이 아니었다. 예루살렘과 비교해도 변방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그 변방에서 사람들을 불렀다.

어부들이 따라왔다. 세리도 따라왔고 이름 없는 사람들이 모였다. 여성들도 그의 길에 함께했다. 그는 병든 사람에게 다가갔고 당시 공동체에서 죄인이라 손가락질받던 사람들과도 식탁을 함께했다.

예수에게 식탁은 단순히 음식을 먹는 장소가 아니었다. 누구와 함께 밥을 먹는가가 그 사람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시대였다. 그런 사회에서 배제된 사람과 한 식탁에 앉는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새로운 선언이었다.

사람이 먼저다.

규범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다. 율법을 폐기한다는 선언도 아니었다. 오히려 율법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다시 물었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존재하는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가. 종교가 인간을 살리는가, 인간이 종교제도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가. 유대교가 수천 년 동안 이어온 질문의 전통이 예수에게서 더욱 근원적인 질문으로 깊어졌다.
 

율법에서 사랑으로


예수의 가르침을 ‘율법을 버리고 사랑을 택했다’고 단순화하면 정확하지 않다. 그는 유대교 전통 안에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율법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문제는 율법의 문자에 머물면서 그 정신을 잃는 일이었다. 살인하지 않았다고 해서 마음속 미움까지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간음하지 않았다고 해서 타인을 욕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마음까지 깨끗해지는 것은 아니다. 겉으로 경건하다고 해서 내면의 탐욕과 위선까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예수는 인간의 행동에서 한 걸음 더 안으로 들어갔다.

마음이었다.

법이 인간의 행동을 다스린다면 사랑은 인간의 마음까지 움직인다. 그래서 예수의 종교적 혁명은 외부의 규칙을 없애는 데 있지 않았다. 오히려 외부의 규칙을 인간의 내면으로 가져오는 데 있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 선을 행하지 말라. 남에게 보이기 위해 기도하지 말라. 남에게 보이기 위해 금식하지 말라. 종교마저 자기 과시의 수단으로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혁명은 세상을 바꾸는 혁명이 아니라 자신을 바꾸는 혁명인지 모른다.
 

산상수훈, 세상의 질서를 뒤집다


예수의 가르침이 가장 압축적으로 담긴 곳 가운데 하나가 산상수훈이다.

세상의 상식으로 보면 복된 사람은 돈이 많은 사람이고 권력을 가진 사람이며 싸움에서 이긴 사람이다. 그러나 예수는 다른 사람들을 불렀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자비를 베푸는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평화를 이루는 사람.

힘의 서열이 뒤집힌다.

그중에서도 가장 급진적인 가르침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일 것이다. 친구를 사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나에게 잘하는 사람에게 잘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그러나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자신을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는 요구는 인간의 본능과 충돌한다.

그래서 예수의 사랑은 감상적인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약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힘이다.
보복할 수 있는데 보복하지 않는 것, 미워할 이유가 있는데 증오의 노예가 되지 않는 것, 상대를 굴복시킬 힘이 있는데도 인간의 존엄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예수가 말한 사랑의 어려움이다.
 

황금률, 인간관계의 한 문장


예수의 가르침 가운데 종교를 넘어 인류의 보편윤리로 널리 알려진 말이 있다.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이다. 단순해 보인다. 그러나 실천하기는 어렵다.

인간은 대부분 자신에게 적용하는 기준과 남에게 적용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자신의 잘못에는 사정을 찾으면서 타인의 잘못에는 책임부터 묻는다. 자신의 고통에는 민감하면서 남의 고통에는 무뎌지기 쉽다.

황금률은 그 이중잣대를 깨뜨린다.

나와 남의 자리를 바꿔보라는 것이다.내가 가난한 사람이라면. 내가 병든 사람이라면. 내가 이방인이라면. 내가 전쟁터의 아이라면. 내가 용서를 구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그때 나는 어떤 대접을 받고 싶은가.

윤리는 바로 그 자리바꿈에서 시작된다.

“누가 나의 이웃인가”

예수의 비유 가운데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는 사랑의 경계를 묻는다. 강도를 만나 쓰러진 사람이 있었다. 종교적으로 존경받던 사람들이 그 곁을 지나갔지만 도와주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 유대인들과 긴장과 갈등 관계에 있던 사마리아인이 멈춰 서서 상처를 돌보고 비용까지 부담했다.

예수가 던진 질문은 단순히 착하게 살라는 교훈에 머물지 않는다. 누가 나의 이웃인가. 더 깊이 들어가면 질문은 바뀐다.

누가 내 편인가를 묻기 전에 내가 누구의 이웃이 되어줄 것인가. 민족의 경계를 넘는다. 종교의 경계를 넘는다. 계층의 경계를 넘는다.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고통받는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가.

2000년이 지나도 이 질문은 낡지 않았다.
 

가장 작은 사람에게


예수의 시선은 자주 사회의 아래쪽으로 향했다.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굶주린 사람, 감옥에 갇힌 사람, 이방인, 사회적으로 배제된 사람.

기독교가 이후 2000년 동안 병원과 학교, 고아원과 구호기관, 자선과 사회복지 활동을 발전시키는 데에는 여러 역사적 요인이 있지만, 그 깊은 곳에는 예수가 남긴 이 윤리가 있었다.

가장 작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

그것이 인간과 공동체를 평가하는 하나의 기준이 된다. 이는 유대교 예언자들의 정의와도 이어진다. 아모스가 가난한 사람을 짓밟는 권력과 부를 꾸짖었다면 예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가장 작은 사람에게 행한 것이 곧 자신에게 행한 것이라고 가르쳤다.

종교의 중심이 제단에서 인간에게로 움직인다.
신을 사랑한다면서 사람을 미워할 수 있는가. 기도하면서 굶주린 사람을 외면할 수 있는가.
예배하면서 인간의 존엄을 짓밟을 수 있는가.

이 질문은 훗날 기독교 역사 전체를 심판하는 질문이 된다.
 

용서라는 가장 어려운 힘


사랑만큼이나 기독교를 특징짓는 언어가 용서다.
용서는 잘못을 없던 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정의를 포기하는 것도 아니다. 피해자에게 망각을 강요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용서의 깊은 의미는 증오가 또 다른 증오를 낳는 악순환에서 인간이 벗어나는 데 있다. 복수는 이해하기 쉽다. 용서는 어렵다.

그래서 용서에는 힘이 필요하다.

힘없는 사람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참는 것은 용서와 다르다. 보복할 수 있음에도 증오에 자신의 삶을 넘겨주지 않는 것이 더 깊은 의미의 용서다.

여기에서 사랑과 자유가 만난다.

미워할 자유까지 가졌지만 미움의 노예가 되지 않는 인간. 그것이 예수가 보여준 자유의 한 모습이었다.
 

예루살렘으로


그러나 사랑을 말한다고 세상이 언제나 사랑으로 응답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는 갈릴리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있었고 종교적 권위가 있었으며 로마의 정치권력이 있었다.

그는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몰아내는 상징적 행동을 했고 종교적 위선을 비판했다. 그의 주변에 사람들이 모일수록 기존 질서에는 불편한 존재가 됐다. 종교와 정치, 민중의 기대와 로마의 통치가 복잡하게 얽힌 예루살렘에서 결국 예수는 체포됐다.

여기에서 기독교의 역설이 시작된다.

세상을 구원한다고 믿게 된 사람이 정작 자신은 세상의 권력 앞에서 처형당한다.
 

최후의 만찬


죽음을 앞둔 예수는 제자들과 식탁에 앉았다.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식탁 가운데 하나인 최후의 만찬이다. 그 자리에서 예수는 권력의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요한복음은 그가 제자들의 발을 씻겼다고 전한다.

당시 발을 씻기는 일은 낮은 사람이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스승이 제자의 발 앞에 몸을 낮춘다. 위대한 사람은 위에 서는 사람이라는 세상의 질서를 뒤집는다.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더 많은 사람이 나를 섬겨야 한다는 생각과 정반대다.

높은 사람일수록 더 많이 섬겨야 한다.

기독교가 이후 이 원칙을 얼마나 지켰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교회도 권력을 가졌고 때로는 세속권력과 결탁했으며 종교의 이름으로 폭력에 가담한 역사도 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최후의 만찬의 장면은 더욱 무겁다. 교회가 높아질 때마다 예수가 제자의 발 앞에 무릎 꿇은 모습을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다.
 

십자가, 패배인가 승리인가


예수는 결국 십자가에 달렸다. 로마제국의 십자가형은 잔혹한 공개 처형이었다. 인간을 육체적으로 죽이는 동시에 사회적으로 모욕하는 형벌이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완전한 패배였다.

제자들은 흩어졌고 지도자는 죽었다. 조직도 권력도 군대도 없었다. 그런데 기독교는 바로 그 십자가를 가장 중요한 상징으로 삼았다.

왜인가.

기독교 신앙은 예수의 죽음을 단순한 정치적 처형으로만 보지 않았다. 인간의 죄와 구원,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신학적 의미를 그 죽음에서 발견했다. 서로 다른 기독교 전통은 십자가와 구원의 관계를 다양한 언어로 설명해왔지만 하나의 중심은 분명하다.

사랑은 자신을 내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의 힘은 상대를 굴복시킨다. 십자가의 힘은 자신을 내어준다.

그래서 십자가는 기독교가 말하는 힘의 역설이다. 가장 약해 보이는 순간에 가장 강한 사랑이 드러난다.
 

부활, 절망에서 다시 일어서다


그러나 예수의 이야기가 십자가에서 끝났다면 기독교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의 제자들은 그가 죽은 뒤 다시 살아났다고 증언했다. 부활은 역사학과 신앙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영역이다. 역사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은 예수의 죽음 이후 그의 제자 공동체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예수가 부활했다는 믿음을 중심으로 다시 모였고 그 믿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기독교 신앙에서 부활은 죽음이 마지막 말이 아니라는 선언이다.

절망이 끝이 아니다. 실패가 끝이 아니다. 죽음조차 마지막이 아니다. 십자가와 부활이 함께 있어야 기독교의 역설이 완성된다.

고통을 건너 희망으로. 죽음을 건너 생명으로. 절망을 건너 다시 시작하는 인간으로. 그래서 기독교의 역사는 무덤에서 끝나지 않고 무덤에서 다시 시작한다.
 

사랑은 어떻게 종교가 되었는가


예수가 죽은 뒤 작은 공동체가 남았다. 베드로가 있었고 야고보가 있었으며 다른 제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 기독교 역사에서 결정적인 한 사람이 등장한다.

바울이다.

예수의 생전 제자가 아니었던 바울은 초기 예수 운동을 유대인의 경계를 넘어 이방세계로 확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신앙은 안디옥을 거쳐 소아시아와 그리스, 로마로 향했다.

여기에서 새로운 질문이 시작된다.

예수는 유대인이었는데 왜 기독교는 유대교와 다른 길을 걷게 되었는가. 갈릴리의 작은 운동은 어떻게 로마제국 전체로 퍼졌는가. 박해받던 사람들의 종교가 어떻게 훗날 제국이 공인하는 종교가 되었는가.

그리고 하나였던 초기 그리스도교의 역사에서 어떻게 동방과 서방의 전통이 발전하고, 마침내 가톨릭과 정교회가 갈라지게 되었는가. 그 뒤 서방 가톨릭교회 안에서 왜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개신교가 탄생했는가. 기독교가 권력을 갖게 되었을 때 예수의 사랑은 어떻게 되었는가.

이 질문들은 기독교 이야기 ②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사랑이라는 혁명


그러나 교회의 2000년 역사를 보기 전에 다시 예수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가 남긴 것은 무엇인가. 거대한 성당이 아니었다. 교황청도 아니었다. 신학교도 아니었고 교단도 아니었다. 가톨릭도 정교회도 개신교도 아직 없었다. 남아 있던 것은 사람들과 몇 마디 말, 그리고 하나의 삶이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웃을 사랑하라.

원수까지 사랑하라.

용서하라.

가장 작은 사람을 외면하지 말라.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

높아지려거든 섬겨라.

말은 단순하다. 실천은 어렵다.그래서 2000년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는 혁명이다.

다석 유영모, 예수를 다시 읽다

여기에서 한국의 다석 유영모를 떠올린다. 다석은 기독교인이었지만 서양의 기독교를 그대로 반복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성경을 동양의 사유와 한국말의 깊이 속에서 다시 읽으려 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를 숭배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일이 아니었다.

예수가 걸어간 길을 인간이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였다. 다석이 말한 ‘하나’는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을 비우며 향해 가야 할 궁극이었다. ‘얼나’ 역시 욕망과 자아에 붙잡힌 ‘제나’를 넘어 참된 자신으로 솟아나는 길이었다.

예수의 하나님과 다석의 ‘하나’를 단순히 동일시할 수는 없다. 기독교 신학과 다석의 사상을 억지로 하나로 합쳐서도 안 된다. 그러나 예수의 자기 비움과 다석의 제나를 넘어서는 길 사이에는 깊은 울림이 있다.

자기를 비워야 다른 사람이 들어올 자리가 생긴다. 자기를 낮춰야 더 큰 세계가 보인다. 사랑은 결국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진리·정의·자유


유대교에서 진리는 질문으로 찾아갔다. 기독교의 첫 장에서 진리는 사랑과 만난다. 그러나 사랑은 진실을 외면하는 감상이 아니다. 불의를 보고도 침묵하는 것이 사랑일 수 없고, 약자의 고통을 외면하면서 입으로만 사랑을 말할 수도 없다.

그래서 사랑은 정의를 필요로 한다. 정의 역시 사랑을 잃으면 차가운 심판이 되기 쉽다. 그리고 사랑과 정의는 자유로운 인간에게서 비로소 완성된다. 돈의 노예, 권력의 노예, 증오의 노예가 된 인간은 진정으로 사랑하기 어렵다.

진리와 정의와 자유는 결국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그 중심에 인간이 있다. 결국 사랑이다. 유대교 삼부작의 마지막에서 물었다.

그대가 얻은 힘은 누구를 살리고 있는가.

기독교의 첫 번째 이야기는 그 질문에 하나의 답을 내놓는다. 힘은 사랑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사랑은 약한 감정이 아니다.

병든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힘이고, 배제된 사람과 한 식탁에 앉는 용기이며, 원수를 증오하는 본능을 넘어서는 절제다.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의 발을 씻기는 겸손이고, 자신이 가진 것을 다른 생명을 위해 내어놓을 수 있는 결단이다.

아브라함은 떠났다. 모세는 자유를 향해 걸었다.
예언자들은 정의를 외쳤다. 유대인은 책을 들고 질문했다. 그리고 갈릴리에서 한 사람이 나타나 말했다.

사랑하라.

가장 가까운 사람만이 아니다. 낯선 사람을 사랑하고, 가장 작은 사람을 사랑하며, 마침내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했다. 그것은 2000년 전에도 어려운 일이었다.

오늘도 더더욱 어렵다.

어쩌면 AI가 인간보다 더 많이 알고 더 빠르게 판단하는 시대가 와도 가장 어려운 일로 남을 것이다.
기계가 인간의 지능을 넘어설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다른 인간을 위해 자신을 낮추고, 용서하고, 나누고, 사랑하는 일까지 기계가 대신해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지능의 시대가 깊어질수록 사랑의 의미는 오히려 커진다.지식만으로 문명은 완성되지 않는다.
힘만으로 인간은 위대해지지 않는다.

사랑 없는 진리는 폭력이 될 수 있고, 사랑 없는 정의는 복수가 될 수 있으며, 사랑 없는 자유는 욕망의 다른 이름이 될 수도 있다.

예수는 왕좌에 앉지 않았다. 십자가에 달렸다. 군대를 남기지 않았다. 제자들을 남겼다. 재산을 남기지 않았다. 질문을 남겼다.

“너는 누구를 사랑하고 있는가.”

그 질문은 갈릴리에서 시작해 예루살렘을 지나 로마로 갔고, 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로 건너갔다.

그 길에서 교회는 때로 사랑을 실천했고 때로 사랑을 배반했다. 가난한 사람을 돌보기도 했고 권력과 손잡기도 했다. 평화를 만들기도 했고 전쟁에 가담하기도 했다.

그 장대한 빛과 그림자의 2000년 역사를 이제 만나야 한다.

예수의 사랑은 어떻게 교회가 되었는가.그리고 더욱 어려운 질문이 기다리고 있다. 사랑으로 시작한 종교가 권력을 갖게 되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기독교 이야기 ②는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한다.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박해에서 제국으로. 하나의 교회에서 동방과 서방으로. 가톨릭과 정교회로. 그리고 종교개혁과 개신교로.

사랑이 제도가 되고 신앙이 문명이 되는 순간, 인간은 또다시 시험대에 오른다. 2000년 기독교사의 가장 위대한 성취와 가장 뼈아픈 과오가 모두 그 길 위에 있다.

결국 예수가 남긴 첫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얼마나 높이 올라갔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낮은 곳까지 사랑할 수 있는가.

그것이 갈릴리에서 시작된 사랑이라는 혁명이 오늘의 인간에게 남긴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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